각종 선거도 숨 가쁘게 치러지면서 최근처럼 세계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질서를 잡아줘야 할 중심축 국가의 최고통수권자일수록 수난을 겪었다. 선진 7개국(G7) 중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교체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2025년 1월 20일에는 물러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올라프 슐츠 총리의 위상은 종전만 못하다.
트럼프 집권 2기가 시작되는 2025년에 세계경제 질서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핵심이 될 미·중 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집권 1기 때는 대중국 강경 전략인 ‘나비로 패러다임’을 추진했다. 캘리포니아대 교수 시절부터 초강경 중국론자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는 함무라비 법전식으로 중국을 철저하게 배제해 나가는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했다.
양국 간 디커플링 전략을 더 강화시킨 것이 코로나 사태였다. 디스토피아 위기의 첫 사례인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왔던 세계경제 질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약화돼 왔던 ‘G-something’ 체제를 더 강화시켜 각국 간 관계가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력화된 지 오래됐고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과 같은 국제기구도 그 위상이 떨어지고 합의 사항을 위반할 때 제재하더라도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국가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국제기구 축소론’과 ‘역할 재조정론’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트럼프 직전 정부에 의해 크게 손상됐던 세계경제 질서를 복원시키기 위해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G0 체제가 더 강화돼 분권화 시대가 정착되는 분위기다.
결국 트럼프 집권 2기 첫해가 될 2025년 세계경제 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 공존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신냉전 2.0’ △지역 혹은 국가별로 분화하는 ‘분권화’ △모두 조화하는 ‘다자주의’ △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의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해관계에 따라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이 반복되는 커다란 줄기 속에 다른 국가는 자국 문제 해결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중층적 ‘분권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세계경제 질서는 G7 국가 주도로 구축해 놓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젤리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집권 2기의 목표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새로운 미국의 구상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극심하게 분열됐던 남북을 통일시켜 정치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꿈꿔왔다. MAGA도 링컨 대통령의 MAG(Make America Great·미국을 위대하게)에서 따온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1930년 대공황을 극복한 또 다른 영웅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강한 미국’과 트럼프의 ‘절대군주 야망’MAGA의 청사진이자 실천 계획인 ‘프로젝트 2025’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첫 작품인 정부효율부(DOGE)를 창설해 각종 기득권을 축소시켜 비대해진 정부를 기업과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것이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의 의욕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약, 동성애 등을 금지시켜 잃어버린 청교도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키겠다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프로젝트 2025의 집필자도 핵심 요직으로 임명되고 있다. 러셀 바우트 예산국(OMA) 실장, 브렌던 카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부(CIA) 국장이 대표적이다. 예산, 정보, 권력 감시 기능까지 장악하면 트럼프 당선자는 대통령직을 넘는 절대군주의 힘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전권을 제동시킬 수 있는 상원마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MAGA 구상을 세계로 확장하려는 계획도 마련돼 있다. 벤치마크로 삼은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enlargement)’와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deepening)’ 단계로 추진해 20세기 초 자유사상가에 의해 제시됐던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것이 당초 목표다.
전자는 초기에 6개국으로 출범했으나 이제는 27개국(탈퇴한 영국까지 포함하면 28개국)으로 확대됐다. 화폐통합(EMU),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 순으로 추진해 가던 후자도 1999년 유로화 도입으로 첫 단추인 EMU까지는 성공했으나 EPU의 상징인 유럽통합헌법이 일부 회원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멈춘 상황이다.
‘강한 미국’과 트럼프의 ‘절대군주 야망’도 MAGA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EU 방식을 수용한다면 MAGA의 적용 대상을 세계 모든 국가로 확대하고 심화 단계를 세계화폐통합(WMU), 세계정치통합(EPU), 세계사회통합(WSU) 순으로 추진하면 ‘미국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뛰어넘어 ‘세계통합국(United States of World)’ 달성이 가능하다.
최근처럼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급진전될수록 지역통합보다 세계 통합이 쉬울 수 있다. 세계가 하나의 운동장이 된 초연결 시대에 유럽통합 과정상 확대 단계와 심화 단계 중 장애가 됐던 정치통합은 의미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WMU와 WSU만 추진하면 세계를 대상으로 한 MAGA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WMU를 실현하기 위한 세계중앙은행 구상도 마련돼 있다. 트럼프 당선자와의 개인적인 관계와 관계없이 1913년에 창설된 미국 중앙은행(Fed)이 세계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프로젝트 2025에 담긴 Fed의 개편안이다. 감세와 뉴딜 정책으로 대변되는 ‘트럼프노믹스 2.0’을 추진하는 데도 Fed가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집권 1기 일본은행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것처럼 미국 국채를 강제로 매각시켜 각국 중앙은행을 연계(혹은 예속)시키는 것이 트럼프노믹스 2.0을 추진하고 WMU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세계중앙은행 창립안이다. WSU도 X, xAI, 스페이스X를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부통령 후보로 JD 밴스를 추천한 페이팔 마피아의 판단이다.
실리콘밸리 14인으로 알려진 페이팔 마피아는 피터 필(팔란티어), 맥스 레브친(슬라이드), 리드 호프먼(링크리드), 채드 헐리(유튜브)를 비롯한 페이팔 창립 멤버들이다. 페이팔 창립에 깊숙이 관여했던 머스크는 지금도 페이팔 마니아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다. MAGA가 무서운 것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실행안까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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