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함을 노린 이른바 '취업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비밀 군사 조직에 취직시켜주겠다며 취준생들로부터 억대의 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 등 청와대 고위층과 친분이 있다며 취준생에게 접근해 취업을 미끼로 수백만 원의 로비자금을 요구했다.


이들에게 속은 사람만 119명, 피해액이 무려 6억7000여만 원에 달한다. 나는 절대 안 속는다고 장담하지 마시라. 언제 어디서 눈 뜬 채 코를 베일 줄 모르는 세상이다. 갈수록 진화하는 취업사기 유형과 예방·대응법을 알아봤다.


취준생 A씨는 최근 한 구인·구직 포털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고 명시된 이메일로 자신의 이력서를 보냈다. 고급 수입시계를 유통하는 회사에서 사무보조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사흘 뒤 해당업체로부터 합격전화를 받았다. 이틀 뒤 업무 관련 교육을 받고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하라는 전화였다. 업체 측은 우선 입사동의서와 급여 입금용 은행 계좌번호·비밀번호가 필요하다며 관련 서류를 작성해 자신들의 이메일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출입보안카드 발급 신청을 위한 체크카드가 필요하다며 집으로 퀵서비스를 보낼 테니 그 편에 카드를 보내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A씨는 업체 측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전화를 끊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하마터면 자신의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뻔했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취업사기..유형별 대응법



가뜩이나 높아진 취업장벽에 각종 사기행각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취준생들이 두 번 울고 있다. 보이스피싱 등을 통해 취준생의 계좌정보를 빼낸 다음 해당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사용하거나 스팸문자 등을 이용해 "사용하지 않는 통장을 임대해주면 계좌당 얼마를 주겠다"고 유혹한 뒤 계좌를 넘기면 잠적하는 등 그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른바 '고액 알바'라는 말에 속아 20~30대 취준생들이 범죄의 늪에 빠진 사례마저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 1월 25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고액 아르바이트 글에 현혹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인출책'으로 일한 1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넉 달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금 46억 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김 모(28) 씨 등 열 명은 징역 1년6월 등의 실형이 확정됐고, 나머지 세 명은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통장의 양도 또는 대여행위를 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며 "설사 모르고 넘겼더라도 처벌 유무를 가릴 조사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취업을 명목으로 현금카드나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요구는 100% 사기라고 보면 된다"며 "대포통장에 명의가 도용되면 1년 동안 모든 금융거래가 정지되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이 흔하게 겪는 취업사기 유형에는 어떤 게 있을까? 최근 취업 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837명을 대상으로 '취업관련 사기 경험'을 조사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47.1%가 '취업 관련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2012년 같은 조사결과(33.2%)보다 무려 13.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구직활동을 하며 겪은 사기 유형으로는 연봉 등 고용조건을 허위·과장한 경우가 56.1%(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입사 후 공고와 다른 자격조건을 제시하거나 채용할 것처럼 속이고 채용하지 않은 경우, 채용공고와 달리 다단계 영업을 강요당했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취업을 미끼로 통장·현금카드·보안카드 등을 요구하거나 취업을 보장한다며 자격증 취득을 강요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취업 사기로 절반 이상(55.1%)이 금전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액은 평균 242만 원에 달한다.


임민욱 사람인 홍보팀장은 "채용공고가 빈번하게 올라오는 업체나 전문직종을 뽑지 않는데도 급여를 많이 준다는 채용공고가 올라오면 일단 의심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르바이트 등에 대한 채용공고를 올려놓고 대표 유선번호 없이 휴대전화번호만 기재돼 있는 경우 특히 주의하는 게 좋다. 좋은 기업에 입사시켜주겠다거나 각종 인·적성시험 문제지·답안지를 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


<취업사기 유형별 대응법/ 자료=사람인>

◆ 금융정보 요구하는 사기는 즉각 신고부터

최근 취업된 것처럼 속여 급여통장 명목으로 공인인증서 등의 금융정보를 요구한 뒤 명의도용 대출을 받아 잠적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취업 구비서류에 대해 모르는 사회초년생을 노린 악성 사기다. 기업은 입사 전 개인 금융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 즉시 경찰서나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고 은행 영업점에도 알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 통장을 넘겨줬다 대포통장으로 악용되는 경우 범죄행위 방조로 손해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다.


◆ 절박함 노린 허위 문자 함부로 클릭 말아야

최근 잦은 금융사기 유형인 파밍·스미싱 등이 구직자를 대상으로도 벌어지고 있다. 합격통보인 것처럼 메일을 보내 악성 코드로 개인정보를 빼가거나 문자 클릭 시 소액결제로 돈을 빼가는 식이다. 무작위로 발생하는 사기인 만큼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출처가 불분명한 메일이나 문자를 함부로 눌러서는 안 된다. 메일 계정이 회사 도메인을 쓰는지, 해당 기업 인사담당자의 신원과 연락처가 확실한지 체크해야 한다.


◆ 교재·자격증 취득 결제했다면 취소절차 확인

취업과 연계된 교육과정이라며 연간 교재비나 교육비 등을 결제하도록 하는 수법도 빈번하다. 초기에 돈을 요구하는 기업이라면 바로 응하지 말고 해당 업체 등을 검색해 피해사례가 없는지 자세히 확인하도록 한다. 결제한 뒤 사기라는 것을 깨닫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끝까지 방법을 찾아보자. 할부거래 금액이 20만 원 이상이거나 3개월 이상인 경우라면 카드회사를 상대로 청약철회나 할부금 지급거절을 요청할 수 있다. 할부거래는 7일, 방문판매는 14일 이내 청약철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