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베일리·원펜타스로 다진 입지
여의도·성수로 확장

별도 하이엔드 브랜드 없이 ‘래미안’ 하나로 승부
한강변 핵심지 집적 전략,
프리미엄 브랜드 입지 굳힐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116.95㎡(46평)는 지난 9월 21일 종전 최고가에서 2억원 오른 94억원에 신고가를 기록했다. 사진은 레미안 원베일리 전경.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116.95㎡(46평)는 지난 9월 21일 종전 최고가에서 2억원 오른 94억원에 신고가를 기록했다. 사진은 레미안 원베일리 전경.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때 래미안의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6년 전후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둘러싸고 매각·철수설이 돌았고 실제로 정비사업 수주가 수년간 끊겼다. 새 래미안이 시장에 등장하는 빈도가 줄어든 사이 기존 단지의 브랜드 가치는 오히려 높아졌다. 의도한 전략은 아니었지만 ‘래미안은 흔하지 않다’는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5년 만에 정비사업 시장에 돌아온 삼성물산이 향한 곳은 반포였다. 신반포15차를 시작으로 반포 핵심 사업지를 잇달아 확보했고 이제는 여의도와 성수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반포에서 존재감을 키운 래미안이 한강변 핵심 주거지를 따라 이어지며 ‘래미안 벨트’를 그리고 있다.

◆반포에서 확인한 ‘래미안’ 티켓 파워

래미안 벨트의 출발점은 2008년 분양한 ‘래미안 퍼스티지’다. 반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이 단지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시장 경색 속에서도 3.3㎡당 평균 3055만원의 분양가를 기록했다. 강남권 일반 재건축 아파트 가운데 ‘3000만원대 분양가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다만 초기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여파로 1순위 청약에서 미달하는 등 순탄치 않은 출발을 했다. 이후 완판에 성공하며 반포를 대표하는 고급 주거단지로 자리 잡았다.

2016년 이후 수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정비사업 시장에 돌아온 삼성물산은 다시 반포를 택했다. 2020년 ‘래미안 원펜타스’를 수주했고 우여곡절 끝에 2024년 7월 선보였다. 이 단지는 3.3㎡당 평균 분양가가 6736만원으로 당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 가운데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일반공급 178가구에 9만3864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527.3대 1에 달했다. 래미안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반포 핵심 입지, 그리고 당시 주변 시세와 분양가 사이의 큰 격차가 부각되면서 20억원이 넘는 높은 분양가(전용 84㎡ 기준) 장벽마저 무색하게 만들며 청약 수요를 끌어들였다.

2025년 11월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은 3.3㎡당 8484만원으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 최고가 기록을 또 한 번 깼다. 일반공급 230가구에는 5만4631명이 몰려 평균 23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반포·잠원 일대에는 래미안 단지가 하나둘 촘촘하게 쌓였다. 2009년 입주한 래미안 퍼스티지를 시작으로 래미안 원베일리, 원펜타스, 트리니원 등이 들어섰고 올해 5월에는 신반포19·25차 통합 재건축 시공권까지 확보했다. 삼성물산이 제안한 ‘래미안 일루체라’가 들어서면 반포·잠원 일대에서 래미안의 집적도는 한층 높아진다.

삼성물산은 래미안 일루체라에 대해 전체 616가구 중 약 87%인 533가구의 영구 한강 조망을 확보하는 설계를 제안했다. 이 밖에 180m 높이의 반포 최대 랜드마크 타워, 듀얼 스카이 커뮤니티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여의도·성수로 번지는 래미안 벨트

반포에서 래미안의 브랜드 경쟁력을 쌓아온 삼성물산은 한강변 핵심 주거지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여의도에서는 재건축이 본격화한 여러 사업지 가운데 한강변에 맞닿은 핵심 단지를 연이어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대교아파트에 이어 올해 목화아파트 시공권을 따냈고 여의도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시범아파트까지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시범까지 확보하면 여의나루역에서 63빌딩 방향으로 이어지는 동여의도 한강변에 래미안 브랜드 타운이 형성될 수 있다.

대교아파트는 지하 6층~지상 최고 49층, 4개 동 912가구 규모로 재건축되며 ‘래미안 와이츠’가 들어선다. 목화아파트는 삼성물산이 여의도에서 어떤 상품을 만들려는지를 보여준다. 여의나루역과 한강공원을 바로 앞에 둔 입지를 활용해 420가구 모두 한강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동 배치와 평면을 설계하고 2·3면 개방형과 파노라마형 평면을 적용한다. 한강을 바라보는 라운지와 리버 테라스 등 커뮤니티 시설도 계획했다. 한강변이라는 입지를 래미안의 상품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시범아파트는 여의도 재건축 최대어다. 공사비는 약 2조1616억원에 달한다. 두 차례 입찰에 삼성물산만 참여하면서 모두 유찰됐고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은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다만 수의계약 협상과 토지 등 소유자 의결 절차가 남아 있어 삼성물산의 시공권 확보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여의도가 한강변 핵심 사업지를 연결해 공간적 집적도를 높이는 곳이라면 성수는 래미안의 상품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무대에 가깝다. 삼성물산은 올해 9월 성수3지구 재개발 시공권을 확보했다. 성수2가1동 일대 약 11만㎡에 최고 72층, 11개 동 2203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공사비는 1조8275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이 제안한 단지명은 ‘래미안 레비르 성수’다.

성수에서는 주거상품뿐 아니라 상업시설까지 차별화하는 전략을 내놨다. 삼성물산은 사내에 상가 관련 전담 조직을 두고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와 협업해 단지 내 상가의 업종 구성과 상품 기획 등을 아우르는 머천다이징(MD)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를 유치해 상가 경쟁력을 높이고 서울숲 상권과 맞닿은 성수의 입지적 장점을 단지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주거상품도 한강변 초고층 단지에 걸맞게 설계한다. 한강을 바라보는 초고층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상당수 가구에 한강 조망을 확보하는 설계를 적용한다. 단지 내 커뮤니티와 조경에도 공을 들인다. 반포에서 쌓은 고급 주거상품의 경험을 성수에서는 초고층, 한강 조망, 상업시설을 결합한 새로운 주거상품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하이엔드 브랜드 없이 ‘래미안’ 하나로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DL이앤씨의 ‘아크로’, 롯데건설의 ‘르엘’ 등 경쟁사들이 별도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삼성물산은 ‘래미안’ 단일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원베일리’, ‘원펜타스’, ‘트리니원’, ‘일루체라’처럼 단지별 이름과 상품을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고급화하고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고급 주거상품에서 쌓은 경쟁력을 별도의 브랜드로 나누지 않고 ‘래미안’ 하나에 계속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포에서 원베일리와 원펜타스로 쌓은 경험이 트리니원과 일루체라로 이어지고 여의도와 성수에서 새로운 상품을 선보일수록 다시 래미안의 브랜드 자산이 된다.

반포·여의도·성수로 이어지는 ‘래미안 벨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개별 단지의 수주를 넘어 서울의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 곳곳에서 래미안을 경험하게 하면 입지 자체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가 생긴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별도로 만들지 않아도 핵심 입지와 상품을 통해 ‘래미안=고급 주거’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주거 상품의 고급화와 수요의 세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래미안’ 하나로 다양한 고급 수요에 대응하는 전략이 앞으로도 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