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회의나 보고 시간 줄여 실적 오른 사례 많아
업무절차 간소화·실적 중심 보상으로 업무효율 높일 계기 만들어야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주 4.5일제 도입 논의가 한국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금요일 오후를 휴무로 지정해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발상은 얼핏 단순히 ‘더 쉬자’는 요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노동시장의 생산성과 효율성, 삶의 질, 제도의 실행 가능성이라는 복합적 과제가 놓여 있다. 주 4.5일제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사회적 실험이자 제도적 도전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근로시간 단축 실험이 이뤄져 의미 있는 성과가 보고됐다. 일본의 한 대기업은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하면서 회의와 보고 절차를 과감히 줄였고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졌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근로시간을 줄였음에도 성과가 유지되거나 개선되고 직원 만족도와 충성도가 함께 향상됐다는 결과가 잇따랐다. 아이슬란드의 공공 부문 실험에서는 생산성이 유지되면서 삶의 만족도와 일·생활 균형이 동시에 개선됐다. 이러한 경험은 근로시간 단축이 자동적으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방식 혁신과 협업 구조 개선이 병행될 때 비로소 효과가 발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근로시간은 OECD 평균보다 길지만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낮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시간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불필요한 회의와 형식적인 보고, 과도한 야근과 대기성 근무를 여전히 당연시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주 4.5일제가 도입된다 해도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거시경제학의 기업 역동성 연구는 자본과 노동이 생산성이 높은 기업으로 배분되지 않으면 경제 전체의 잠재력이 훼손된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기업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성과를 내야 할 인력이 단순 보고와 소모적 절차에 묶이면 조직 전체의 효율은 떨어진다.

주 4.5일제의 핵심은 단순한 시간 감축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인력이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업무 절차 간소화, 디지털 협업 강화, 몰입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조성은 이러한 오배분을 줄이는 핵심 수단이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치지만 결과 중심의 평가와 생산성 기반 보상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율성은 쉽게 비효율로 전락한다. 결국 주 4.5일제의 성패는 기업 내부 문화와 제도가 얼마나 과감히 혁신되는가에 달려 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이 변화할 수 있도록 원활히 작동하는 윤활유와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도입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제도의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재정 지원과 세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또한 교대근무 업종과 지식노동 산업처럼 특성이 다른 분야가 제도 속에서 충돌하지 않고 굴러갈 수 있도록 세심한 설계가 요구된다.

주 4.5일제는 결국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자는 문제 제기다. 근로시간 단축이 목적이 아니라 같은 시간 속에서 더 높은 성과와 만족을 창출하는 문화적 전환이 핵심이다. 기업은 낡은 관행과 비효율적 구조를 끊고 성과 중심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최소한의 지원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 4.5일제가 보여주기식 제도가 아니라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노동 질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근로시간 단축을 넘어 노동시장 전체를 다시 설계할 때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