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계열사 62곳 가운데 20곳 대표 교체
실적 부진, 주가 하락 등을 인사 쇄신으로 돌파
이번 인사의 특징은 △50대 리더 △순혈주의 회귀 △유통 물갈이 등이다. 우선 이번에 선임된 대표들의 나이대는 1965~74년생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대표는 롯데콘서트홀 뮤지엄의 문일권 대표로 1965년생이다. 1966년생으로는 롯데지주의 고정욱 사장과 롯데지주 박두환 사장 등이 있다. 가장 어린 대표는 백화점 사업부를 맡게 된 정현석 부사장(1975년생)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로 올라선 신유열 부사장은 1986년생이다.
유통 계열사는 이번 인사를 통해 4년 만에 ‘순혈주의’로 돌아갔다. 앞서 롯데쇼핑은 2021년 백화점, 마트·슈퍼, 이커머스 등 핵심 3개 사업부문 모두 신세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의 외부 출신에게 맡겼다. 유통사업을 총괄하는 HQ 대표(김상현 부회장) 역시 홈플러스 출신의 외부 인사였다.
하지만 올해 롯데에서 잔뼈가 굵은 젊은 대표를 대거 발탁했다. 유통의 핵심 사업부인 백화점은 정현석 부사장이 대표로 내정됐다. 1975년생인 정 부사장은 2000년 롯데백화점으로 입사해 롯데백화점 중동점장과 몰동부산점장을 지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에프알엘코리아(유니클로) 대표로 일했다.
고객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브랜드 차별화를 추진할 적임자라는 게 그룹의 평가다. 정 부사장은 유통사업 전반에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마트·슈퍼 대표 자리도 ‘롯데맨’에게 돌아갔다. 1968년생 차우철 사장은 1992년 롯데제과로 입사 후 롯데정책본부 개선실, 롯데지주 경영개선1팀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1년부터 롯데GRS 대표를 맡았다. 차 사장은 롯데마트와 슈퍼의 통합 조직관리, 이커머스 그로서리사업 안정화, 동남아 중심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주도할 예정이다.
이커머스 사업(롯데온)을 총괄하게 된 1972년생 추대식 대표는 롯데로 입사하지는 않았으나 2010년부터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했다. 2017년 이커머스 부문으로 자리를 옮겨 이커머스사업부 구조조정과 턴어라운드 전략 수립을 추진했다. 추 대표의 핵심 과제는 수익성 개선과 외형 확장이다.
이외에도 유통·식품 부문에서는 △롯데GRS(롯데리아) △롯데홈쇼핑 △에프알엘코리아(유니클로) △롯데웰푸드 등의 대표가 교체됐다.
롯데건설 CEO도 교체됐다. 1968년생 오일근 부사장이 내정됐다. 오 부사장은 1993년 롯데월드로 입사해 롯데마트, 롯데자산개발 등을 거쳤다. 2022년부터 최근까지 롯데자산개발 대표로 재직했다. 롯데자산개발은 국내외 복합개발과 자산유동화 사업을 담당한다.
오 부사장은 부동산 개발 사업 전문성과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역량을 인정받았다. 롯데건설로 자리를 옮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약해진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개선해야 한다.
또 △캐논코리아 △롯데알미늄 △한국후지필름 △롯데에이엠씨 △롯데지에스화학 등도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 주목할 인물 차우철·박두환·정현석조직 구성은 또다시 바뀐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BU 체제로 운영됐지만 2022년 헤드쿼터(HQ·HeadQuarter) 체제를 도입하면서 조직을 일부 개편했다. 빠른 변화 관리와 실행을 위해서였다.
당시 롯데는 그룹의 핵심 사업인 △식품 △쇼핑 △호텔 △화학 △건설 △렌털 등 6개 가운데 식품, 유통, 호텔, 화학 등 4개 사업군에 HQ 조직을 만들었다. 한 명이 총괄해 사업을 관리하면 유관 계열사의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HQ 조직을 없앴다. HQ 체제를 도입한 지 3년 만이다. 회사는 “계열사별 독립적인 경영을 통해 빠른 변화 관리와 실행 중심의 리더십을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주목할 인물은 3명이다. 대표 20명이 교체되고 임원을 줄이는 ‘비상경영’ 체제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2명이 있다. 차우철 사장과 박두환 사장이다.
마트·슈퍼를 맡은 차 사장은 롯데그룹이 2020년 이후 내세운 인사 기조인 ‘50대 리더’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차 사장은 2021년 롯데지주에서 롯데GRS로 자리를 옮기며 처음으로 대표이사가 됐다. 차 사장의 대표적인 성과는 실적 개선이다. 롯데GRS의 2021년 매출은 6757억원, 영업적자는 238억원이었다. 차 사장은 이를 지난해 매출 9954억원, 영업이익은 391억원의 흑자 기조로 돌려놨다. 올해 ‘매출 1조원’ 가능성도 커졌다.
승진도 빠르다. 2021년 롯데GRS 대표로 선임될 당시 직급은 전무였다. 2년 만인 202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또 2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또 다른 인물은 백화점을 맡은 정현석 부사장이다. 정 부사장은 전무 승진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내부에서는 ‘롯데의 뉴리더’로 평가받는다. 리더십이 확고하고 추진력이 강한 점이 빠른 승진의 배경으로 알려졌다. 정 부사장은 2018년 롯데백화점 중동점장을 맡으며 상무보로 승진했고 2021년 상무가 됐다. 이후 3년 만인 2024년 전무로 올라섰고 올해 부사장이 됐다.
어려운 환경에서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는 점이 정 부사장의 대표 성과다. 정 부사장은 유니클로 불매운동이 시작되기 직전 에프알엘코리아 대표로 부임해 1~2년간 난관을 겪었지만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정 부사장은 2020년 6월 에프알엘코리아 대표로 선임됐고 7월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유니클로는 광고 논란, 현지 임원 발언 등으로 불매 1호 브랜드에 올랐다. 매출은 반토막 났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박 부사장은 1년 만인 2021년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매출은 2023년 불매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롯데지주 HR혁신실장을 맡게 된 박두환 사장도 핵심 인물이다. 롯데그룹의 정기인사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 축소 등을 지휘했다는 의미다. 그룹에서는 박 사장이 인사 전반에 혁신을 추진, 그룹 생산성을 높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사장의 사장 승진은 부사장 승진(2019년) 이후 6년 만이다. 1992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홍보로 입사해 롯데카드 경영지원, 영업마케팅본부 등을 거쳤다. 2022년부터 롯데지주로 자리를 옮겨 인사 업무를 담당해왔다.
대부분의 대표가 교체된 가운데 신유열 부사장의 역할은 더 커졌다. 2020년 일본 롯데로 입사한 신 부사장은 박 제임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를 맡아 그룹의 주요 신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사업을 공동 지휘한다. 또한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전략컨트롤 조직에서 중책을 맡아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주도한다.
롯데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신속한 변화 관리와 실행력 제고를 위한 성과 기반 수시 임원인사와 외부 인재 영입 원칙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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