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줄이고 돈 아낀다… 美 Z세대 ‘소프트 허미팅’ 확산
미국 Z세대 사이에서 약속을 줄이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소프트 허미팅(soft hermitting)’이 확산하고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정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보다 외출에 드는 돈과 시간, 에너지를 아끼려는 젊은 층이 늘어난 영향이다. 고물가 속에서 Z세대의 인간관계와 여가 방식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15일(현지 시각) 미국 학업 지원 플랫폼 페이퍼스아울(PapersOwl)이 미국에 거주하는 18~28세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가 ‘약속을 거절하고 의도적으로 집에 머무르는 소프트 허미팅이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9%에 그쳤다.

‘소프트 허미팅’은 은둔자를 뜻하는 ‘허밋(hermit)’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사회생활을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거나 부담스러운 약속은 선택적으로 거절하고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뜻한다. 힐링보다 '돈'... Z세대가 약속 줄이는 이유
특히 약속을 줄이는 데 경제적 부담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속이나 모임에 빠지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가운데 61%는 ‘돈을 아낄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응답도 60%였다. 반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는 답변은 29%에 그쳤다.

집에 머무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 외에도 다양했다. 전체 응답자의 55%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에너지가 소모돼서’라고 답했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가 50%, ‘외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가 42%로 뒤를 이었다. 직장이나 학교생활로 지쳤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32%였다.

약속이나 모임에 빠지는 데 대한 불안감도 크지 않았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유행에서 뒤처질까 불안해하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가 젊은 층의 심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사용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약속이나 경험을 놓쳐도 괜찮거나 오히려 좋다고 답한 이들이 50%로, 불안하거나 실망스럽다는 응답(27%)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응답자의 51%는 단순히 만나 대화를 나누기보다 특정 활동을 함께하는 부담 없는 모임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고 답했다. 반면 별다른 활동 없이 대화를 중심으로 만나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5%에 불과했다.

디지털 기기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응답자의 51%는 스마트폰 대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책이나 뜨개질 등 화면이 필요 없는 활동거리를 담은 이른바 ‘아날로그 백(analog bag)’을 정기적으로 또는 가끔 들고 다닌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41%는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페이퍼스아울은 이러한 흐름이 Z세대가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실제 응답자의 82%가 특정 활동을 중심으로 한 모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보다 비용과 에너지, 시간을 고려해 약속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친구 관계에서 느끼는 경제적 부담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금융 플랫폼 셀프파이낸셜이 지난해 미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8.8%가 친구들과 어울릴 때 경제적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돈을 둘러싼 갈등으로 친구와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끊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4.7%에 달했다. 친구 만남도 줄였다… 국내도 ‘프렌드플레이션’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친구와의 만남에 드는 비용이 커지면서 모임과 관련 지출을 줄이는 이른바 ‘프렌드플레이션(friendflation)’ 현상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지난 6월 Z세대 6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3%가 물가 상승으로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을 부담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71.2%는 최근 1년 동안 친구 만남이나 모임 관련 지출을 줄였고, 64.6%는 평소 일주일간 친구를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친구를 한 번 만날 때 사용하는 비용은 주로 3만~5만원 수준이었다. 응답자의 약 3분의 1은 한 번에 5만원 이상을 지출할 때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식사비였다. 복수응답 기준 Z세대의 78.4%가 식사비를 꼽았고 커피·디저트비(40.1%), 주류비(29.7%), 생일·기념일비(25.8%)가 뒤를 이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