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회사 주식을 허락 없이 찍어낸다? 로빈후드가 연 기묘한 시장 [비트코인 A to Z]
로빈후드가 지난 7월 1일 출시한 자체 블록체인 ‘로빈후드 체인’이 두 달 만에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비트럼 기술로 만든 이더리움 레이어2 메인넷으로 로빈후드가 운영하지만 개발자와 사용자는 허가 없이 앱을 배포하고 이용할 수 있다. 회사는 이를 “금융서비스와 실물자산(RWA)을 위해 만들어진 무허가 AI 네이티브 레이어2”라고 소개한다.

현 사용자뿐 아니라 미래의 AI 에이전트를 위한 금융 인프라를 지향하고 코인보다 주식·원자재·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가 담긴 표현이다. 실제 성적표는 인상적이다. 출시 두 달 만에 사용자가 지불한 수수료 기준으로 이더리움과 솔라나를 제치고 전체 블록체인 1위에 올랐다.

다만 그 수수료를 내고 있는 것은 회사가 내세운 RWA가 아니다. 밈코인이다. 이 괴리가 로빈후드 체인을 읽는 출발점이다.수수료 1위, 그러나 자산 규모는 1% 남짓
TVL(Total Value Locked, 메인넷에 예치된 자산 가치) 기준으로 보면 로빈후드 체인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9월 7일 기준 로빈후드 체인의 TVL은 9억달러 안팎으로 전체 시장의 1% 남짓이다. 이더리움 56%, 솔라나 7%, BNB 7%, 베이스 6%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그런데 사용자가 메인넷에 지불하는 수수료로 순위를 매기면 결과가 뒤집힌다. 높은 거래 회전율 때문이다. 8월 말에서 9월 첫째 주 사이 로빈후드 체인의 탈중앙화거래소(DEX) 거래량은 매일 10억달러를 넘었고 9월 4일에는 처음으로 30억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7일 로빈후드 체인 수수료는 약 2493만달러, 일평균 356만달러였다. 여기서 이더리움 정산비용과 아비트럼에 지급하는 수익 분배분을 빼고 연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10억달러 규모가 나온다. 이는 로빈후드 2027년 전체 예상 매출의 약 15%에 해당하는데 신규 사업치고는 이례적인 성과다. 다만 이 숫자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8월 22일 로빈후드 체인의 하루 수수료는 5만4000달러였다. 11일 만에 82배가 됐다. 7월 한 달 전체 수익도 360만달러에 불과했다. 즉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주를 연율화한 값이기에 지속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거래량을 만들었나. 답은 밈코인이다. 메인넷이 열린 7월 1일 캐시캣(CASHCAT)이라는 밈코인이 등장했다. 서사는 이렇다. 2010년 블라드 테네브와 바이주 바트가 회사를 세울 때 후보로 올렸다가 버린 사명이 ‘캐시캣’이었다. 뉴요커 잡지 프로필에 남아 있던 이 사소한 디테일을 로빈후드가 자기 블록체인을 출시하는 순간 누군가 알아본 것이다. 회사가 부인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이름. 그 모호함 자체가 자산이 됐다.

캐시캣은 출시 일주일 만에 24시간 동안 1700% 넘게 올라 시가총액 1억2000만달러를 돌파했다. 메인넷 첫 주 이 체인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된 페어는 어떤 주식 토큰도 아닌 캐시캣이었다. 이후 흐름은 더 미묘하다. 7월 말 2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테네브가 앱을 시연하던 중 최근 검색 목록에 캐시캣이 노출됐고 차트는 몇 시간 만에 16% 올랐다. 8월 2일에는 새로 만들어진 지갑 하나가 100만달러어치를 사들여 시총을 4000만달러에서 8000만달러로 밀어 올렸다. 8월 5일 로빈후드 자회사인 비트스탬프가 캐시캣을 상장했고 하루 뒤인 8월 6일 로빈후드 본사가 자사 앱과 레전드에 상장했다. 상장 직전 24시간 상승률은 77.7%였다.

밈코인 열기는 개별 종목에서 런치패드로 옮겨갔다. 7월 13일 출시된 폰즈는 누구나 코드 없이 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솔라나의 펌프펀과 같은 모델이다. 8월 30일 하루에만 2만2581개 토큰이 발행됐고 9월 초까지 누적 64만6000개 토큰을 16만7000개 주소가 만들었다. 8월 31일 폰즈가 거둔 수수료 489만달러는 같은 날 펌프펀의 2.8배였고 전체 크립토 런치패드 수수료의 과반수가 넘었다.

여기서 로빈후드 체인만의 현상이 나타난다. 밈코인을 토큰화 주식으로 페어링해서 호가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로 호가하는 ‘AI’, AMC로 호가하는 ‘MEME’, HIMS로 호가하는 BONER 같은 조합이다. 즉 AI 밈코인을 사기 위해 사용자는 해당 밈코인과 페어인 엔비디아 주식 토큰을 사야 한다. 카지노 도박 칩이 기존에는 스테이블코인이나 해당 메인넷의 가스 토큰(ETH, SOL 등등)이었는데 이게 주식 토큰으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현상은 솔라나에도 베이스에도 없는 행태다.

