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베센트 장관이 미 국채 10년물 금리인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하자 월가에서는 “연준에 맞서지 마라”에 이은 “재무부에 맞서지 마라”는 새로운 만트라가 등장했다. 베센트 장관은 트럼프와 자신이 미 국채 10년물 금리에 주목하고 있으며 향후 시간이 지나면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 주장한다. ‘10년물 금리’ 내려서 국채 줄인다는데트럼프와 베센트가 미 국채 10년물 금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미국의 부채 때문이다. 미국의 부채 규모는 36조 달러로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 부채 대비 GDP 비율은 100%를 초과한 상태로 미국은 매년 GDP의 5% 남짓한 비용을 이자로 지급하는데 이는 방위비보다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와 베센트 입장에서는 국채금리를 낮춰 부채 차입 조달 비용을 낮추고 재정 건전성을 강화할 유인이 있다.
문제는 연내 상환해야 할 단기채 규모가 3조 달러에 육박하고 해외에서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미 국채 대신 금을 매집하기 시작하면서 미 국채의 안전자산에 대한 지위까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베센트 장관은 단기채를 중장기채로 롤오버하고 미 국채에 대한 수요를 진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단기채를 중장기채로 돌리는 것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 정말 중요한 문제는 미 국채에 대한 수요 자체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 국채 수요 둔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관세 협박과 마러라고 합의(플라자 합의 2.0)를 통해 미 국채 100년물을 다른 국가들에 강매하거나 미국 내 금융 규제를 완화하여 은행들의 미 국채 보유를 늘리도록 하거나 등등.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다. 본고에서는 스테이블코인과 미 국채의 연관성, 그리고 미국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와 이에 대한 시사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스테이블코인, 미 국채 새로운 수요처로 부상
!['인기 시들' 미 국채에 초조한 트럼프…스테이블코인이 구세주 될까[비트코인 AtoZ]](https://img.hankyung.com/photo/202503/AD.39956005.1.jpg)
시가총액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장점유율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USDT와 USDC의 경우 준비금으로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시가총액 기준 1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의 경우 2024년 미 국채 331억 달러를 매수하며 외국 미 국채 순매수 7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웬만한 국가의 규모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물론 스테이블코인이 아직 국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이 보유한 미 국채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비중은 5% 미만으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활성화되고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미 국채를 매집하게 되면 이는 달러 지배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고 미 국채 수요에도 도움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를 제도화하고 양성할 만한 유인이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열린 디지털 자산 서밋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고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GENIUS(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산업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 연방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시한 법안이다. 2025년 3월 13일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통과된 GENIUS 법안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안정성을 강화하면서도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반영한다.
GENIUS 법안이 통과되고 미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시장 제도화를 본격화한다면 향후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어떻게 재편될까? 필자가 보기에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것 같다.
우선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대형사업자인 테더-USDT와 서클-USDC는 미국의 제도에 순응할 확률이 높다. 일단 규제를 준수할 자본력이 있고 미국이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업형 스테이블코인 시장 역시 확대될 잠재력이 있다. 현재 기업형 스테이블코인의 대표주자는 페이팔에서 발행한 ‘PYUSD’이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시장 내 존재감이 미미하다. PYUSD의 시가총액은 10억 달러가 채 되지 않고 시가총액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9위 남짓한 수준이다.
만약 미국에서 제도가 확립되고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장려된다면 빅테크에서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직접 뛰어들 수 있다.머스크가 스테이블코인에 뛰어든다면?상상해보라. 만약 일론 머스크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뛰어들어 X, 테슬라, 스페이스X에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를 만든다면 어떨까? 애플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애플페이와 연동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메타에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인스타그램이나 패이스북, 왓츠앱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메타는 실제로 과거에 스테이블코인을 사업화하려고 했지만 당시 바이든 정부의 반대에 사업을 접었다.) 제도적 불확실성이 사라진다면 빅테크를 비롯한 많은 미국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사업화에 뛰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주된 용처는 코인 트레이딩, Defi(탈중앙 금융) 수익 창출, 그리고 국제 송금인데 만약 기업형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된다면 결제, 이커머스 등 실생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쓰이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USDT, USDC, 그리고 기업형 스테이블코인은 규제에 순응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KYC·AML을 준수하며 미 정부가 요청하면 언제든지 자금을 동결할 수 있기에 검열에 취약하다. 사실 이는 탈중앙화, 검열저항성을 지향하는 코인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한다고 하더라도 제도권 밖에서 통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 국채가 아닌 코인을 담보로 하거나 아니면 테라-UST와는 다른 방식의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혹은 자체 토큰을 발행하고 미 국채를 담보로 이자를 지급하는 스테이블코인 등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해당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사용자는 접근할 수 없거나 Defi 영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통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지배력 강화와 미 국채 수요 진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미국의 행보를 보면 경외심이 든다.이토록 큰 나라가 어쩜 저렇게 민첩하고 영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한때 미국이 코인을 금지할 것이고 중앙은행이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하면 기존에 존재하던 코인은 무가치해질 것이라고 발언한 한국의 어용지식인들은 이 현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한국은 이제라도 눈을 뜨고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할 때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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