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부유'에서 '선부론'으로 바뀐 정부
부진한 실물경제, 돈 푸는 중국
저금리·부동산 침체로 주식에 몰리는 자금
선전종합지수도 상승하며 A주(중국 기업이 중국 본토에서 위안화로 발행한 보통주) 시가총액 합계는 사상 처음으로 100조 위안(1경9000조원)을 넘겼다.
호황을 누리는 증시와 반대로 실물경제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는 회복보다 침체를 가리키고 있다.
생산·투자 지표들이 줄줄이 꺾이는 데다 불안한 경기 전망에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를 이어가고 있고 주춤했던 실업률까지 다시 악화했다. 4년 동안 침체기였던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은 상태다. ‘나쁜’ 지표가 상승 촉매제
지난 7월 중국 통화량(M1)은 전년 같은 달 대비 5.6% 늘어났다. 5개월 연속 반등했다. 주식시장 연평균 신용잔고도 2조 위안을 돌파하며 2015년 8월 이후 최고치였다. 중국 내 유동성이 개선된 것이다.
그러자 예금에 묶여 있던 가계의 돈이 증시로 이동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가계저축 잔액은 1조1000억 위안 감소했고 비(非)은행 금융기관의 개인 예금 잔액은 2조1000억 위안 증가했다. 가계 예금이 증권사 예탁금으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인 것이다.
‘부추’로 불리는 중국 개미들은 증시의 주역이다.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지난 7월 새롭게 개설된 주식 계좌는 196만 개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71% 늘어났다. 이 중 99.5%에 달하는 195만 개를 개인투자자가 개설했다. 상하이종합지수 기준 주간 거래량과 신용잔액은 모두 최근 15년 새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중국 현지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 가계 저축이 향후 증시로 유입될 잠재력에 주목한다. HSBC에 따르면 중국 가계의 총 저축은 현재 160조 위안(약 3경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마어마한 저축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가계 금융자산 중 22%만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하고 있다”며 “10조 위안 이상의 투자 여력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내에서 ‘머니무브’가 일어나는 배경에는 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예금 금리를 내려 예금 수익률을 낮추고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도록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출 이자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이자 부담을 낮춰 소비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돈줄이 돌게 한다는 취지다. “다 같이 잘살자”던 정부,
“기업 먼저 성장” 태도 전환
이 외에도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헬스케어 등 미래전략 산업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중국의 엔비디아’로 불리는 AI칩 제조업체 캄브리콘테크놀로지스는 지난 1년간 약 460% 급등해 기존 최고가 주식 구이저우마오타이를 제치고 가장 비싼 주식으로 부상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이 불안정해지자 캄브리콘은 중국에서 자사 제품을 엔비디아 제품에 대한 대안으로 홍보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AI 산업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며 성장주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국무원은 지난 8월 27일 국무원이 발표한 ‘AI 플러스(+) 행동 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AI 지능체 보급률 90%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중국 정부가 성장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주자 14억 중국인의 투자 심리도 바뀌고 있다.
2021년 중국 정부는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적 평등을 목표로 공동부유(共同富裕)를 핵심 국정 기조로 설정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따라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되었고 IT 및 빅테크 기업들은 반독점 조사, 데이터 보안법, 금융 규제 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 결과 알리바바, 텐센트, 메이퇀 등의 주가는 폭락했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술 기업은 신뢰를 잃었다. 코로나 시기 중국 정부의 강력한 봉쇄와 산업 규제로 투자 심리가 쪼그라들었고 부동산과 증시에 돈이 돌지 않아 경기가 얼어붙었다. 이 시기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도 강력한 규제를 걸면서 헝다그룹 사태 등이 발생하며 중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졌다.
올해는 중국 정부의 목표가 바뀌었다. 다시 ‘선부(先富)론’을 꺼내 들었다. 일부가 먼저 부자가 돼야 나라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중국 경제의 현실적인 문제를 인정하고 정책을 조정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시진핑 주석 역시 지난 2월 “선부가 공동부유를 촉진해야 한다”는 발언을 통해 기업들의 성장을 허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 전체의 부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조정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알리바바 등 기술주가 다시 급등한 데에는 중국 정부의 규제완화 신호가 작용한 것이다. 외국인·기관도 순매수 행렬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자 자금이 증시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과거 부동산이 중국 가계의 핵심 투자처였지만 현재 70대 도시 중 60개 도시의 주택 가격이 연속 하락하고 있고 대형 개발업체의 채무 불이행도 지속되면서 부동산이 더 이상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며 “부동산에서 이탈한 자금이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자 역시 글로벌 주요국 증시 대비 저평가된 중국 증시로 눈을 돌렸다. 보험사·연금·공적기금 등 기관투자가는 올해 들어 7월까지 중국 증시에서 2580억 위안을 순매수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850억 위안)보다 39.5% 증가한 수치다. 특히 공적기금은 2025년 6월 ‘증시 안정화 투자 계획’에 따라 추가 800억 위안을 증시에 투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도 밀려들었다. 1월부터 7월까지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총 3860억 위안으로 2024년 같은 기간보다 82% 늘었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는 7월 한 달 동안 680억 위안을 투자했다.
중국 정부가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당분간 중국 증시는 호조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2개월 주가 강세로 인해 중국 9·3 전승절 전후 차익실현 매물 출회 가능성이 존재하나 10월 4중전회를 앞두고 15차 5개년 계획 관련 기대감이 중화권 증시 내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중국 본토 증시 기준 이익 개선의 추세적 전환이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아 과도한 낙관에는 유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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