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HDC·미래에셋 상고 기각…코로나 사태는 ‘천재지변’으로 판단
[법알못 판례 읽기]
대법원은 최근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증권의 상고를 기각하며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의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증권이 2019년 지급한 계약금 25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에 최종 귀속됐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인수합병(M&A) 계약의 효력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판단한 이번 판결은 ‘천재지변’이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MAC)의 예외사유로 인정됨으로써 향후 유사한 위기 상황에서 M&A 계약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코로나19로 인한 M&A 무산
대법원 민사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 3월 13일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이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질권(담보) 소멸 통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2024다234796).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원심 판결에 상고이유로 주장된 계약 해석, 판단 기준, 법리 오해 등의 하자가 없다”며 피고(반소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사건은 2019년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증권은 2019년 12월 27일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과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대형 M&A 계약(아시아나항공의 구주 매매계약 및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며 계약금으로 약 2500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재무상태가 악화하자 HDC현대산업개발은 거래조건의 재협의를 주장하며 매매·인수대금의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은 2020년 9월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의 거래종결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2020년 11월 질권소멸통지 및 계약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코로나19로 인한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재무상태 악화가 계약에서 규정한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MAC, MAE)’에 해당하는지다. 둘째, 아시아나항공의 회계처리 방식과 영구전환사채 발행 등이 ‘진술 및 보장’ 또는 ‘확약’ 위반에 해당하는지다. 셋째, 계약금 2500억원의 법적 성격이 위약벌인지 손해배상 예정액인지였다.
코로나19는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의 예외사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6부(문성관 부장판사)는 2022년 11월 17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영향은 천재지변에 해당해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의 예외사유에 포함된다”며 “회계처리 방식의 변경은 회계기준에 위반되지 않고 영구전환사채 발행 관련 사전동의권 침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음에도 피고들이 거래종결을 거부한 것은 이행거절에 해당하므로 원고들의 계약해제는 적법하다”고 명시했다. 또한 계약금의 성격에 대해 “이 사건 계약금은 위약벌로서 원고들에게 귀속되며 피고들은 이와 별도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재판장 김인겸 부장판사)는 2024년 3월 21일 1심 판결을 유지하며 피고들의 항소와 반소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및 영업 상태 악화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상황이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의 예외사유인 ‘천재지변’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영향으로 항공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취한 여객운항 노선의 조정, 화물운송의 확대, 대규모 인력 감축 등의 조치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영업손실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조치들”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천재지변’ 또는 ‘대한민국 또는 국제적인 경제 환경이나 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가 속한 산업의 일반적인 환경의 변화’에 해당한다”며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의 발생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제외되어야 한다”고 명확히 판시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기준일 745%에서 2020년 2분기 2366%로 악화되고 자본잠식률도 12.6%에서 56.28%로 증가했음에도 이는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의 영향으로 계약해제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계약금의 성격에 대해서도 “원고들과 피고들은 자유로운 협상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합의를 통해 이 사건 인수계약 및 위약벌 약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한 것”이라며 “단순히 위약벌 액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무효라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계약금의 위약벌 성격을 확인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M&A 계약 무산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본건 계약이 무산된 근본적인 원인은 피고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재무 상태가 악화하자 이를 핑계로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포기한데 있으며 피고들이 주장한 선행조건 불충족에 관한 사항들은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여 M&A 계약 체결 시 지급된 계약금 2500억원은 계약 무산에 책임이 없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에 귀속되며 오히려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증권이 추가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돋보기]
세종·화우 vs 태평양·광장 대리전
이번 소송은 국내 대형로펌들의 대리전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원고) 측은 법무법인 세종(강신섭·이창원·이원·정은영·백상현·최민정·전승훈·정수현·박세길)과 법무법인 화우(이인복·김권회·유승룡·시진국·박영수·허시원·박현우·이승혁)가 1심부터 상고심까지 공동으로 대리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본건 M&A 거래를 자문하면서 본건 계약의 체결 및 그 이후 해제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본건 소송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며 승소의 이유를 밝혔다.
화우 측은 김권회 대표변호사가 소송 전반을 총괄·관리하고 유승룡 대표 변호사가 전략을 수립하며 법정 진행을 진두지휘했다. 상고심에서는 이인복 전 대법관과 대법원 상사조 총괄 재판연구관을 지낸 황재호 변호사까지 합류했다.
반면 HDC현대산업개발은 1심에서는 율촌, 항소심부터는 태평양이 대리했다. 상고심에서는 태평양(이인재·이형석·권순익·이혁·류재훈·김목홍·윤정노·이대아·조찬우·장온유·권오석)과 함께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인 홍승면 변호사도 합류했다.
미래에셋증권은 1심부터 상고심까지 법무법인 광장(윤용준·박재현·백정화·정헌재)이 대리했다. 유승룡 화우 대표변호사는 “소송가액이 상당히 크고 M&A 계약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진술 및 보장 조항, 확약, MAC 사유 등 복잡한 쟁점이 얽힌 어려운 사건이었다”며 “그럴수록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계약법의 기본 원칙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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