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2024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 육군협회 연례 회의 및 전시회에 풍산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24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 육군협회 연례 회의 및 전시회에 풍산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연초 10만원을 웃돌던 풍산 주가가 7월 29일 기준 5만7700원까지 하락했다. 1월 2일 종가(10만6700원) 대비 46% 떨어진 수준이다. 시가총액도 2조9958억원에서 1조6170억원으로 감소하며 1조3000억원 이상 줄었다.

한화그룹과의 탄약 사업 매각 기대가 사라진데 이어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겸 풍산그룹 회장이 방산 사업 매각 중단과 안동 레저사업 구상을 밝히면서 투자심리가 악화한 탓이다.

회사가 지난 4월 공시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언급한 뒤 시장에 나온 방안이 골프장·호텔 개발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반발이 커지는 모습이다.

류 회장은 7월 17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2026 한경협 경영자 제주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풍산 방산 사업 매각설에 선을 그었다. 류 회장은 “풍산은 방산이 잘되고 있으니까 얼마 정도 가치가 있을까 궁금해서 얘기해 놓은 게 있는데 지금은 안 팔기로 했다”며 “방산에서 이익이 많이 나니까 그 이익으로 지방 발전, 골프장과 호텔을 짓고 서비스업 쪽으로 신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선친께서 못 하신 일을 할지 구상하고 있다”며 “안동이 고향인데 선친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고향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다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덧붙였다.

풍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탄약사업부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지난 4월 종료했다. 류 회장은 부산공장 이전과 관련해서도 “조만간 청사진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풍산 주요 지표. 그래픽=송영 기자
풍산 주요 지표. 그래픽=송영 기자
골프장 한마디에…주가 46% 급락·시총 1.3조 증발

풍산은 지난 4월 9일 언론이 보도한 ‘탄약사업부 한화 매각 추진’ 기사에 대한 해명 공시에서 탄약 사업 매각설을 부인하면서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시 이후 시장은 방산 사업 가치 재평가와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 확대 등을 기대했다. 그러나 석 달 뒤 공개된 것은 안동 골프장과 호텔, 서비스업 신사업 구상이었다.

류 회장은 투자 재원으로 방산 사업 이익뿐 아니라 부산공장 이전에 따른 부지 매각 자금도 직접 언급했다. 부산공장은 센텀2 도시첨단산업단지 개발의 핵심 부지다. 이전 대상 면적은 센텀2 전체 개발 면적(191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는 풍산 이전 보상비를 8300억~8400억원으로 추산했지만 사업 지연으로 실제 이전 비용은 1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상장사가 대규모 현금 유입을 앞두면 투자처보다 자본 배분 원칙부터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4월 공시에서 약속한 주주가치 제고와 이번 투자 구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직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이 7월 17일 ‘2026 한경협 경영자 제주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경협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이 7월 17일 ‘2026 한경협 경영자 제주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경협
ROE 회복 국면서 본업과 무관한 투자 발표…자본 배분 시험대

풍산은 방산 수출 호조를 바탕으로 수익성이 회복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 와이즈리포트 기업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ROE(자기자본이익률) 컨센서스는 10.5%다. 지난해 6.54%에서 다시 두 자릿수 회복이 예상된다.

IB 업계는 이 시점에서 ROIC(투하자본이익률)가 상대적으로 낮은 레저 자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 전사 ROE 개선 흐름이 둔화할 수 있다고 본다.

방산에서 벌어들인 고수익 자산을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자산으로 바꾸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본업 투자도 남아 있다. 풍산은 2025~2027년 방산·신동·R&D에 총 2654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투자 재원으로 거론된 부산공장 이전 부지는 장부가보다 훨씬 높은 가치가 평가되는 대표적 숨은 자산이다. 이를 매각해 레저 자산으로 바꾸는 것은 사실상 ‘자산 스와프(Asset Swap)’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동일 재원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활용하면 자기자본이 줄어 ROE와 EPS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지주사인 풍산홀딩스는 최근 47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과 연내 전량 소각을 결정했다. 반면 사업회사인 풍산은 4월 공시 이후 구체적인 주주환원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그룹 안에서도 자본 배분의 방향이 엇갈렸다. 지주사인 풍산홀딩스는 자사주 매입·소각을 선택했고 사업회사인 풍산은 골프장 투자 구상을 먼저 내놨다. 시장이 두 회사를 비교하는 이유다.

1% 넘긴 주주들, 행동주의 시동

논란은 의사결정 절차로도 번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안동 골프장 개발 계획은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보고되거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천억원 규모 투자 구상이 총수 공개 발언으로 먼저 알려지면서 거버넌스 논란도 커지는 분위기다.

풍산 이사회 규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 취득·처분과 국내외 시설투자를 이사회 부의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업 추진 주체가 풍산 또는 계열사로 확정될 경우 이사회 차원의 검토가 필요한 사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거버넌스 논란은 승계 문제와도 맞물린다. 류 회장의 장남이 최근 미국 현지법인 PMX 부사장을 사임하고 벤처캐피털 스타라캐피탈을 설립하면서 승계 구도는 이전보다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다.

류 회장의 장남은 미국 시민권자로 방산 업체에 대한 외국 국적자의 경영 참여에는 방위사업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제약이 있는 만큼 자본시장에서는 이럴수록 대규모 자본 배분은 최고경영자 개인보다 이사회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액주주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ACT)’에서 주주 인증을 마친 풍산 주주들의 결집 지분은 7월 29일 기준 1.07%까지 늘었다. 상법상 검사인 선임 청구 기준인 1.5%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추가 결집을 통해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행동주의 플랫폼에서 1%를 넘긴 것은 주주행동이 조직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 주주는 “PBR 1배에도 못 미치는 저평가 국면에서 자사주 소각보다 비핵심 자산 투자를 우선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상법 개정 이후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이사회가 이사와 주주의 권익을 우선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안은 오너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자본 배분 결정이라면 주주 관점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그 과정이 적절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