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차이나 사이클 쇼 2024' 삼성SDI 부스. 사진=삼성SDI
'차이나 사이클 쇼 2024' 삼성SDI 부스. 사진=삼성SDI
정부의 ‘AI 배전망 구축 지원사업’에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성적표가 엇갈렸다. 삼성SDI는 공급 물량의 66%를 확보하며 하드웨어 경쟁력을 입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단일 사업자 최대 규모 운영권과 가상발전소(VPP) 플랫폼을 확보했다. SK온은 그룹 에너지 밸류체인과의 유기적 공조를 바탕으로 실증 레퍼런스 확보에 무게를 실었다.

이번 사업이 9월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을 앞두고 진행된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배터리 업계는 이번 사업을 국내 ESS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배터리 3사의 자존심 대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시장 환경도 ESS에 힘을 싣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는 다소 둔화했지만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망용 ESS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블룸버그NEF(BNEF)는 올해 글로벌 ESS 신규 설치 규모를 158GW·459GWh로 전망했다.

호남 등 재생에너지 밀집 지역에서는 전력망 수용 한계를 넘겨 발전 출력을 제한하는 ‘출력 제어(Curtailment)’가 잦아지면서 잉여 전력을 저장할 ESS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AI 배전망 사업 배터리 3사 성적표. 그래픽=송주연 기자
AI 배전망 사업 배터리 3사 성적표. 그래픽=송주연 기자
삼성 ‘하드웨어 66%’ vs LG ‘운영 플랫폼’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AI 활용 ESS 구축 지원사업’에서 운영사업자 9곳 가운데 6곳이 삼성SDI 배터리셀을 선택했다. 용량 기준으로도 삼성SDI와 연합한 사업자들이 확보한 물량은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진영은 각각 22%, 12% 수준이다.

삼성SDI는 브이피피랩, SK이터닉스, HD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 한국동서발전, 한전KDN 등에 ESS 통합 솔루션 ‘SBB(삼성배터리박스) 1.5’를 공급한다. 배터리셀과 모듈, 랙, 냉각장치, 안전시스템을 하나의 컨테이너에 통합한 제품이다. 현장 설치 시간을 줄이고 운영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이니켈 NCA 각형 셀을 기반으로 고에너지 밀도와 우수한 열폭주 차단 성능을 입증하며 실리적 점유율을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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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업계는 이번 결과를 단순한 공급 물량 경쟁으로 보지 않는다. ESS는 한번 구축하면 10년 이상 운영되는 장기 인프라다. 초기 공급 실적이 후속 사업 수주로 연결되는 구조다. 글로벌 전력 회사들도 최근 입찰 과정에서 실제 운영 레퍼런스와 장기 안정성을 주요 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신한자산운용과 ‘햇빛배전망에너지’ 컨소시엄을 꾸려 단일 최대 규모인 7개 배전선로(140MWh) 운영권을 쥐었다. 배터리 공급을 넘어 AI 예측 알고리즘 기반의 VPP 플랫폼 운영 전권을 선점하며 미래 명분을 챙겼다.

AI는 발전량과 전력 수요를 예측해 ESS 충·방전을 자동 제어하며 운영 데이터가 쌓일수록 알고리즘 정확도가 높아진다. 업계가 운영 플랫폼 확보 여부를 향후 ESS 사업 경쟁력의 핵심 잣대로 꼽는 이유다. 결국 삼성은 공급 확대를, LG는 운영 플랫폼 선점을 택했다는 평가다.

한편 확보 물량 자체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SK온의 저력을 가볍게 볼 수 없다. SK온은 그룹 내 에너지·인프라 계열사들과의 긴밀한 밸류체인 시너지를 바탕으로 향후 대형 프로젝트에서 판도를 뒤집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배전망 사업 vs 제3차 중앙계약시장 비교. 그래픽=송주연 기자
AI 배전망 사업 vs 제3차 중앙계약시장 비교. 그래픽=송주연 기자
AI 배전망 사업 vs 1조 중앙계약시장…뭐가 다른가

AI 배전망 사업은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성을 AI가 예측해 ESS를 제어하고 실제 계통 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지역 실증 모델이다. 9월 예정된 제3차 ESS 중앙계약시장은 전력거래소가 계통 안정화를 위해 추진하는 약 1조원 규모의 본게임이다.

국내 최대 ESS 발주 사업으로 배터리 제조사뿐 아니라 EPC, 발전공기업, 에너지 플랫폼 기업 등이 대거 참여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AI 배전망 사업에서 확보한 운영 경험과 공급 실적이 9월 입찰에서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는 레퍼런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제3차 중앙계약시장은 단순한 저가 경쟁력에서 벗어나 화재 안전성과 국내 생산 기여도 등 ‘비가격 지표’의 배점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배터리 셀 제조 기술을 넘어 계통 연계 안정성과 AI 기반 소프트웨어 제어 능력을 동시에 입증해야만 1조원대 장기 계약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력 수요 증가도 ESS 시장 확대를 이끄는 배경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산업 전기화 영향으로 세계 전력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출력 변동성을 보완할 ESS 수요도 함께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력 업계 관계자는 “과거 ESS가 발전설비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전력망 운영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며 “AI 시대에는 배터리 성능 못지않게 운영 기술과 계통 제어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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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넘어 글로벌로…테슬라·CATL 겨냥한 ‘실증 레퍼런스’

배터리 3사가 국내 사업에 사활을 건 진짜 이유는 해외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 테스트베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체 대용량 ESS인 ‘메가팩’을 생산하는 테슬라조차 폭발하는 전력망 수요와 북미 현지 공급망 대응을 위해 K배터리와 조 단위 계약을 맺고 있으며,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이러한 글로벌 협력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메가팩)에 AI 전력 거래 플랫폼(오토비더)을 결합한 테슬라나 통합 솔루션을 강화하는 중국 CATL 같은 글로벌 거물들과 진정한 승부를 가리려면 단순 납품을 넘어 실전 VPP 운영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이다.

북미와 유럽 대형 프로젝트들이 시스템 안정성과 운영 이력을 까다롭게 따지는 만큼 이번 국내 배전망 사업과 9월 중앙계약시장은 글로벌 주도권을 판가름할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수년간 축적된 실전 운영 데이터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며 “국내 실증 사업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와 레퍼런스는 향후 해외 수주전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