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공감능력 없는 컨트롤타워 없는 게 낫다 [EDITOR's LETTER]
늦게나마 지면을 빌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유가족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위로의 말조차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사연은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트라우마를 또 쌓을까 겁도 났습니다.

지금도 사우나를 가면 냉탕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2014년 차가운 바다에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가 떠오르고, 고통이 전달되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태원을 가도 그 골목 앞은 여간해서는 지나가지 않습니다. 취업준비를 위해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된 장면이 생각나 온몸에 힘이 빠집니다. 비행기 사고의 희박한 가능성을 통계로 얘기했던 경박했던 자신을 탓해 보기도 합니다. 피하려 해도 이번 항공기 사고는 한국 사회에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남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새해의 기분도 느껴지지 않는 2025년 1월입니다. 일상이란 게 이토록 소중했나 싶습니다. K팝과 K드라마의 성공비결을 얘기하고, 세계화의 미래를 논하고, 푸바오의 애교를 보며 잠들던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결식아동을 위해 “눈치 보지 말고, 금액에 상관없이 먹고, 나갈 때 미소 한번 지어주고, 매일 와도 괜찮다”고 써붙여 놨던 파스타 가게 주인 얘기를 기사로 쓰며 눈시울이 불거졌던 때도 기억납니다. 후배들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트렌드에 대해 얘기하고, 톡톡 튀는 커버스토리로 써보면 어떨까 토론했던 날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일상을 모두 뺐기고 지난 12월과 1월 초를 보냈습니다. 누가 ‘비교적’ 평화롭던 일상을 빼앗아 갔는지는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빼앗긴 일상을 되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일상을 되찾은 후에도 남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벌어진 갈등의 상처는 살이 드러나 보일 정도일 테니까요.

그래도 이 참담한 시절 작은 위안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항공사고 유가족 등이 있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고, 그들을 함께 보살폈습니다. 지난 연말 이후 한국 사회가 보여준 연대와 공감의 힘은 작은 희망의 빛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정신건강전문의 정혜신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눈물을 흘려주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행동도 타인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치유는 아주 소박한 것입니다. 사람 마음을 어떤 순간에 살짝 만지는 것, 그냥 울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될 수 있어요.” 한국 사회 전체가 나서 공감과 치유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이번 항공기 사고는 큰 잡음 없이 수습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염된 메시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오로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유가족 등에 대한 보살핌 외에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발디딜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참사 때는 근조 리본도 못 달게 하고,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면 고발하고, 누구 한 명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유족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한 것은 물론입니다.

최근 식상하게 들리는 말이 컨트롤타워의 부재입니다. 맞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고 수습 과정만 놓고 보면 문제가 다릅니다. 공감능력과 책임감이 떨어지는 컨트롤타워가 어떤 부작용을 불러왔는지는 이미 우리가 대형 참사 때마다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여전합니다.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이 상황이 정상은 아닙니다. 경제 하나만 챙겨도 버거운 현실에서 부총리가 정치, 경제, 사회, 국방을 다 챙겨야 하니 말입니다. 한덕수 총리와 달리 최상목 부총리가 이 과도기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최 부총리에게도 아마 몇 달은 지옥 같은 시간일 것입니다. 정당한 법적 절차도 거부하며 계엄에 동조하는 세력이 정부·여당 내에 있고, 야당은 탄핵을 무기로 압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제수장으로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은 사명감과 국민과의 공감에서 나올 것입니다. 계엄과 탄핵으로 인한 혼란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에 공감하는 능력을 그가 갖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타인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는 능력이 없는 리더는 없느니만 못할 테니까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