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전체 커리어는 일과 사람으로 완성된다.
사람들이 연결될 때 더 큰 일을 해낸다”

'일잘러' 중간리더들이 알아야 할 세 가지 [IGM의 경영전략]
금융회사를 다니는 아내가 새해를 맞으며 승진을 했다. 그간의 노고, 성과와 함께 미래 잠재력에 대한 기대를 담은 결과인 승진은 직장인에게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는 계기다. 하지만 동시에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안긴다. 아내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우리는 자신의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 전문가로 성장한다. 여기에 직급이 올라가는 만큼 새로운 역할이 보태진다. 여전히 팔로워이지만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을 요구받는다. 위와 방향을 맞추고 아래로는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답이 있던 시대에는 지시가 정확히 전달되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지금은 경영진부터 실무자까지 모두의 생각이 양방향으로 교환돼야 답이 나올까 말까 한다. 삼성전자, SK그룹 등이 소통 문화 재점검에 나서는 이유이다. 이런 배경에서 조직체계의 중간지점에 있는 리더들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경영진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무를 다 알기 어렵고 일선의 담당자는 폭넓은 관점이 부족할 수 있다. 중간리더들은 경영진과 가까우면서도 현장에 가깝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감지하고 있고 현장에서 개선해야 할 문제들도 잘 안다. 한편 직급이 올라 업무범위가 늘어나면 혼자서 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낀다. 마음처럼 성과가 나지 않는 정체 구간이 도래한다. 이때가 유능한 전문가에서 현명한 리더로 탈바꿈해야 하는 변곡점이다.
한 기업 연구실의 사례를 들어보자. 김 팀장은 연구실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자신이 연구실장으로 승진할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경력이 가장 길고 연구실적도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 후배인 이 팀장이 연구실장이 됐다. 김 팀장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한 우물을 쭉 파왔지만 이 팀장은 연구실에서 시작해 다른 몇 개 부서를 거친 다음에 돌아왔다. 김 팀장은 단독 저자로 우수 연구상을 몇 차례 받았지만 이 팀장은 주로 공동연구를 이끌었다. 연구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경영진이 신사업을 추진했을 때 이 팀장이 파일럿 프로젝트의 PM을 맡아 몇 번 좌초할 위기를 넘기고 무사히 마친 것은 알지만 당장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 팀장이 김 팀장을 제치고 연구실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팀장은 자신의 업무 영역을 넓히고 경영진과 방향을 맞추고 낯선 문제를 헤쳐나갔다.
전문 영역에 넓이를 더하라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에 알던 지식이 통하지 않는다. 업무 지식은 5년이면 절반이 쓸모없어지고 특히 기술 분야 지식은 3년도 안 돼 절반이 무효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생성형 인공지능(AI)은 2022년 11월에 등장해 겨우 2년 여가 지났지만 세상을 뒤흔들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내공이 쌓인 전문 분야라도 끊임없이 새로 배우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때 주의할 점은 좁게만 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땅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조언을 던진다. 좁게만 파면 결국 다다를 수 있는 깊이가 한정된다. 내 직무와 관련된 다른 직무들을 이해하고 다른 부서가 하는 일을 알고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때 내 일이 가지는 전체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놓칠 뻔했던 기회가 보이고 숨어 있던 위험이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가질 때 경영진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동료, 후배가 일이 풀리지 않아 전전긍긍할 때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자신의 업무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경영진의 파트너가 돼라
중간리더는 리더의 역할을 요구받지만 그전에 팔로워다. 리더십이 강조되다 보면 상대적으로 팔로워십의 중요성이 간과되기도 한다. ‘위에서 하자는 대로 군말 없이 따르면 되나?’ ‘비위를 맞추라는 건가?’ 하는 오해도 일어난다.

중간리더에게 팔로워십은 경영진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파트너라는 단어는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의 윈윈 관계를 의미한다. 경영진은 내게 필요한 자원, 정보, 조언을 줄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중간리더는 경영진과 눈높이를 맞추고 손발을 맞춰 그가 성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구체적인 팔로워십의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경영진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경영진이 업무 배경, 취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바쁘기도 하고 당연히 알 거라고 넘겨짚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다각도로 질문해서 전체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업무와 관련된 배경이 무엇인지, 최종적으로 기대하는 결과는 무엇인지,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누구인지와 같은 정보를 말한다. 만약 중간리더가 일의 맥락을 모르고 동료, 후배에게 전달하면 모두가 엉뚱한 산을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경영진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자. 그들도 압박감과 책임감에 힘들고 외롭다. 야생늑대의 리더는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다른 늑대들을 위해 홀로 사냥에 나선다고 한다. 몇 번 사냥에 실패한 리더 늑대가 울부짖을 때 다른 늑대들도 따라서 울부짖는다. 리더를 격려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동지’라는 연대 의식이 하나로 뭉치게 한다. 실무적 면에서는 경영진이 놓치기 쉬운 현장의 세부사항을 적시적으로 알려주어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자.
긍정적 영향력으로 이끌어라
중간리더는 팔로워이면서 후배와의 관계에서는 리더다. 리더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도 주어진 지시를 성실히 따르기만 한다면 리더라고 할 수 없다. 리더는 스스로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논리를 갖춰 실행하는 사람이다. 물론 목표대로, 논리대로 풀리지 않을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어제의 답이 오늘의 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실행에서 오차가 생기면 목표를 재설정하고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위로는 경영진과 연결되듯이 동료와 후배에게 정보와 정서의 브리지가 되자. 과거의 위계적인 조직과는 달리 지금은 정보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막힘없이 흘러야 조직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정보가 소통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된다.
중간리더는 자칫 잘못하면 소통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경영진이 직접 소통하겠지’ 하고 미루거나 후배에게 ‘각자 알아서 위에 보고해’ 하고 방치하면 동상이몽 하는 조직이 된다. 중간리더는 일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왜 그 일이 필요한지를 후배에게 전달하고 반대로 경영진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후배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조직을 정서적으로 연결하고 같은 페이지에 있게 한다.

이렇게 위와 아래가 원활히 연결되더라도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와 시행착오가 생긴다. 프로세스는 작동하지 않고 고객은 항의하고 거래처와는 충돌한다. 이때 피하지 않고 후배와 함께 대안을 모색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리더십이다. 설사 쉽게 풀리지 않더라도 더불어 난관을 헤쳐나가는 가운데 팀워크가 강화된다.
내 지식, 경험을 나누고 돕자니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베푸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리더가 된다. 평판이 쌓여서 팬이 생기고 위기의 순간에 팬들이 돕는다. 이는 직급이 아니라 긍정적 영향력의 결과다.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정과 보상에 흐뭇하다가도 늘어난 업무, 과도한 기대치, 모호한 역할에 가슴이 답답하다. 중간리더는 자신의 특기에서는 이미 일잘러다. 날이 무뎌지기 전에 갈아두고 다른 무기도 하나둘 더 갖추자는 것이 첫 번째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면 우군을 탄탄히 하는 것이다. 일은 사람이 하고 사람들이 연결될 때 더 큰 일을 해낸다. 팔로워십과 리더십은 사람들과 슬기롭게 일하기 위한 동전의 양면이다.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의 성공에 국한하는 말이 아니다. 개인의 전체 커리어는 일과 사람으로 완성된다. 중간리더 모두의 건투를 바란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