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는 단순한 중립적 수치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세고 무엇을 세지 않을지 정하는 선택 속에는 이미 조직이 중시하는 관리의 우선순위가 담겨 있다”

숫자의 함정에서 조직을 구하는 법[IGM의 경영전략]
1년치 인공지능(AI) 예산을 단 4개월 만에 탕진해버린 회사가 있다. 글로벌 테크 기업 우버(Uber)의 이야기다.

우버는 올해 초 엔지니어 조직의 생산성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AI 코딩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독려했다. 그리고 개인과 팀별 사용량(토큰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집계해 순위를 매기는 사내 리더보드를 가동했다. AI 도구 사용량은 곧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로 여겨졌고 직원들은 순위에 오르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불필요한 자동화 코드까지 반복해서 돌리는 이른바 토큰 맥싱(Token Maxing, 토큰 사용량 극대화)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월 32% 수준이던 사용률은 불과 한 달 만인 3월에는 84%까지 치솟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회사는 개발자 1인당 도구별 월 1500달러라는 지출 한도를 급히 잠갔다. 우버 최고운영책임자(COO) 앤드루 맥도널드는 한 인터뷰를 통해 “막대한 토큰 지출이 실제로 더 나은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고 인정했다. 비용 대비 성과는 증명하지 못한 셈이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시작되는 ‘굿하트의 함정’

영국의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는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더 이상 좋은 지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굿하트의 법칙’이다. 현상을 관찰하고 진단하는 용도로 쓰일 때 지표는 현실을 정직하게 비춰준다. 하지만 지표를 평가와 보상의 ‘목표’로 내걸고 압박하는 순간 사람들은 진짜 가치를 만드는 대신 숫자를 올리는 데 몰두한다.

우버 사례를 다시 보자. AI 도구 사용량은 원래 생산성을 짐작하게 해주는 참고 신호였다. 그러나 그것을 리더보드에 올려 경쟁의 목표로 삼는 순간 사용량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많이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숫자는 계속 올라갔지만 그것이 더 나은 성과를 뜻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측정하는가’가 곧 조직의 ‘가치관’

지표의 함정은 조작과 남용에만 있지 않다. 애초에 ‘무엇을 측정하기로 정했는가’ 하는 선택 자체가 그 조직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에는 TOT(Time Off Task, 작업 이탈 시간)’라는 악명 높은 지표가 있었다. 물류센터 직원이 바코드를 스캔하지 않는 시간을 초 단위로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5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기록이 누적되고 기준치를 초과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경고나 해고 절차를 밟았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이나 동료와 짧은 업무 대화를 나누는 시간조차 ‘생산성 이탈’로 잡혔다.

결과는 참혹했다. 직원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려 물을 마시지 않았고 몸의 이상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렸다. 미국 노동안전보건국(OSHA)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조사에서 아마존 물류창고의 부상률이 경쟁사인 월마트 등 타사의 두 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휴식과 생리 현상 같은 기본적인 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작업 이탈 시간만을 초 단위로 추적한 지표 설계는 그 자체로 단기 효율 극대화에 집중된 구조적 선택이다. 이는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명확한 선언이다. 작업 속도와 가동률은 정밀하게 측정하면서 안전과 인적 지속 가능성은 지표에서 배제할 때 조직의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사람보다 단기적 수치에 편중되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지표가 본질을 삼켜버렸음을 알리는 3가지 신호

지표는 단순한 중립적 수치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세고(Count) 무엇을 세지 않을지 정하는 선택 속에는 이미 조직이 중시하는 관리의 우선순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표로 설정된 항목은 조직 내에서 명확한 실행 기준이 되지만 지표에 포함되지 않은 가치는 관리의 시야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지기 쉽다.

“측정할 수 있어야 관리할 수 있다”는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격언 역시 경영 현장에서 자칫 불균형을 낳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측정이 용이한 영역에 관리가 집중되다 보면 정작 정량화하기 어려운 본질적 가치가 경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 처리 건수, 토큰 사용량처럼 수량화하기 쉬운 지표는 정밀하게 추적되지만 고객의 신뢰, 코드의 근본적인 품질, 조직의 피로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가치는 관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의 지표가 목표로 변질되어 본질을 갉아먹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 세 가지 경고 신호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지표는 상승하는데 진짜 목표는 제자리이거나 후퇴할 때다. 우버처럼 AI 사용량 지표나 영업 실적 숫자는 늘어나는데 제품의 품질이나 고객 만족도는 제자리라면 그 실적은 조직의 미래를 담보로 당겨쓴 가짜 성과다.

둘째, 구성원들이 ‘지표의 규칙’을 이용해 게임을 하기 시작할 때다. 지표의 허점을 찾아내 실질적 성과 없이 숫자만 맞추는 꼼수가 조직 내에 팽배해진다면 이미 그 지표는 오염된 것이다.

셋째, 측정되지 않는 중요한 업무를 서로 기피할 때다. 지표에 반영되는 단기 과제에만 인력이 몰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숫자로 증명하기 힘든 근본적 문제 해결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상이다.

◆지표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두 가지 실천 전략

아마존은 2021년 거센 사회적 비판과 규제 압박에 직면하자 TOT 지표의 운영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단기적인 시간 이탈을 개인의 생산성 평가와 징계 수단으로 쓰지 않고 장기 평균을 내어 ‘물류 시스템의 오류나 병목을 감지하는 진단 도구’로 재정의했다. 회사의 설명대로 지표가 본래의 목적인 ‘시스템 개선’으로 돌아가자 현장의 과도한 압박도 완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표를 ‘목적지’가 아닌 ‘보조 도구’의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첫째, 지표 하나만 보지 말고 이를 견제할 ‘반대편 지표’를 함께 세워라. 하나의 지표만 내걸면 조직은 그 숫자에 잡아먹힌다. 지표가 변질되어 부작용을 일으킬 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반대편의 지표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AI 도입률을 높인다면 ‘실제 제품 오류 감소율’이나 ‘개발 주기 단축 시간’을 함께 보고, 처리 속도를 올려야 한다면 재작업률’을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이다. 두 지표가 서로를 견제할 때 비로소 왜곡을 막을 수 있다.

둘째, 지표를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쓰지 말고 프로세스의 허점을 찾는 진단 도구로 삼아라. 지표를 구성원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면 구성원은 숫자를 조작하는 편법으로 응수하게 된다. 지표는 개인의 실적을 심판하는 도구가 아니라 업무 과정과 시스템에 어디가 고장 났는지 확인하는 진단용 데이터여야 한다.

지표는 유용한 지도다. 방향을 가리키고 현주소를 알려준다. 하지만 지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창밖의 풍경이 바뀌고 지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보지 못한다. 지금 당신은 어떤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동안 조용히 갉아먹히고 있는 조직의 진짜 본질은 무엇인가?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인사이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