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문화재단 설립 20주년
이재현 CJ그룹 회장,
기업 문화예술 후원 전무한 90년대부터 문화에 관심
‘새로운 창작자는 어디에서 자라는가’ 고민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이어진 정신 이어받아
20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계절은 80번 바뀌고 아이는 성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콘텐츠가 흥하고 사라진다. 트렌드는 변하고 대중의 관심도 달라진다.
하지만 산업은 남는다. 스타가 떠난 자리는 새로운 얼굴이 대체하고, 새로운 음악과 무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K컬처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은 것은 새로운 창작자를 꾸준히 탄생시킨 영향이기도 하다.
CJ문화재단은 지난 20년간 ‘빈틈’을 메워왔다. 주목 받지 못했던 인디 뮤지션, 신인 영화감독, 창작 뮤지컬 작가들을 지원하며 한국 문화산업의 토양을 다졌다.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창작자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공간과 제작비, 멘토링, 해외 진출 기회까지 설계하며 지원 구조를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CJ문화재단의 20년은 한국형 문화사회공헌의 한 모델을 제시한 역사다. 문화예술 후원이 ‘좋은 일’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결국 창작자의 성장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CJ문화재단은 산업의 가능성을 믿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창작자를 발굴하고 있다. K컬처를 지탱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키워온 시간들에 있다.[편집자 주]
문화는 21세기 핵심 국가 경쟁력으로 인정받으며 하나의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에도 문화예산 1%를 달성하며 적극 육성했다. K컬처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 쌓아온 노력의 결실이다.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공통된 경험을 통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쌓인 사회적 유대감은 갈등을 줄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문제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문화의 중요성과 관심은 커지고 있었으나 예술가들이 실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은 부족했다. 1990년대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도 전무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새로운 창작자는 어디에서 자라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 끊임없이 대형 히트작과 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이름을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무명 예술가는 극히 드물었다.
이 회장은 문화예술의 경쟁력이 결국 사회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그 밑거름은 ‘후원’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문화예술 산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후원이 필요하고 기업이 나서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재현 회장의 철학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졌다. 삼성그룹 창업주이자 이 회장의 할아버지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고 문화가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찌감치 문화 발전에 힘썼다. 삼성문화재단 설립(1965년), 호암미술관 개관(1982년) 등을 통해 신진 작가 발굴과 해외 진출을 적극 도왔다.
이 회장은 그 정신을 이어받아 1993년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시작은 클래식. 그는 소수가 향유하는 장르인 탓에 클래식 연주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중견 연주자 10명이 결성한 실내악단 ‘화음’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화음은 ‘화음챔버오케스트라’로 성장했고 국내외 음악제에 초청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게 됐다.
이 회장은 화음을 후원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파트너십과 체계가 있어야 실질적인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단체 하나를 돕는 것을 넘어 문화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방향으로 사고가 옮겨갔다.
그의 확고한 의지는 사재 출연으로 이어졌다. 10억원을 직접 쾌척해 2006년 ‘CJ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직접 이사장을 맡았다. 1995년 드림웍스 투자 당시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이 회장은 문화사업의 성장뿐 아니라 젊은 창작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봤다. CJ문화재단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음악·영화·공연 분야 신진 창작자의 발굴과 성장을 지원하는 문화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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