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신예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


[PROFILE]

이길보라

1990년생

2014년 제15회 장애인영화제 대상

2014년 <반짝이는 박수 소리> 제작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입학


23일 개봉한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극장가에 드물게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로, 청각장애 부모와 건청인 자녀들로 이뤄진 가족 이야기다. 감독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26살의 신예 여성 감독인 이길보라 씨. 그녀는 기존 장애인 소재 영화와는 달리 밝고 유쾌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18살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인도로 여행을 떠나 8개월간 아시아 8개국을 여행한 그녀. 학교 밖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그 경험을 토대로 ‘길은 학교다’, ‘로드스쿨러’와 같은 책을 펴낸 그녀의 삶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극장에 걸리다


이길보라 감독이 관객 앞에 영화를 선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로드스쿨러’라는 중편 영화 등을 찍기도 했다. “영화제를 통해 상영했다. 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많이 봤을 것이라 믿는다.(웃음)”


로드스쿨러는 이길보라 감독의 삶을 담은 영화다. 18살,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택한 그녀. 8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그녀는 스스로를 ‘로드스쿨러’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길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와 같은 가치관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꿈을 키워갔다.


“고등학교를 안 다니는 것을 평범하게 안 보더라. 그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 당시에는 번거로웠다.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내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삶의 가치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도구가 필요했고, 그녀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렇게 출발했다.



신예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

봄에 시작해 겨울에 작업을 마쳤다. 편집 등 제작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처음부터 배워갔던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 촬영도구도 지인에게 빌려 사용했다. “새 카메라를 중고로 만들어 버렸다.(웃음) 작품이 잘 돼 상금을 받아 가장 먼저 카메라 빌려준 이에게 보답을 했다.”


이길보라 감독은 “제작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찍고 수정하고 다시 촬영하고 그 과정을 반복했다. 내가 꿈꿨던 일이 이런 것인가 회의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생각을 바꾼 것은 관객과 만남이다. 그녀는 작품 상영 후 관객들의 반응에서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전해줬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관객과의 대화는 나에게 또 다른 깨우침의 기회가 됐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만의 매력에 빠졌다.”


이길보라 감독의 영화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극장에 걸린 본인의 영화를 다시금 보러 갈 것이냐고 묻자, “1000번 이상은 본거 같다”고 손사래 쳤다.


이번 영화의 주제는 이길보라 감독의 가족 이야기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부모가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더 불편하다고 했다.


“두 분 다 청각장애가 있다. 수화로 우리 가족은 대화를 한다. 나는 부모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연스레 세상사는 법을 배웠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직접 부모에게 전달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다.


이길보라 감독의 부모들 역시 본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소수 자들에게 카메라는 무기가 된다”. 그녀의 생각이다. 이길보라 감독은 “사람들 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도 그런 측면에서 억눌린 부분이 있었고, 그걸 전달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을 먼저 보낼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유쾌하다. 장말 잘생기고 미인이다.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그걸 몰라주니까 즐겁고 유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더라.”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깨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다큐를 계속할까. “내 명함에는 이야기꾼이라고 새겨져 있다. 나의 천직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매체인 글과 다큐멘터리를 활용해 내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자퇴, 길에서 스승을 만나다


신예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


고등학교 1학년, 18살 때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여행을 떠났다. NGO활동을 꿈꾸던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삶을 그려왔다. 그녀는 “꿈을 위해 좋은 대학과 좋은 방송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난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이지 그 직업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닌데, 그런 점이 의문이었다. 오히려 책보다 내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은 사람들의 삶을 직접 봐야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1학년을 마치고 여행을 가게 됐다.”


결심 후 바로 고등학교를 자퇴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스승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여행을 통해 길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길에서 배우는 공부가 진짜라는 확신도 들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여행은 그녀의 삶에 보탬이 됐다. 이길보라 감독은 “홈스테이를 이용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소통했다. 당시만 해도 다이어리에 이메일을 적어주는 것이 유일한 연락수단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어서 대화가 더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경제적 자립심이 강했던 그녀는 여행 경비도 스스로 마련했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여행 계획서를 만들고, 후원을 받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을 찾아가 후원을 부탁했다. 이 여행을 통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그 방법이 통했고, 당시 800만원을 후원받았다.


그녀는 여행 후 경험을 담아 책을 냈다. “여행에서의 배움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책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현재 이길보라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제작이 혼자서는 굉장히 힘들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학교에는 좋은 동료와 교수님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만든 이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해온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느꼈다.”


청춘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20대는 불안한 시기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꿈을 가진 이들과 함께 어울리면 쉽게 고민이 해결될 수도 있다. 나를 지지해 주고 함께 어울려 줄 친구들을 많이 만나길 바란다.”


글 이진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