로빈후드 체인 밈코인 광기는 RWA 메인넷을 표방한 취지와는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런데 경영진은 이 현상을 부정하거나 근절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캐시캣을 상장했고 경영진이 밈코인 현상을 지지했다. 로빈후드에 밈코인은 부트스트랩 도구에 가깝다. 신생 체인이 유동성을 확보하는 가장 값싼 방법이 밈코인 투기이고 그 사실을 회사가 모를 리 없다.“역겹다” 비난도 나와
이 흐름의 수혜는 여러 층에 걸쳐 있다. 먼저 로빈후드다. 로빈후드 체인 시퀀서 수익이라는 새 매출원을 확보했다. 도이치뱅크는 로빈후드 체인 수수료 성장을 근거로 실적 추정치와 목표주가를 상향했다.

또 다른 수혜는 유니스왑이다. 로빈후드 체인에서 가장 거래량이 높은 거래소로 9월 4일에는 이 체인 DEX 거래량의 98%를 처리했다. 디파이라마 기준 유니스왑의 24시간 수수료 1359만달러 중 1180만달러가 로빈후드 체인에서 나왔고 30일 누적은 9433만달러다.

밈코인 런치패드 폰즈도 수혜다. 프로토콜 수수료의 상당 부분으로 자체 토큰 PONS를 매입해 소각한다. PONS는 7월 17일 저점 0.0033달러에서 9월 3일 0.7달러까지 올라 시총 5억달러를 넘겼다. 로빈후드 체인 네이티브 토큰 중 가장 큰 시총을 형성하고 있다.

무기한선물을 담당하는 라이터는 로빈후드가 투자한 곳이다. 자체 토큰 LIT 1100만 개를 로빈후드 커뮤니티에 배정했고 로빈후드 지갑을 통한 거래에는 두 배 포인트를 준다. 아비트럼 역시 수혜다. 아비트럼은 로빈후드 체인 순수익의 10%를 받는다.

주목할 점은 이 코인들의 공통 구조다. 아비트럼을 제외하고 거래소 토큰은 거래 매출을 기반으로 자사 코인을 사서 소각한다. 일종의 자사주 매입과 형태가 같다. 다만 자사주 매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기업의 이익은 제품 판매에서 나오지만 이 토큰들의 ‘이익’은 밈코인 회전율에서 나온다. 회전율은 사이클을 타고 코인 거래 사이클은 높낮이가 크기로 악명이 높다.

지난 9월 3일 애덤 애런 AMC엔터테인먼트 최고경영자는 로빈후드가 자사 주식 토큰을 만든 사실을 알고 X에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관행을 두고 “경멸스럽고, 터무니없고, 역겹고, 혐오스럽고,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비열하다”고 썼다. 로빈후드 CEO 블라드 테네브는 이렇게 답변을 달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같은 논쟁이 생기자 관련 밈코인 가격이 폭등했다. 로빈후드 체인 유니스왑 유동성 풀에서 AMC 주식과 페어인 MEME 코인은 위 소식이 뜬 직후 가격이 100배 넘게 올랐다.

애런은 문제가 거의 실존적이라고 받아쳤다. 미국 상장사는 증권법 준수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쓰는데 300마일 떨어진 저지 섬의 계열사가 AMC처럼 보이는 상품을 같은 의무 없이 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유사 가짜 시장”이라 부르며 거래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 내 주식 토큰에 대한 규제와 인식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 이러한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더리움 레이어2 블록체인 전략은 로빈후드만의 것이 아니다. 거래소와 증권사는 지금까지 유통 마진만 가져갔지만 체인을 가지면 시퀀서 수수료라는 새 수익원과 어떤 자산·앱이 자리 잡을지에 대한 통제권을 함께 얻는다. 스테이블코인 산업에서 발행사와 유통사, 메인넷이 이익을 놓고 다투는 것과 같은 수직 통합 경쟁이다.

밈코인은 초기 부트스트래핑 현상이고 진짜 승부는 RWA와 AI 시장에서 날 것이다. 실제로 로빈후드 홈페이지에는 로빈후드 체인을 “금융서비스와 RWA를 위해 만들어진 무허가 AI 네이티브 레이어2”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로빈후드 체인을 지속가능하지 않은 밈코인 광기로만 평가절하하는 것은 반쪽짜리 해석이다. RWA 토큰이 밈코인과 더불어 어떻게 진화하는지, AI 에이전트가 블록체인에서 금융 활동을 할 때 어느 주체가 수혜를 받는지 살펴볼 기회로 보는 편이 낫다. 개인적으로는 0으로 수렴할 확률이 높은 밈코인을 기웃거리기보다 관련 주식이나 적어도 매출을 기반으로 바이백을 하는 코인에 관심을 갖는 쪽이 건전해 보인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