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마 매각설 불거지며 아르테미스 관심
피노 가문의 개인적 자산 확대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

와이너리부터 크루즈까지 다양한 취향 수집
2023년 엔터테인먼트 기업 CAA도 인수

프랑수아 피노의 아들이자 케링그룹 회장 프랑소와-앙리 피노. (사진=연합뉴스)
프랑수아 피노의 아들이자 케링그룹 회장 프랑소와-앙리 피노. (사진=연합뉴스)
최근 독일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매각설이 인수합병(M&A) 시장을 달구고 있다.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리한나, 켄달 제너 등 미국 유명인들이 연이어 ‘푸마 스피드캣’을 착용하며 전 세계적인 열풍이 불자 제2의 전성기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적이 회복되지 않은 영향이다.

회사를 팔고 싶어하는 곳은 푸마 지분 29%를 보유한 최대주주 ‘아르테미스’다. 구찌를 보유한 피노 가문이 소유한 회사다.

피노 가문은 투자회사 아르테미스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케링그룹을 소유하고 있다. 구찌, 생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부쉐론 등이 대표적이다. 아르테미스는 케링 외에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M&A로 유명세를 얻었다. 스포츠 브랜드, 엔테테인먼트, 미술품 경매회사, 럭셔리 크루즈, 잡지까지 보유하고 있다. 푸마도 그중 하나다.

아르테미스의 M&A 원칙은 간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적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지 여부만 따진다. 돈이 없어 괴롭힘을 당하던 시골 동네 출신의 목재 상인이 세계 최고의 억만장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 목재 상인에서 글로벌 유통기업으로프랑수아 피노는 1936년 프랑스 브르타뉴 코트다르모르의 작은 마을 레샹제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16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목재 상인이던 아버지로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사업에 눈을 뜬 것은 1960년대다. 1962년 은행으로부터 10만7000달러(10만 프랑)를 빌려 목재 생산·무역 회사 ‘레 에타블리스망 프랑수아 피노’를 설립했다. 가족을 떠나 혼자서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사업적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판단은 성공적이었다. 아버지 사업을 통해 쌓은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 초기부터 주문을 확보했고 사세는 빠르게 확장됐다. 활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 생기자 피노가 선택한 것은 ‘인수’였다. 프랑스 전국의 소규모 목재 회사를 인수하며 지역 기반의 회사에서 대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수 회사에 대한 사업 전략은 인력 감축과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었다. 피노의 사업가적 기질은 1986년 합판 가구 제조사 이로소이 인수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업계에서는 피노그룹 체제에서 9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피노는 인수 직후 직원 대부분을 해고하고 수익성 강화에 나섰다. 그 결과 이로소이는 피노그룹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1988년 10월 파리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기업명을 ‘피노SA’로 변경했다. 당시 피노SA는 100억 프랑에 달하는 연매출을 기록했으며 계열사는 180개에 달했다.

성공을 맛본 피노는 기업을 더 키우기 위해 신사업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1992년 프랑스의 대형 백화점 쁘렝땅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소매업체 강자로 올라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4년 프랑스의 통신판매업체인 라 레두트(La Redoute)까지 인수했다. 이후 피노SA는 3가지 회사의 이름을 합쳐 ‘피노 프랭탕 레두트(Pinault Printemps Redoute, PPR)’로 다시 한번 사명을 변경했다. PPR은 2013년 케링그룹으로 또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시기 설립한 기업이 아르테미스다. 1992년 프랑수아 피노는 그리스 신화 속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그대로 가져와 지주회사 그룹 아르테미스(Groupe Artémis)를 출범시켰다. 상장사인 케링과 달리 피노 가문의 개인적인 자산 확대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르테미스는 케링의 42.3% 지분을 보유한 지주사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와이너리부터 크루즈까지…취향 M&APPR(현재 케링그룹)이 명품 브랜드 확보에만 주력하는 것과 달리 아르테미스는 피노의 개인적인 취향과 직결된 투자를 해왔다. 와인, 미술품, 스포츠, 크루즈, 엔터테인먼트 등 그가 관심 있는 모든 산업이 투자 대상이 됐다.

아르테미스가 가장 먼저 사들인 것은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였다. 1993년 ‘세계 5대 와인’으로 유명한 93만㎡ 부지의 샤토 라투르(Château Latour)를 약 6억 프랑에 인수했다.

1997년에는 미디어 산업 진출을 위해 프랑스 3대 뉴스잡지 ‘르 푸앙(Le Point)’을 사들였고 이듬해에는 1766년 설립된 영국의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와 축구클럽 ‘스타드 렌 FC’를 품었다. 1999년에는 출판사 탈란디에(Tallandier)를 인수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 인수도 이 시기 이뤄졌다. 1999년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일방적으로 구찌 인수를 선언하고 지분 34.4%를 매입했다. 구찌의 최고경영자(CEO)인 도메니코 데 솔레는 “사냥꾼에게 넘길 수 없다”며 프랑수아 피노를 찾아갔고 브랜드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PPR(현 케링그룹)은 구찌 지분 42%를 인수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LVMH는 지분을 약 20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구찌를 포기했다. 이후 PPR은 입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을 적극 사들이면서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게 됐다.

구찌 확보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한 피노 가문은 아르테미스를 통해 와이너리, 부동산 회사 등을 적극 인수했다. 도멘 유제니(2006), 샤토 그리예(2011), 옵팀홈(2011), 카피프랑스(2011), 꾸레주(2014), 샤토 시오락(2014), 끌로 드 타르(2018), 자크송(2022) 등은 모두 아르테미스가 가지고 있다. 아르테미스의 자산 가치는 400억 달러(약 56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인수는 2015년 초호화 크루즈 회사 포넌트와 2023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CAA 등이다.

2015년 피노 가문은 크루즈 산업에 뛰어든다고 발표했다. 4억 유로 이상을 투자해 프랑스 유일의 럭셔리 크루즈 선사 포넌트를 인수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극지 탐험과 럭셔리 크루즈 사업에 초점을 맞춘 결정이었다. 포넌트는 1988년 프랑스 상선 장교들이 설립한 회사로 당시 총 5척의 선박을 보유했다.

포넌트 인수는 럭셔리 단계를 높이기 위한 시도다. 크루즈는 ‘럭셔리 여행의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시장 전망도 좋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마켓리포츠에 따르면 럭셔리 크루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2억 달러(17조원)에서 2033년 263억 달러(37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3년 미국 대형 엔테테인먼트 회사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AA) 인수도 관심을 끌었다. 1975년 미국 LA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배우, 가수, 코미디언, 작가, 영화감독 등 수많은 유명인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해리 스타일스, 에이셉 라키, 베니 블랑코 등이 있다. 축구선수 손흥민도 최근 CAA 계열사인 CAA스포츠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인수 금액은 70억 달러(약 10조원)에 달했다. 럭셔리·패션 등의 기존 사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간 시너지가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피노 가문은 럭셔리 산업에서 유명인의 영향력이 지속 확대되고 있는 만큼 엔터테인먼트와의 융합을 통해 케링이 보유한 명품을 홍보할 수 있으며 광고 계약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