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유례없는 공급 부족 국면에 들어섰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률 76%를 기록했고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부문이 실적을 이끌었다. 메모리 업체의 이익률이 70%를 넘어선 것은 그만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DRAM과 NAND 가격도 올해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공급 부족을 키운 것은 AI 서버 중심의 수요 급증이다. 서버용 DRAM 수요는 올해 55%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PC와 모바일 수요 증가세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여기에 메모리 업체들이 기존 DRAM 생산능력을 HBM으로 전환하면서 범용 메모리에 돌아가는 생산 여력까지 줄었다. AI용 고부가 메모리를 늘리는 과정에서 범용 메모리 공급이 제약받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공급 부족이 2027년 더 심화돼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규 생산시설을 짓고 웨이퍼 생산을 시작하기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메모리 업체들은 이미 증설에 나서고 있다.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두고 있는 메모리 업계가 이제는 설비투자를 확대하며 공급 부족에 대응하는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전환에서 증설로, 사이클이 바뀐다
과거 메모리 투자에서는 클린룸(청정실)·인프라 투자 이후 전공정 장비, 후공정·소재 순으로 수요가 확산되는 흐름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2023년 이후 이어진 HBM 사이클에서는 적층·패키징이 생산 확대의 걸림돌로 떠오르면서 적층 기술(TSV), 칩 연결 기술(본딩) 등 후공정 장비가 먼저 발주되며 기존 공식이 달라졌다. 특히 설비투자 규모보다 투자의 성격이 소부장 업종별 수혜 범위를 좌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라인 전환 중심의 ‘전환형 투자’에서 신규·증설 라인에 장비를 투입하는 ‘증설형 투자’로 메모리 투자 사이클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전환형 투자 국면에서는 기존 라인의 웨이퍼 투입량이 줄면서 공급 확대가 제한됐지만 신규 팹과 증설 라인의 가동이 본격화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 P4와 SK하이닉스 청주 M15X가 가동에 들어갔고 향후 평택 P5·용인 Y1 등으로 증설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DRAM 웨이퍼 투입량은 2026년 8.5%, 2027년 5.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환형 투자가 웨이퍼 총량 정체 속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면 증설형 투자는 장비 반입과 웨이퍼 투입 증가를 통한 ‘물량 성장’의 국면이 될 것이다.
메모리 업체들의 설비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DRAM의 CAPEX(설비투자)는 2025년 470억달러 수준에서 2026년 670억달러, 2027년 85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며 NAND 역시 2026년부터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 다만 이번 증설은 기존 인프라에 장비를 채우는 방식이 많아 CAPEX 증가에 비해 자본집약도는 낮은 것이 특징이다. 이미 확정된 팹 생산량 증가만으로도 검사·테스트·후공정 장비 및 관련 소부장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증설 일정이 앞당겨지고 있어 소부장 업체들의 수혜 시점 역시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메모리 증설도 이번 사이클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CXMT는 상하이 상장을 통해 85억5000만달러를 조달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며 YMTC 역시 우한 3공장을 통해 NAND 공급을 늘릴 전망이다. 중국 팹 증설은 국내 소부장 업체에는 장비·부품 수주를 늘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확대 가능성은 변수다. 단기적으로 중국 증설이 공급 부족을 일부 완화하는 데 그칠 수 있지만 중국 업체의 추가 증설이 이어질 경우 2028년 이후 레거시 메모리 공급 부담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후공정이 독립 변수가 됐다
과거의 후공정은 사이클의 조연이었다. 투자 측면에서는 전공정 CAPEX의 일부로 집행돼 별도 투자 규모가 드러나지 않았고 전체 장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 초반(SEMI)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 메모리 사이클에서는 후공정이 독립적인 투자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청주 P&T7(패키징 공장) 등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는 가운데 HBM의 검사 과정이 복잡해지고 메모리 용량이 커지면서 테스트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HBM 중심으로 후공정 투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범용 물량은 외주화, 해외 이전되는 등 산업 구조도 재편되고 있다.
고사양 메모리 패키징·테스트에 필요한 시간이 늘면서 범용 메모리에 배정되는 후공정 물량이 부족해지고 있다. 이를 해소할 두 가지 출구로 외주화와 해외 이전을 제시한다. 후공정 물량이 HBM 중심으로 우선 배분되는 동안 범용 물량은 어디선가 처리돼야 한다. 삼성전자는 서버향 DDR5 등 범용 메모리 테스트 물량 일부를 외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어 베트남에 범용 DRAM·NAND 테스트 공장을 건설하는 등 생산거점의 해외 이전도 추진하고 있다.
후공정 투자는 실제 투자 계획으로도 구체화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청주 P&T7에 19조원, 삼성전자는 천안·온양에 총 56조원을 투입해 HBM 후공정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테스트 장비를 중심으로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에는 HBM·첨단 패키징 투자에 따른 장비 발주와 범용 후공정 외주화에 따른 물량 증가라는 두 가지 수혜 경로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검사(번인) 장비와 부품(소켓)·보드, 패키징 소재 등은 생산량 증가와 제품 고사양화의 동시 수혜가 예상된다.
소부장 수혜는 투자 발표와 동시에 실적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검사·계측과 패키징 장비는 신규 투자와 장비 반입 과정에서 수주가 발생하는 반면, 소재·부품과 테스트는 웨이퍼 투입량과 생산량이 늘면서 수요가 확대된다. 다만 발주 시점은 제품과 공정별 병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HBM 사이클에서 TSV·본딩 등 패키징 장비 투자가 전공정보다 먼저 나타난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정해진 발주 순서보다 각 영역의 실적 반영 조건을 구분해서 보는 편이 적절하다.
하반기부터는 신규 발주와 기존 증설 라인의 가동 확대가 맞물리면서 수혜 범위가 넓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시설 증설을 이어가는 가운데 청주 P&T6 매출 반영에 이어 2027년에는 P&T7 장비 발주도 예상된다. 올해 4분기부터 2027년까지는 기존 증설 라인의 생산량 확대와 신규 시설의 웨이퍼 투입이 맞물리면서 수혜가 확산될 전망이다.
수혜가 예상되는 검사·계측은 넥스틴·펨트론·인텍플러스·고영, 테스트 장비는 디아이·유니테스트·네오셈·와이씨, 테스트 부품은 티에프이·ISC, 패키징 소재는 덕산하이메탈, OSAT는 에이팩트·SFA반도체, 패키징 장비는 에스티아이·이오테크닉스를 주목한다.
실적 확인의 핵심은 발주 이후의 생산량 증가 속도다. 범용 메모리는 웨이퍼 투입량과 출하량이, HBM과 서버용 고용량 제품은 적층 수와 공정의 복잡성이 관련 업체의 수혜 규모를 좌우한다. 이번 사이클에서는 설비투자 규모뿐 아니라 실제 웨이퍼 투입량과 가동률, 생산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가 관련 업체의 실적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오승주 인턴기자 seungju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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