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연합뉴스
“HS코드(상품분류번호) 하나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구나.”

지난해 A전자 부품업체 대표가 뼈저리게 느낀 바다. 인도 수출품의 HS코드(국제적으로 통용되는 6자리 상품분류번호) 문제로 적발된 이 회사는 50억원의 관세 추징과 함께 주요 거래처와의 계약까지 잃을 위기에 처했다. HS코드 하나가 30년 기업 역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서울세관장 재직 시절 이런 안타까운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단순한 실수나 무지로 관세법규를 위반해 벼랑 끝에 선 수출입기업들을 지켜보며 ‘CEO를 위한 관세행정 설명회’를 7차례나 개최했던 이유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관세전쟁이 본격화됐다. 이제 관세법규준수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이 칼럼을 통해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관세 리스크 관리법을 나누고자 한다. 어제의 수출품이 오늘 50% 관세폭탄을 맞는다
“갑자기 웬 50% 관세요?”
지난 3월 12일 국내 철강업체 B사 수출팀장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였다. 전날까지 정상 통관되던 철강제품이 갑자기 25% 추가 관세를 맞은 것이다.

트럼프 2기가 도입한 주요 관세 조치를 보면 그 충격을 실감할 수 있다.

3월 12일: 철강·알루미늄 관세 25% 발효 → 국내 철강업체 직격탄
4월 3일: 자동차·부품 관세 25% → 현대차 협력업체들 긴급대책회의
4월 5일: 전 세계 공통 상호관세 10% → 모든 수출기업 타격
5월 12일: 미·중 관세 협상으로 125%에서 10%로 일시 인하 →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

한국도 7월 8일까지 90일 유예를 받았지만 언제 어떤 관세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회수출 단속, 이제 농담이 아니다올해 1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중국인이 국내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중국산 매트리스 120만 개를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미국에 수출한 것이다. 수법은 이랬다.

1. 중국산 매트리스를 국내 보세창고에 반입
2. 반송신고필증과 원산지증명서를 한국산으로 위조
3. 미국으로 불법 수출
4. 740억원 규모의 관세 회피

하지만 관세청의 무역안보특별조사단에 결국 적발됐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중국인은 2차전지 양극재 55.8톤을 가지고 더 교묘한 수법을 썼다.

1. 중국산 양극재를 국내 수입
2. 단순 포장 변경 또는 국산 제품과 혼합
3.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미국 수출
4. 25% 고관세 회피 시도

결과는? 검찰 송치와 함께 관련 업체 모두 폐업 위기에 몰렸다.

미국도 칼을 빼들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 미국 세관)의 2025년 관세 추징액은 벌써 1억5262만 달러. 작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었다. 더 충격적인 건 정산금액이다. 2024년 6억6755만 달러에서 2025년 226억8000만 달러로 36배 급증했다.

중국산 석유관 태국 경유 사기 적발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계 모기업이 태국 현지법인을 통해 중국산 제품을 단순 가공 후 태국산으로 둔갑시켜 수출했다가 결국 들통났다. CBP는 관세 추징, 통관 보류, 보증금 납부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고 민형사상 처벌까지 예고했다. 살아남기 위한 4단계 실전 대응법
1단계는 CEO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 관세는 단순 비용이 아니라 CEO 경영의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이미 관세무역법규준수 전담팀을 두고 있는 이유다. 월 1회 이상 전사 리스크 점검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견 중소기업 CEO라면 최소한 분기별로는 관세 리스크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 회사 주력 수출품목의 HS코드가 정확한가”, “원산지 증명은 제대로 되고 있나” 같은 기본 질문부터 시작하라.

2단계는 실시간 레이더를 켜둬야 한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에 뒤늦게 대응하면 이미 늦다. 다음 채널들을 북마크해두고 주기적으로 확인하라. △관세청 FTA 포털의 ‘미 관세정책 대응 지원’ △KOTRA 관세대응 119 △무역협회 무역뉴스 △미국 USTR(무역대표부), CBP(세관) 공지사항 등이다.

실제로 철강업체 C사는 매일 오전 9시 담당자가 이들 사이트를 체크하는 루틴을 만들어 3월 철강관세 도입 소식을 하루 먼저 파악해 긴급 대응할 수 있었다.

3단계는 미리 진단하고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 그럼 자체 점검 필수 항목들을 보자.

첫째, HS코드 재검토다. 동일 품목도 구조·기능에 따라 세번(세관에서 쓰는 상품분류번호)이 달라진다. 특히 반도체(8542), 자동차(8703), 철강(7208) 품목은 더욱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철강·알루미늄 정보 정확성이다. 함량, 가격, 원산지, 공급자 정보를 1%라도 틀리면 큰 문제가 된다.

셋째, FTA(자유무역협정) 원산지 증명이다. 한·미 FTA 혜택을 받으려면 서류를 완벽하게 갖춰야 하고 세관 검증에 대비해 5년간 기록을 보관해야 한다.

확실하지 않다면 사전판정제도를 활용하라. CBP의 미국 세관 사전결정제도(Advance Ruling)를 통해 미리 원산지나 세번 분류를 확정받으면 통관 지연이나 관세 추징을 예방할 수 있다.

복잡한 경우라면 관세공학(Customs Engineering, 합법적 관세절약 컨설팅) 컨설팅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제품 설계나 공급망 구조를 전략적으로 조정해 합법적으로 관세를 절약할 수 있다.

4단계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형 시스템은 SAP GTS, Oracle GTM 같은 글로벌 법규준수 관리시스템으로 예방적 리스크 관리를 들 수 있다. 중소기업형 시스템은 법규준수 체크리스트와 표준운영절차(SOP) 마련, 정부 지원 프로그램 적극 활용을 들 수 있다. 실제로 D전자는 작년에 간단한 체크리스트만 도입했는데도 관세 오류를 70% 줄였다.

관세전쟁은 이제 새로운 상수다. 관세전쟁은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게임의 룰이 된 것이다. 변화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관세를 경영의 핵심의제로 삼고 자발적 법규준수와 리스크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 기억하자. 규제는 위험하지만 준법은 기회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 원산지 규정의 함정, 수출기업의 리스크 포인트’-더욱 구체적인 사례와 실전 대응방안을 다룰 예정이다. 관세는 단순 비용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이석문 관세무역전략연구원 원장(전 서울세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