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싸움의 구도는 간단해요. 윤 회장은 자녀들에게 2019년 승계를 해줬어요. 주력 사업인 화장품 ODM은 아들 윤상현 부회장에게, 건강기능식품 사업은 딸 윤여원 사장에게 맡겼어요.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자 아들 윤상현 부회장의 생각이 바뀝니다. 동생이 경영을 너무 못한다며 전부 다 본인이 하겠다고 나섰어요. 당연히 동생 윤여원 사장은 반발했어요. 부친인 윤동한 회장도 윤여원 사장 편을 들어줬고요.
사실 지분만 보면 싸움이 별 의미는 없어요. 이미 지분 증여가 대부분 이뤄져 윤상현 부회장이 31.75%나 확보하고 있거든요. 동생 윤여원 사장 부부가 10% 조금 넘고, 부친 윤동한 회장 지분은 5%대 수준에 불과해요. 윤상현 부회장이 두 배나 앞서고 있어요. 여기에 행동주의 펀드인 달튼도 윤상현 부회장 편에 섰어요. 달튼 지분은 5.69%로 윤상현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런 싸움은 지분만으로 하는 건 아니죠. 지분 못지않게 명분도 중요해요. 더구나 싸우는 상대방이 창업자라면 더 그렇죠. 아들이 창업주나 부친과 싸워서 이긴 사례는 드물어요. 삼성, 효성, 한국타이어, 동아제약, 대동 등에서도 부자간 경영권 다툼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승리로 돌아갔어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죠. 과거 경영권 다툼을 통해 한국콜마 사태가 어떻게 될지 살펴봤어요.
부자간 싸움의 대표 사례는 삼성입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장남 이맹희 회장의 다툼이었어요. 한국콜마의 싸움과 비슷한 점이 꽤 있어요.
시작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1967년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부터였어요. 삼성의 주력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밀수한 게 드러났거든요. 그래서 ‘한비 사태’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사카린은 수입금지 품목이었는데 삼성이 비자금 마련을 위해 사카린 원료를 몰래 들여왔다가 적발됐어요. 이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전면 수사를 지시할 정도로 문제가 커졌어요.
이병철 회장이 물러나자 장남인 이맹희 회장이 30대 중반의 나이에 삼성의 총수로 올라섰어요. 일종의 ‘대리청정’ 같은 것이었어요. 이병철 회장이 물려준 게 아니라 경영권을 잠시 맡긴 것으로 다들 이해했어요. 이병철 회장 나이가 당시 50대 중후반이었어요. 이맹희 회장이 이름만 걸쳐 놓고 뒤에선 이병철 회장이 경영을 한다고 추정됐죠.
그런데 이맹희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총수에 오른 뒤 그룹을 휘저어 놓습니다. 사카린 사건의 오욕을 벗겠다며 삼성 재건 위원회를 세우고 혁신에 나섰어요. 삼성전자부터 중앙일보, 제일제당, 신세계 등 주력 계열사 경영에 전부 관여했고요. 이 과정에서 삼성의 창업공신 임원들과 갈등도 빚습니다.
이 와중에 1969년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창희 씨가 ‘왕자의 난’까지 일으켜요. 사카린 사건으로 이창희 씨가 감옥에도 다녀왔는데요. 출소 이후에 부친이 푸대접했다는 게 이유였어요. 이창희 씨는 삼성 관련 비리를 고발하며 부친을 처벌해 달라는 투서를 보냈어요. 이병철 회장은 이 일에 이맹희 회장도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청와대는 이병철 회장의 편을 들어주죠. 결국 이병철 회장은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1973년 이맹희 회장을 후계 구도에서 제외합니다. 그리고 1976년 삼남 이건희 회장을 총수로 지명했어요.
윤동한 회장이 물러난 것도 자의에 의한 게 아니었어요. 2019년 직원회의에서 한 극우 성향 유튜버의 영상을 튼 게 알려져 퇴임했어요. 영상에는 입에 담기 힘든 극단적인 극우적 발언이 담겼어요. 이 일이 알려지자 한국콜마 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졌어요. 한국콜마가 화장품을 만들어준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 같은 브랜드가 타깃이 됐어요. 이들 브랜드가 일감을 안 주면 한국콜마는 순식간에 어려워질 수 있었어요. 결국 윤 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납니다. 지분도 두 자녀에게 이때 대부분 증여했어요.
비록 윤 회장이 경영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요. 윤 회장은 한국콜마를 세울 때 일본 콜마로부터 투자를 받았어요. 일본 콜마 지분이 지금도 7.8%에 달해요. 일본 콜마가 윤 회장 편에 선다면 윤 회장 우호지분은 24%를 넘어요. 여기에 외부 기관투자가를 우호지분으로 끌어올 수도 있죠. 실제 우호지분을 끌어들여 아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전례도 있어요. 바로 동아제약입니다.
◆동아제약도 부친이 이겨
동아제약은 원래 강신호 회장의 차남 강문석 씨가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어요. 강문석 씨는 2003년 초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회사를 승계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경영권이 이양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듬해인 2004년 강 사장이 지분을 매집한 게 알려졌어요. 강신호 회장 지분이 당시 3.85%에 불과했는데 강문석 사장이 2.83%까지 늘렸어요. 이 사실을 안 강신호 회장은 분개했어요.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강신호 회장은 2005년 주주총회에서 강 사장을 동아제약 경영에서 제외시켰어요. 그러곤 강문석 사장의 이복동생인 사남 강정석 부사장에게 회사를 물려줘요. 강문석 사장은 와인과 위스키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수석무역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싸움은 끝난 듯 보였죠.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 변수가 발생해요. 강문석 부회장의 어머니인 박정재 씨가 강신호 회장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아들 강문석 부회장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어요. 위자료를 받아 그 돈으로 동아제약 지분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었죠.
실제로 강문석 부회장은 이후에 지분을 14.71%까지 늘렸어요. 이에 비해 강신호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6.94%에 불과했어요. 강문석 부회장은 결국 2007년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강신호 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우선 회사 대표를 강문석 부회장이 아닌, 강정석 부사장이 하도록 이사회를 설득했어요. 또 자사주를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매각해 우호지분을 확보했어요. 자사주는 다른 곳에 넘겨주면 의결권이 살아나요. 강문석 부회장은 싸움에서 졌고 이듬해인 2008년 지분을 모두 팔고 떠났죠.
이런 식으로 부친이 자녀를 제압하고 경영권을 되찾은 사례는 꽤 많아요. 효성에선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씨가 부친과 갈등을 빚다가 축출됐고 농기계 업체 대동에선 장녀가 외부 투자자와 손잡고 부친 김상수 회장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가 졌어요.
한국콜마의 부자간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지분은 아들 윤상현 부회장이 앞서고 명분은 부친 윤동한 회장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많죠. 윤 회장의 딸인 윤여원 사장이 경영하는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과 주가가 떨어졌고, 이걸 문제 삼아 윤상현 부회장이 콜마비앤에이치 경영에 관여하겠다는 건 한국적 정서론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어요. 창업주가 과거처럼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어려워요. 또 소액주주나 기관투자가의 영향력도 훨씬 강해졌어요. 이들은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해요. 실적을 개선하고 주가를 끌어 올려줄 경영자라면 누구든 환영입니다. 명분과 실리의 싸움이 될 것 같아요. 누가 이기든 K뷰티 열풍의 선봉에 선 한국콜마가 더 발전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좋겠습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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