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문화 바꾸는 이 사람, 와인킹

[트렌드] 와인의 취향을 발견해드립니다
“새해부터 드디어 성인이 됩니다. 가장 먼저 마셔보면 좋을 와인 추천해주세요.”
젊은 세대에게 와인 전도사로 통하는 이가 있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는 연말연시 성인이 되는 젊은이들로부터 와인 추천 주문이 쏟아진다.

그가 추천하는 와인 가격은 대개 1만~3만원대. 좋은 와인은 비싼 와인이라는 인식의 틀을 깨는 데 그의 역할이 컸다. 와인 인플루언서 와인킹(이재형) 이야기다. 래퍼 한해가 자신의 방송 채널에서 “요즘 주변에 와인 입문자 중 이분 채널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할 정도로 와인 세계에서 그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채널 구독자가 67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톱 와인 채널 운영자인 그는 190cm 넘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이국적 외모도 인상적이지만 8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세련되고 재치 있게 대화를 이끄는 글로벌 매너와 입담까지 갖췄다.

지난 5월 11일까지 서울 용산 HDC현대아이파크몰 7층 루프톱에서 피크닉 콘셉트로 펼쳐진 와인킹 팝업스토어는 그의 인기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누적 방문객 50만여 명의 스토어에서 팔린 와인은 27만 병가량 된다. 팝업스토어는 무료 와인 시음 방식으로 이뤄졌다.
5월에  열린 와인킹 팝업스토어
5월에 열린 와인킹 팝업스토어
마셔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고르면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페어링하기 좋은 안주를 함께 사 들고 가서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평소보다 30~40%가량 할인 판매하니 와인 구매도 활발히 이뤄졌다. 팝업 기간 중 방문객들과 ‘셀카’를 찍던 와인킹을 만났다.

“큰 와인 수입 업체가 아니고선 국내에서 소비자를 만나기가 힘들어요. 그런 영세 주류 수입업체들에 소비자의 선택 기회를 드리고 싶어 팝업스토어를 열게 됐고 올해로 3년째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찾아주시네요.”

와인킹 팝업 덕분에 오랫동안 창고에 쌓아놨던 와인 재고를 모두 소진한 업체도 생겨났다. 와인킹이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이럴 때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처음에 참가비를 받고 진행하다가 그마저도 힘든 주류 업체들 사정을 고려해 참가비를 없애기도 했다. 대신 추천한 와인을 ‘인킹이네’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다. 그 역시 대형 주류 매장을 열 여력은 안 돼 와인 소개는 온라인에서 하고 상가에 결제만 하는 세 평짜리 점포를 따로 차렸다. 주류는 온라인 거래가 안 되기 때문에 착안한 방식이다.

와인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투성이, 그래서 더 끌렸다
유튜브 채널은 2017년 처음 시작했다. 와인 소개는 물론 와인 박람회 방문차 들르는 나라에서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마시는 일상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와인 전문가들과 와인에 대한 평가와 지식을 나누는 콘텐츠도 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무시하는 종업원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드는 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1000만에 육박하기도 했다.

젊은층의 폭발적 반응은 2024년 1월 웹툰 작가 이말년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 출연한 것이 계기다. 침착맨 팬들이 와인킹 섭외를 적극 추천해 성사된 것으로 조회수 200만, 영상 댓글만 1000여 개를 훌쩍 넘기며 큰 인기를 끌었다.

@aleatoriker 단순히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웬만한 와인 전문가들 압살하는 분이고 와인을 떠나서도 교양이 뭔지 몸소 보여주는 분이죠.

@thegreatmori 좋은 사람이랑 좋은 술을 함께할 때의 모든 장점을 다 보여준 방송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njf164 평소에 와인에 대해 막연한 궁금이 있었는데 이렇게 소개해주셔서 재밌게 봤어요!

‘와인 입문=와인킹’이란 암묵적 문화는 더 널리 퍼졌다. 방송에서 ‘인킹이형’으로 통하는 와인킹은 1975년생, 소위 X세대다.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생 때 학교 근처 백화점에서 와인 할인 이벤트를 하기에 부모님을 위해 처음으로 칠레 레드 와인 한 병 샀던 것이 와인과의 첫 인연이었다.

그의 입에는 시고 떨떠름하기만 한데 부모님이 맛있다고 하시니 종종 와인을 사 들고 갔다. 뭐든 싫증을 잘 내는 편이지만 와인은 알면 알수록 맛과 향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계속 공부하게 돼 지금에 이르렀다. 한때는 주류 수입업체에서 근무한 적도 있지만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본격적으로 와인 공부에 발을 들였다.

프랑스 앙제대학원 ESA에서 와인마케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스페인 발렌시아대학원에서 포도재배학 석사,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원에서 와인양조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터넷 서칭 환경이 지금처럼 잘 갖추어 있지 않던 때라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그 나라에 직접 가서 학교 커리큘럼을 하나씩 따져봐야 했을 정도로 여건이 녹록지 않았으나 그만큼 와인의 매력은 컸다.

와인 공부를 한 뒤로는 일본 도쿄에서 와인 강사로 근무한 적도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주류 회사에서도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와인 채널과 ‘인킹이네’를 운영 중이다. 와인마케팅 공부할 때 소셜 채널 활용법 같은 수업이 가장 흥미 없었는데 정작 지금 본인이 유튜브 채널 덕분에 사업 기초를 닦았다며 와인킹 채널을 사랑해주는 구독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와인에 대한 상식을 깨는 추천이 늘어나면서 기존 와인 업계에서 배척당하기도 했지만 취향껏 즐기자는 것이 그의 와인 철학이다. 한 끼 몇십만원씩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빈티지 운운하는 와인 문화만큼이나 노포에서 먹더라도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골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의 편안한 공기를 즐기는 와인 문화도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말이다.

와인킹 팝업스토어가 큰 인기를 끌면서 HDC아이파크몰에 정식 와인킹 숍도 들어서게 됐다.올 여름 오픈 예정인데 와인킹은 이곳을 무료 와인 시음코너로 꾸밀 생각이다. 200여 종 와인을 직접 시음하는 공간은 아마 전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라 했다.

한국 숍이 성공하면 일본 도쿄와 와인 본고장 프랑스에도 같은 콘셉트의 숍을 열 구상도 해놨다. 와인킹은 자신이 경험했던 와인 발견의 행복을 더 많은 이들이 경험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와인킹 추천 와인 3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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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 마티나
스페인 와인. 딸기와 붉은 체리 향에 단맛도 있어 와인 입문자가 도전해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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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놀리아 비앙코
이탈리아산. 복숭아에 망고와 파인애플의 향이 더해진 화이트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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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쿠보타 만주
과일보다 쌀 풍미가 잘 드러난다. 신선한 파파야 향도 가미. 각종 스시나 조개찜과 잘 어울린다.

이선정 기자 sligh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