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의 두 번째 임무 [EDITOR's LETTER]
가끔 지금의 은행 앱을 쓰다가 10여 년 전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송금 한 번 하려 해도 메뉴를 몇 번이나 찾아 들어가야 했고 인증서와 보안카드, 각종 비밀번호를 요구했습니다. 금융회사 앱은 고객이 편하게 쓰라고 만든 것인지, 인내심을 시험하려 만든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 계좌를 만들고 돈을 보내고 대출금리를 비교합니다. 송금 수수료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너무 빨리 익숙해져 그렇지 불과 10년 사이 벌어진 꽤 큰 변화입니다. 그 한가운데 인터넷전문은행이 있었습니다.

2017년 4월 케이뱅크가 문을 열었고 같은 해 7월 카카오뱅크가 뒤를 이었습니다. 내년이면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한 지 꼭 10년입니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금융산업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 편익을 높이겠다는 것, 이른바 ‘메기 효과’였습니다.

적어도 소비자 편의라는 측면에서 메기는 제 역할을 했습니다. 인터넷은행이 등장하자 기존 은행들도 모바일 앱을 뜯어고쳤습니다. 화면은 단순해졌고 인증 절차와 수수료는 줄었습니다. 인터넷은행이 고객을 얼마나 빼앗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 은행을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메기의 첫 번째 임무는 그렇게 완수됐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인터넷은행을 처음 허용할 때 정부가 조심스러웠던 것은 당연합니다. 은행은 잘못되면 금융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대면 영업을 원칙으로 했고 출범 이후에는 중·저신용자 대출이라는 정책적 역할도 부여했습니다. 당시에는 필요한 울타리였습니다. 하지만 갓 태어난 메기에게 만든 수조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둘 필요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금융입니다. 인터넷은행도 중소기업 대출을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 대출 중심입니다. 현장 확인과 대면 심사가 필요한 기업금융의 특성과 비대면 원칙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도 지난 7월 경영진 면담과 현장 실사 등 일부 대면 업무를 허용했습니다. 기존 원칙의 한계를 인정한 셈입니다. 이제 하나씩 예외를 붙이기보다 인터넷은행이 어디까지 새로운 금융을 실험할 수 있을지 판을 다시 짤 때입니다.

마침 최근 5대 금융지주를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해 상반기에만 13조1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습니다. 대통령은 금융지주 내부의 이너서클과 장기 집권 문제를 지적했고, 금융권에서는 회장 연임 제한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은행이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할 일은 아닙니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하고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한국에는 더 크고 강한 금융회사가 필요합니다. 국내 최대인 KB금융의 총자산은 2025년 말 약 798조원입니다. JP모간체이스는 약 6000조원(4조4000억달러)에 이릅니다. 한국 금융이 글로벌 경쟁에서 더 커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많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경쟁 압력입니다. 밖에서 흔드는 힘이 없으면 안은 굳습니다.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기존 시스템과 이해관계가 얽혀 새로운 실험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먼저 해보고 성공해야 움직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은행이 필요합니다. 메기는 아직 작습니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세 곳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을 다 합쳐도 4470억원, 5대 금융지주의 3%를 조금 넘습니다. 그러나 작은 규모는 약점인 동시에 장점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상품과 영업 방식을 시험하고 빠르게 고치기에는 더 유리합니다.

인터넷은행에 모든 규제를 풀어주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자본건전성과 유동성, 소비자 보호 규제는 엄격해야 합니다. 대신 어떤 상품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고객을 만나며 어떤 영역에 진출할 것인지는 더 자유롭게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용된 일을 하나씩 정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벗어나 안전장치 안에서는 금지된 것 이외의 실험을 허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미 세 은행은 소상공인 대출을 넓히고 있습니다. 매출과 결제 데이터로 사업체를 평가하는 방식이 검증되면 중소기업 신용평가의 문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디지털만으로 닿기 어려운 중·저신용자와 고령 고객을 위한 대면 접점도 실험해볼 수 있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이 발견되고 고객이 움직이면 기존 은행도 따라옵니다. 지난 10년간 은행 앱에서 벌어진 일이 그랬습니다.

인터넷은행의 첫 10년이 은행을 이용하는 방식을 바꾼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은행이 하는 일을 바꾸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메기의 역할은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닙니다. 큰 물고기가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메기 효과의 원조로 알려진 노르웨이 어부의 정어리 수조 이야기는 확인된 기록이 없는 속설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속설은 한국 금융에서만큼은 현실이 됐습니다. 출근길 몇 번의 터치로 송금을 마치고 나니 속설이 현실이 되는 데 1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