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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회장의 삶은 파도를 가르는 개척의 연속이었다. 194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나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에 진학하며 바다와 첫 인연을 맺었다. 전역 후에는 안락한 교직 대신 고려원양 일등항해사를 택해 인도양과 대서양의 거친 파도 속에서 350톤급 어선을 지휘했다. 달러벌이의 첨병으로 활약하던 그는 이후 한·일 합작회사로 자리를 옮겨 아프리카 가나 어장에서 한국 최초의 개척선을 이끌며 혹독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1975년 선주 겸 선장으로 200톤급 가다랑어 채낚이선을 이끌고 처음 도착한 팔라우는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 가혹한 시련을 숨기고 있었다. 사전 답사 부족과 낮은 수심 등 환경적 한계로 조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생존마저 위협받는 극단적인 고비도 수차례 겪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통조림 기업의 관리자로 다시 가나와 팔라우를 거치며 재기를 노리던 그는 결국 팔라우에 남아 부인과 함께 ‘아리랑’이라는 작은 한식당을 열며 운명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Han)과 팔라우(Pa)의 첫 글자를 딴 ‘한파그룹’의 위대한 서막이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하 회장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꿈은 팔라우를 세계 최정상의 관광지로 도약시키는 것이다. 외국인 유일의 관광업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록아일랜드’ 일대에서 해상 관광과 다이빙을 융합한 해양레저 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 중이다. 실패의 바다를 딛고 일어나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 ‘한국인의 집념’을 깊게 아로새긴 하순섭 회장. 무한한 바다를 향한 노(老)선장의 항해는 여전히 뜨거운 현재진행형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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