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상황인지 대략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몹시 당황스러웠다는 것. 그는 순발력을 발휘해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난생처음 겪어본 어색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이번 모임에서 ‘그 상황과 응대요령’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우리나라에서 와인 수입 자유화가 시작된 지 40여 년. 그동안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1987년 236톤에 불과하던 것이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7만7000톤으로 최정점에 달했다. 이후 다소 줄었지만 작년 말 기준 여전히 5만 톤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와인에 담겨 있는 문화와 역사의 정착은 멀고도 험하다. 특히 테이블 매너의 경우 테이스팅 진행이나 첨잔, 원샷 금지, 적절한 와인 잔 사용 등이 우리의 술 문화와 많이 달라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테이스팅에서는 이번 중견업체 멤버의 사례인 호스트 테이스팅 외에도 블라인드, 버티컬, 호라이즌 등 그 종류가 다양하고 이름도 낯설다. 2회에 걸쳐 주요 내용과 실전 응대 요령에 대해 알아본다.
먼저 호스트 테이스팅이란 와인을 본격적으로 따르기(서빙하기) 전에 주인이 먼저 마셔보는 절차를 말한다. 중세 시대에는 독살이 많았다. 따라서 호스트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에 독극물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용도였다.
그러던 것이 현대에 와서는 일종의 와인 매너로 자리 잡았다. 즉 와인의 상태를 간단히 살펴보거나 주문한 와인이 맞는지 또는 숙성이 잘됐는지 등을 확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와인에서 악취가 나면 교환을 요구하거나 풍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디캔팅을 요청할 수 있다. 이상이 없으면 서빙을 부탁하면 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와인의 변질은 대부분 병마개, 코르크 때문이다. 코르크는 탄력성과 압축성이 좋은 참나무 껍질로 만든다. 병 속에 들어간 코르크가 부풀어 올라 입구를 단단히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숙성 단계가 길어지거나 운송 과정에서 변질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TCA(곰팡이가 염소 화합물 또는 페놀과 만나 합성되는 물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 모금 마셔보면 비 오는 날 장판을 걷어 올렸을 때의 쾨쾨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또 비에 젖은 종이상자나 썩은 나무 냄새가 나는데 이를 코르키(Corky) 또는 부쇼네(Bouchonne)라고 한다.
한편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란 와인 라벨을 가린 채 시음, 순수하게 와인의 맛과 향 자체로만 평가하는 방식을 말한다. 포도 품종이나 가격, 지역 등 선입견에서 자유롭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가능하다.
또 지인들과 와인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자칫 분위기가 지루해지기도 한다. 이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결과를 확인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를 만날 수 있다.
이 방식을 통해 세기의 이변을 낳은 경우도 있다. 1976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미국 와인 대결도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예상과 달리 캘리포니아 와인이 콧대 높은 보르도 와인을 누르고 완승을 거뒀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 유명한 ‘파리의 심판’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외에도 주로 와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호라이즌과 버티컬 테이스팅이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회에서.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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