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파트 매매가격이 아니라 전세가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세 매물이 점차 실종되고 임차료가 급격히 오르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패닉’에 빠질 수 있어서다.
‘패닉바잉’, ‘영끌’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2021년 당시에도 집값과 전세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젊은 실수요가 부동산 상승세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이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공급뿐이다. 당장 올해, 내년 입주 예정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규제 영향으로 정말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이 높아졌다.
정부는 영구임대 재건축, 국공유지 개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접 시행,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시장에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는 주택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확실한 일감이 부족하던 건설업계는 신속한 공급을 위한 정책에 대해 내심 기대하고 있다. 아쉬운 서울 공급 가뭄
10월 중 이미 청약을 진행한 8582가구를 제외하면 신규 청약 시장에 나올 물량은 4만6152가구이며 그마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는 절반 정도인 2만1315가구이다.
가장 공급이 급한 서울에서는 ‘힐스테이트 이수역 센트럴’ 이후 최고 기대 단지인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이 기다리고 있다. 전체 가구수는 2091가구에 달하지만 재건축 아파트(반포1단지 3주구)이므로 조합원분과 임대 등을 제외하면 일반분양 물량은 506가구에 불과하다. 타입은 전용면적 59㎡와 84㎡ 중소형이다.
래미안 트리니원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해 분양가심사를 받았지만 3.3㎡당 8484만원에 일반분양 가격이 확정되면서 전용면적 59㎡ 타입 분양가격도 20억원이 넘는다. 12월에는 ‘오티에르 반포’ 87가구, ‘더샵 신풍역’ 312가구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 단지를 비롯해 10·15 대책에 따라 토지거래허가구역,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분양 단지에는 새 규제가 적용된다. 세대주만 청약을 할 수 있고 전매제한 3년이 적용되며 실거주 의무가 있다.
중도금 대출과 잔금 대출에 모두 담보인정비율(LTV) 40%가 적용된다. 여기에 최대 대출 한도는 15억원 이하에 대해 6억원, 15억원 초과 25억원 이하에 대해 4억원, 25억원 초과에 대해서는 2억원으로 정해졌다. 즉 세대주이자 현금 보유력이 있는 실수요자만 청약 단지에 접근 가능하다는 뜻이다.
기존에 규제지역이었던 강남권 단지의 경우 청약 경쟁률에 큰 차이는 없을 전망이다. 당첨돼도 당장 전매가 불가능하지만 시세 차익이 워낙 크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포 소재 새 아파트 가격은 3.3㎡당 2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수분양자는 청약 당첨 즉시 분양가의 2배 이상 시세 차익을 보게 되는 셈이다.
반면 새로 규제를 적용받게 된 곳에서는 실수요자가 유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이전에는 세대원까지 비규제 지역 아파트 청약에 참여해 경쟁률이 과열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10·15 대책 이후 바뀐 정책에 따라 실수요자들의 당첨 확률이 높아졌으므로 광명11구역(재개발)같이 인기 지역 청약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수요 집중지역 물량 공급 가능할까
김포에서 주목받는 풍무역세권에는 여전히 잔여 물량이 있지만, 대책 이후 분양을 실시한 ‘김포풍무 호반써밋’이 10월 28일 실시한 1순위 청약에서 평균 약 7대 1 경쟁률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연내에 ‘풍무역 푸르지오 더마크’와 ‘풍무역세권 수자인 그라센트 1차’가 1524가구, 1071가구 추가로 공급될 예정이다.
파주에서는 운정신도시와 인접한 위치에 ‘운정아이파크 시티’가 청약 시장에 나온다. 분양 물량은 3250가구에 달한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지방은 주택시장이 여전히 좋지 않은 편이지만 새 아파트 공급이 뜸했던 곳에서는 물량이 많이 풀린 수도권보다 외려 분양이 흥행하는 사례가 나타난다”면서도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대규모 물량이 미분양으로 남을 수 있는 리스크도 여전하므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실수요가 집중되는 도심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노후 공공임대 재건축 사업 착공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는 내년 하계5단지, 상계마들 아파트를 시작으로 2030년에는 강남권인 수서1단지도 삽을 뜰 계획이다. 기존 공공임대 거주민들은 재건축 아파트의 공공임대 가구와 매입 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한다.
정부는 10월 2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9·7 주택공급 대책의 후속 조치로서 ‘도심 내 유휴부지 활용 주택공급’ 사업계획 확정 안건을 의결했다.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와 강남구 삼성역, 강서구 인근 유휴부지도 여기 포함된다. 그린벨트도 일부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에 민간사업자에게 분양하던 3기신도시 등 공공택지도 LH가 직접 시행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민간 시행사가 개발 이익을 가져가는 대신 공공이 직접 더 빨리,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1기신도시 재건축 등의 이주 수요를 충족하고 전세 상승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입주 물량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급 대책을 추진하고 있어 건설사들도 일감이 늘 거라 기대하고 있다”며 “특히 LH 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사들에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LH의 주택 설계나 낮은 공사비 문제가 오랫동안 지적된 바 있으나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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