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애널리스트는 연금 전략을 ‘장거리 마라톤’에 비유했다. 연금은 적립부터 운용, 인출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관리해야 하는 초장기 자산이기 때문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은퇴 후 자산을 활용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금 관리의 초점도 ‘얼마나 많이 쌓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운용하고 얼마나 오래 인출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금자산 운용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ETF는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ISA를 아우르는 핵심 투자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입자가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고 자산배분을 관리하는 ‘자기주도형 자산관리’의 확산이 ETF 활용 확대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 연금시장 ‘저축’에서 ‘투자’로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대표되는 사적연금은 실질적인 노후소득을 보완하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통상 직장인의 체감 은퇴 시점은 55세 전후지만 1969년 이후 출생자의 국민연금 수령 시점은 만 65세부터다. 은퇴 후 약 10년의 ‘소득 공백기’가 발생하는 만큼 이를 메울 사적연금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25년 말 적립금은 전년보다 16% 늘며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2020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은 14%로 3대 연금 가운데 가장 빠르다. 경제 규모 확대와 임금 상승, 제도 개선 등이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시장 규모가 커지는 동시에 운용 주체도 기업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2025년 말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형(확정급여형) 비중은 45.7%까지 낮아진 반면,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DC형(확정기여형)과 IRP(개인형 퇴직연금)를 합친 비중은 54.3%로 절반을 넘어섰다.
운용 방식 역시 달라지고 있다. 자금을 묶어두는 원리금보장형 대신 펀드와 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을 활용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었다. 2025년 말 실적배당형 적립금은 123조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4% 증가했다. 올해 2분기에는 전체 퇴직연금의 35.7%까지 비중이 높아졌다. 퇴직연금이 단순히 돈을 쌓아두는 ‘저축계좌’에서 가입자가 직접 자산을 배분하는 ‘투자계좌’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개인연금과 대표적인 절세 계좌 ISA에서도 나타난다. 개인연금에서는 투자상품을 직접 선택해 운용하는 연금저축펀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25년 적립금은 전년보다 50.7% 증가한 6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ISA 역시 주식과 ETF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중개형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 연금 운용의 중심에 선 ETF
ETF가 연금자산의 주요 운용 수단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장기 자산배분에 적합한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서다. 우선 일반 액티브 펀드나 타 연금저축상품보다 운용보수가 낮은 상품이 많다. 수십 년에 걸쳐 운용하는 연금은 작은 비용 차이도 장기간 누적되면 최종 자산 규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 효율성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나의 상품으로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내외 주식은 물론 채권과 원자재, 리츠 등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어 분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용이하다. 거래 편의성과 투명성도 투자를 이끄는 요인이다. ETF는 일반 주식처럼 장중에 사고팔 수 있고 보유 자산의 구성 내역도 매일 공개돼 투자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연금계좌와 ISA를 활용하면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연금저축과 IRP에서는 일정 한도 내 납입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계좌 내 운용수익에 대한 과세도 인출 시점까지 미뤄진다. ISA 역시 계좌 안에서 발생한 이익과 손실을 합산한 순이익을 기준으로 비과세·저율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계좌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ETF의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퇴직연금 DC·IRP는 노후자산 보호를 위해 주식형 ETF 등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원칙적으로 전체 적립금의 70%로 제한된다. 연금저축은 위험자산 비중 제한은 없지만 레버리지·인버스 ETF에는 투자할 수 없다. 중개형 ISA는 위험자산 비중 제한이 없어 상대적으로 운용 자유도가 높다.
◆ ETF 투자전략, 이제 실전이다
ETF로 연금을 운용할 때는 ‘어떤 ETF를 살 것인가’보다 여러 연금계좌에 자산을 어떻게 나눠 담을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연금저축과 DC·IRP를 각각 따로 보기보다 전체 연금자산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보고 목표 자산배분을 정한 뒤 계좌별 특성에 맞춰 배치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없는 연금저축에는 주식형 ETF 비중을 높이고, 위험자산이 70%로 제한되는 DC·IRP에는 채권형 ETF나 원리금보장상품 등을 상대적으로 많이 담을 수 있다. 각 계좌의 구성이 똑같을 필요는 없으며 전체 연금자산을 합쳤을 때 목표한 자산배분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산배분은 나이보다 ‘은퇴까지 남은 시간’을 기준으로 달라져야 한다. 같은 50세라도 5년 뒤 은퇴하는 사람과 15년 뒤 은퇴하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은 다르기 때문이다. 리포트는 은퇴까지 20년 이상 남았다면 성장자산을 70~90%, 10~20년은 60~70%, 5~10년은 40~60% 수준으로 가져가는 방식을 예로 들었다. 은퇴가 5년 이내로 다가오면 성장자산을 30~50%로 낮추고 안정자산 비중을 높이는 식이다.
이처럼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서서히 낮춰가는 경로를 ‘글라이드패스’라고 한다. 이를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면 은퇴 예정 시점에 맞춰 자산 비중을 자동 조정하는 TDF를 활용할 수도 있다.
시장 움직임으로 자산 비중이 달라졌다면 이를 원래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는 ‘리밸런싱’도 필요하다. 목적은 단기 수익률을 좇는 것이 아니라 처음 정한 위험 수준을 유지하는 데 있다. 연 1~2회 주기적으로 점검하거나 신규 납입금을 비중이 낮아진 자산에 넣는 방식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은퇴 이후에도 운용은 끝나지 않는다. 2025년 퇴직연금 수급 개시자의 83.5%가 일시금 수령을 선택했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20~30년의 생활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모든 자산을 한꺼번에 현금화하는 것이 반드시 답은 아니다. 당장 쓸 생활비는 현금이나 단기채에 두고 이후 사용할 자금은 채권과 성장자산에 나눠 운용하는 등 인출 시점까지 고려한 자산관리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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