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력이 높다? 낮다?’

조금 생소한 이 단어는 일본에서 ‘여성스러움’의 정도를 가리킨다.

즉, ‘여자력’이 높다는 것은 ‘여성스럽다’의 다른 말.

하지만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대학생들은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http://csaimages.com/images/istockprofile/csa_vector_ds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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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J 씨는 밥을 먹다 잠시 물통을 가지러 갔다 왔다. 그러자 점장은 그녀에게 “여자아이인데, 입에 뭐 넣고 걷는 거 아니야”라는 소리를 했다.


# 단체 공지 채팅방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장품 브랜드이니 ‘닮고 싶은 얼굴이 되기 위해 화장을 꼭 하고 오라’고 당부한다. 물론 여기에 남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본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한국보다 훨씬 여성의 ‘여자다움’을 강요한다. ‘여자력(女子力)’이라는 단어가 만연한 것 역시 이를 반증하는 지표.


2009년에 신조어로 등장한 ‘여자력’은 이제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쓰이는 생활 밀착형 단어가 됐다. 방송에서도 요리나 가사 등을 ‘여자력’이 높은 활동이라 부른다.


여자력에 관한 책이나 여자력을 높여주는 이모티콘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웹사이트인 야후 재팬에서 ‘여자력’을 검색하면 여자력 테스트, 상대방에게 여자력을 잘 보여주는 방법 등의 게시물이 나온다.


‘여자력(女子力) ’?...여성스러움 강요하는 일본문화


야후 재팬의 '여자력' 검색 결과. 자신의 '여자력'을 점수로 알려주는 테스트나

'여자력'이 낮다고 생각되는 행동 50가지를 소개하는 글이 나온다.


평범한 포스트잇 대신 하트 모양이나 꽃 모양의 포스트잇을 사용해 '여자력'을 어필하라는 것이 예시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 이 단어는 꽤 영향력 있게 퍼져있다.


이런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가장 피부로 느끼는 건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도쿄에서 교환학생 중인 C 씨는 “네일아트를 자주 즐겨해 ‘여자력’이 높다는 소리를 듣다가 요리를 잘 하지 못하니 ‘여자력’이 낮다는 말을 들었다”며, “사소한 일에도 여성성을 높고 낮음으로 평가하듯이 말하는 게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이 느끼는 ‘여자력’에 대한 어감은 비슷했다. 흔히 가정적이고 손재주가 좋은 전형적인 현모양처 이미지가 높은 ‘여자력’의 기준이다. 반면, 일본 남자들은 ‘여자력’이 높은 사람이 이상형으로 꼽기도 하고, 여자들끼리도 ‘여자력’이 높다는 것을 칭찬으로 사용한다. 즉, 일본 내에서는 이 단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다는 것이다.


한 유학생의 일본인 친구는 “예전에는 (일본에서) 여성의 화장이 예의와 연결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화장을 안 하면 예의가 없는 거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꾸미는 일 역시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일본 내의 전반적인 기류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여성스럽다’, ‘소녀답다’는 일반적인 표현 이외에도 ‘여자력’과 같은 어휘의 등장 자체가 여성성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낙태문제와 같은 굵직한 이슈에는 반응하면서, ‘여자력’과 같은 사소하지만 사회 내에 널리 퍼진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무심하다는 것이다.


한편, ‘여자력’과 비슷한 ‘남자력’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여자력의 반대어로 등장한 듯하나 ‘여자력’보다는 빈도가 낮게 쓰인다.


김민경 인턴기자 apea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