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형' 권도형이 미국으로 송환되는 다섯 가지 이유[비트코인 A to Z]
미국 법무부는 1월 2일(현지 시간) 테라·루나 사태의 주인공 권도형 씨가 미국으로 송환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400억 달러(약 58조원) 규모의 가상자산 붕괴 사태를 일으킨 권 씨에 대한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됩니다.

1991년생으로 대원외고를 졸업한 권 씨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토론 동아리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화려한 입상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했습니다.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그는 2018년 테라·루나의 운영사인 테라폼랩스를 창업했습니다. 테라·루나는 혁신적인 스테이블코인 및 결제 시스템으로 주목받았고 2022년에는 코인 시가총액이 세계 7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테라·루나는 특히 독특한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달러를 준비금으로 보유하는 것과 달리 테라USD는 자매 토큰인 루나와의 알고리즘 관계를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혁신적이라는 평가와 위험하다는 우려도 동시에 있었지만 시장이 호황일 때는 긍정적인 면만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 7위에 올랐다 하지만 2022년 5월 테라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유지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400억 달러가 증발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테라USD의 가치가 1달러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자 그에 연동된 금융 상품에 문제가 생겼고 시장에 공포감이 퍼지면서 투자자들이 동시에 자금을 회수하려 했습니다. ‘코인런’ 현상에 루나 가격은 급락했고 테라USD의 1달러 고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던 권 씨는 갑자기 사라졌고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그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송환을 요청했지만 근 2년 만에 미국 송환이 결정됐습니다.

뉴욕연방남부지검은 몬테네그로 체포 직후인 2023년 3월 공소장을 제출했고 이를 비공개로 유지하다가 2024년 12월 31일 미국으로 송환되면서 전체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권 씨의 혐의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테라USD의 1달러 페그 유지를 위한 비밀계약과 가격 조작입니다. 완전한 붕괴로 이어진 디페깅 사태 1년 전인 2021년 5월에도 디페깅 사태가 있었는데 이때 권 씨는 고빈도매매(차익거래 수익을 위해 초 단위 이하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하는 매매) 전문기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자동화 거래가 아니라 수동으로 가격의 등락을 조절하다 보니 특정 시간대 특정 거래소에서 움직인 테더USD 거래량이 전체 거래량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권 씨는 이러한 인위적 조작을 숨기고 프로토콜이 알고리즘에 따라 가격을 회복하고 있다는 허위 주장을 펼쳤다는 혐의입니다.
둘째, ‘추가 안전장치’였던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에 관한 거짓말입니다. LFG는 비트코인 수십억 달러어치 등의 준비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독립적인 이사회가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 씨가 모든 의사결정을 단독으로 통제했다고 합니다. 2022년 디페깅 폭락 때는 이사회 승인 없이 LFG 자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미 검찰 “모든 것은 권도형의 거짓말” 셋째, 미러프로토콜 관련 혐의입니다. 2020년 12월 출시된 미러프로토콜은 미국 증시 거래종목을 미러링한 자산을 블록체인에 만들어 실제 주가 흐름과 동일하게 움직이도록 한 서비스로 증권법을 위반해 문제가 됐습니다. 권 씨는 미러프로토콜이 분산화되어 있고 테라폼랩스는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테라폼랩스가 상당량의 거버넌스 토큰을 보유한 채 비밀리에 통제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또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작하고 서비스 채택률을 부풀리는 등 허위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입니다.

넷째, 티켓몬스터 창업자 신현성 씨가 한국에서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인터넷 결제 서비스 차이와 관련한 허위 진술입니다. 차이가 테라 블록체인을 통해 결제를 처리한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 씨는 권 씨와 테라를 공동창업했던 인물로 한국 검찰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지만 미국 검찰은 신 씨를 공범으로 적시하거나 기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섯째, 10억 개의 코인을 우선 발행한 것과 관련된 혐의입니다. 매년 1억 개씩 테라폼랩스가 생태계 성장을 위해 사용하겠다던 자금이었는데 실제로는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는 데 주로 쓰이는 등 권 씨가 비자금 형태로 유용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입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권 씨는 최대 13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품 사기 2건에 각 10년(총 20년), 증권 사기 2건에 각 20년(총 40년), 전신 사기 2건에 각 20년(총 40년), 사기 공모 2건에 각 5년(총 10년), 자금세탁 공모 1건에 20년이 가능한 최고 형량입니다. 미국은 모든 형량을 합산하기 때문에 법정 최고형은 130년이지만 실제 구형과 선고는 재판 과정에서 이뤄질 예정입니다.
이번 형사재판 외에도 권 씨와 테라폼랩스는 SEC와의 민사소송에서 이미 44억7000만 달러(약 6.5조원)의 벌금과 환수금을 내기로 지난해 6월 합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재판은 피고가 직접 출석할 의무가 없어 권 씨 없이 진행됐지만 권 씨는 이 가운데 최소 2억423만 달러(약 3543억원)를 내야 합니다.확정 벌금 3500억원에 징역 최대 130년 테라·루나 사태는 코인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테라·루나의 붕괴는 세계 2대 코인 거래소였던 FTX가 파산한 원인 중 하나였고 이는 다시 코인 시장 전반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테라·루나 사태를 계기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어 여러 조치가 이뤄진 것도 사실입니다.

한때 거의 모든 글로벌 경제매체의 주목을 받으며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뻔했던 권 씨는 현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본격적인 형사재판이 시작되면서 테라·루나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잠적·도피한 기간도 있었고 체포된 뒤에도 비교적 우호적인 환경에서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권 씨가 이제야 제대로 된 법의 심판대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실제 권 씨는 몬테네그로의 집권세력과 사업 관계로 유착되어 있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 사건이 향후 한국 블록체인 산업에서 진정한 혁신기업과 기업인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교훈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