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상인들의 전통시장 '진격'


강화풍물시장엔 2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이 시장 2층 구석엔 이색 가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큰 화덕에 불을 지펴 피자를 굽는 ‘화덕식당’이다.


강화도의 명물인 밴댕이 요리와 순대국밥집이 촘촘하게 들어선 시장 2층의 유일한 피자 가게다. 화덕식당은 화장실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어 음식점 입지로는 빵점이다. 하지만 이 작은 피자가게가 강화풍물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거상’의 꿈을 꾸는 다섯 청년상인이 ‘맨땅에 헤딩’을 해가며 새로운 길을 열어 가고 있어서다.



청년상인들의 전통시장


도시 청년 5명이 시골 장터에서 젊은 생각으로 변화를 불러오며 ‘거상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5명의 창업 멤버가 강화풍물시장 내 피자집 화덕식당 앞에 함께 모였다. 강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egkang@hankyung.com



‘거상’ 꿈꾸는 다섯 청년의 ‘푸른 바람’

화덕시장은 5명의 청년상인이 의기투합해 2013년 말 문을 열었다. 강화풍물시장이 중소기업청에서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자 육성사업단장을 맡은 강원재 씨가 청년 장사꾼을 모집하면서 출발했다. 시골 장터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장 상인회가 적극 도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보이 통역사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이력의 다섯 청년이 모였다. 대부분 외인부대다. 강화도 토박이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뒤 관광 통역 일을 하다 합류한 김토일 씨(27)가 유일하다. ‘청풍상회’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전통시장에 젊은 바람을 몰고 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청년상인들의 전통시장


피자가게인 화덕식당은 청풍상회의 첫 아이템이다. 문화행사 기획자 출신이자 다섯 명 중 최연장자 유명상 씨(32)가 기본적인 사업 구상을 다듬었다. 유씨는 쓰레기 집하장이던 화장실 앞 공터에 식당 공간을 마련했다. 내부 집기 등을 시장에서 구한 폐품을 활용했다.


아무도 요리 경험이 없었지만 이 역시 협업으로 극복했다. 건어물 판매 경험이 있는 조성현 씨(29)가 당시 만났던 한 전문가에게 어렵사리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워 왔다. 힙합을 좋아해 춤꾼과 작곡에 빠졌던 신희승 씨(27)는 다양한 피자 반죽 레시피를 만들었다. “비보이의 자유정신과 예술성을 레시피에 녹여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2013년 12월 문을 연 화덕시장은 이제 2년째지만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창업 초기 30만원에 불과하던 월 판매액이 지난 3월 1000만원을 찍었다. 15개월 만에 30배 넘게 뛴 것이다. 힘을 얻은 청풍상회는 최근 족욕카페 게스트하우스 이동장터로 사업을 확대했다.


경영학과를 휴학하고 합류한 이충현 씨(26)도 “협업으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제일 큰 소득”이라고 전했다.


가업을 2배로 키운 청년상인의 혁신


청년상인들의 전통시장

수원 팔달문시장서 가업을 승계한 홍성현 사장.


가업을 물려받아 전통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청년상인 유형도 주목받고 있다. 수원 팔달문시장에서 옷가게 2개와 죽집 하나를 운영하는 홍성현 씨(38)가 대표적이다.


홍씨는 2005년 팔달문 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던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눕는 바람에 갑작스레 경영을 떠맡았다. 그는 지난해 3개 점포에서 34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거상의 꿈을 향해 한발씩 전진하고 있다. 처음 가게에 몸담은 10년 전보다 매출이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홍씨는 “처음 물려받았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젊은 사람이 장사한다는 게 당시는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들이 안 가는 길을 내가 개척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큽니다.”


이런 생각은 2년 전 그가 혁신의 깃발을 높이 들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한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 입학해 경영혁신의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였다.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을 롤 모델로 삼았다.


또 다른 큰 벽은 타성에 젖은 직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대부분 40대인 직원들은 20대 총각 사장을 인정하지 않고 꾀를 부리기 일쑤였다. ‘마네킹을 자주 바꾸자’고 하면 ‘고객들이 생소해 한다’며 반대하는 식이었다. 12시간인 근무시간을 9시간으로 줄이고 업무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마저 직원들의 ‘무조건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8명 중 절반을 물갈이했다. 주먹구구식 경영을 탈피해 분임토의도 시작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분임토의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됐다. 상품 구매 당일 ‘해피콜’을 넣어 의류 보관이나 세탁 방법을 설명해주자 재구매율도 60% 넘게 올랐다. 홍 사장은 “처음에는 고민이 컸고 무척 외로웠지만 이제 ‘내가 모범이 되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며 “최 회장처럼 큰 사업을 일굴 수 있겠다는 기대로 의욕이 넘친다”고 말했다.


강창동 한국경제신문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