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는 믿음을 가지며

[한경잡앤조이=손해인 업스테이지 리더] 늘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얼리어답터가 되지 못하면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문·이과 개념도 많이 사라지고, 초등학생 때부터 코딩공부를 한다고 하니 공감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아마 나와 같은 시대의 문과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을 것 같다.

나의 첫 업무는 게임 커뮤니티 댓글 지원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AI/딥러닝 교육과 개발 프로그램 마케팅 일을 하게 된 것처럼 현재 AI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산업과 직무에서도 머지않아 AI와 연결된 업무를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써보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 IT와 거리가 멀었던 내가 AI 업계에서 일하면서 겪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전달함으로써 언젠가 AI와 관련된 업무를 하게 될, 이전의 나와 같은 분들께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회사를 다니면서 내 마음가짐에 큰 변화를 준 몇 가지 사건과 순간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어느 날 업무회의에서 개발자와 나눴던 대화였다.

“음, 그건 개발자가 알 것 같은데 같이 확인해보시죠”

(응?? 분명 난 개발자와 대화 중이라 생각했는데, 개발자인 당신이 개발자가 알 것 같다고 말씀하시다니??)

“개발자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라고 반문했다. 그 질문으로 나는 개발과 관련된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눠지며, 개발자들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마케팅만 하더라도 브랜딩, 퍼포먼스, CRM, PR, 콘텐츠 마케팅 등 모두 분야가 다르지만 다른 팀이 봤을 때 하나의 마케팅 분야로 보듯, 나의 관점에서 개발팀의 모든 사람은 마찬가지로 ‘개발자’였다.

개발업무하면 늘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정관점 때문인지 그동안 개발 직군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함께 업무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개발자’라고 부르는 그들의 세계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자면, AI 업계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개발 직군은 아래와 같다.

**AI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AI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레스토랑을 예로 든다면 AI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는 우리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연구하는 역할이라 볼 수 있다. AI 엔지니어는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요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요리 도구들을 써야하는지 연구하고, 재료와 고객에 따라 레시피를 수정하기도 한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제대로 된 식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손질까지 담당하는 역할이며, MLops(엠엘옵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주방 운영을 담당한다. 효율적인 주방 동선 세팅이나 재료 손질 효율화를 위해 기계를 개발/구입하는 역할, 맛있게 만들어진 요리를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플레이팅을 연구하고 직접 플레이팅 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매우 단순화 된 비유이긴 하지만 중요한 점은 각각 맡은 역할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로 묶여 보일 수 있지만 모두 전문 분야와 배경 지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레스토랑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알리고, 손님들의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도록 고민하는 마케터로서 주방 일을 상세하게 몰랐던 것이다. 앞서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었던 그 분은 ‘AI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였다. “그건 개발자 분이 더 잘 알 것 같은데요”라는 말은 ‘MLOp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요리를 어떻게 플레이팅할 것인지는 물어보자는 의도였다.

위 대화는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개발 업무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지만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상세한 노하우를 모르듯이, AI 리서처 또한 직접 AI 모델은 잘 만들 수 있으나 그걸 고객이 사용하는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프로덕션 단계의 노하우는 자세히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발자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라는 얼핏 들으면 바보 같아 보이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플레이팅 전문가에게 레시피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을 것이다.
△업스테이지 직원들이 오피스에서 서로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업스테이지 직원들이 오피스에서 서로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던 가장 큰 요인은 업계 전반에 자리 잡은 공유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를 반증하듯 현재 AI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은 모두 ‘공유 문화’를 전방위적으로 실천 중이다. 아직 정답이 없는 새로운 시장에서 정답을 찾아가려면, 하나의 제품을 만들 때 관여되는 세일즈, 마케팅, 디자인, AI엔지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모든 팀들이 같은 선상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전사 차원에서 AI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전 직장인 IT 회사도 내가 궁금한 직무의 팀 메일 그룹에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었고, 내부 자료 또한 허브에서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구조였다. 기술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담당자에게 질문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서라도 설명해주거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현재 몸담고 있는 AI 스타트업도 각자가 오너십을 가지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본인의 업무에 연관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회사의 상황을 누구나 파악할 수 있게 노션, 슬랙 등을 통해 투명하고 자유롭게 공유한다. 비개발자를 위한 ‘수식도 코드도 없는 딥러닝 강의', ’데이터의 중요성' 등의 사내 스터디를 운영하거나 ‘AI 업계에서의 비즈니스'라는 내부 강의를 비즈니스팀에서 준비해 개발팀을 포함한 전직원에게 세션을 진행하는 등 멤버 모두의 컨센서스를 맞추는데 리소스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문화는 제한적인 정보가 곧 권력이 되는 현상을 지양하게 하고 모두가 의견을 자유롭게 내어 함께 답을 찾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공유 문화 중 대표적인 것이 오픈소스화된 기술을 모두가 참여해서 더 발전시키고 또 다시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문화인데, 이러한 제한 없는 공유 문화가 AI 기술의 발전과 비즈니스의 확장을 가속화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AI DNA 가 가득한 곳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질문'도 ’당연히 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인정해주는 회사와 팀원들을 만났다. 그렇다고 매번 같은 질문을 또 할 수는 없기에 한 번 들었던 답변은 반드시 나만의 문장들로 기록 해두고 다른 비개발자들이나 팀원들이 동일한 질문을 하면 대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AI 업계는 함께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성장하고 있다.
△장충동에서 AI 개발자들과 Year end party 진행 중인 모습.
△장충동에서 AI 개발자들과 Year end party 진행 중인 모습.
비개발직의 일원으로서 정보를 받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나의 일을 찾아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럼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내가 여러 사람을 통해 하나씩 배우고 성장하는 만큼 회사와 AI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기여해야하는지 또 다른 관점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앞서 얘기했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AI의 기술적인 부분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한 때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다시 학사 과정을 밟아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때에도 일단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AI 커뮤니티 네트워킹 행사를 주최하고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AI 업계의 공유 문화를 확장해보는 일이었다. 내가 가장 자신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이 업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사람들을 모아 함께 정보를 나누고 관계를 쌓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씩 행사를 진행하던 중,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것도 한 개발자분과의 대화 덕분이었다.

“전 친구 3명이랑 약속 잡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어떻게 매번 수십 명의 사람들을 모아 행사를 진행하세요?”

‘이런 걸 어떻게 잘하세요?’는 항상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내가 받고나니 ‘나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일을 잘 해낼 수 있구나’하는 위안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역량을 어떻게 활용해야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비단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가령, 비개발직군의 스터디 리딩, 회사 정보 정리, 분위기 메이커 등 사소한 것부터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번거롭거나 쉽지 않은 일이 어느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나만의 업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의 스타트업에서도 늘 그 고민을 한다. 나는 과연 어떤 부분을 기여할 수 있는가, 내가 이들에게 도움 받는 만큼 나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사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제품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를 세워야하는 상황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여전히 정답이 없는 이 곳에서 함께 답을 찾아가고 있듯이, 나의 일에 있어서도 오늘은 어떤 일을 통해 우리의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묻고 또 질문한다. 이것 또한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는 믿음을 가지며.

손해인 씨는 실리콘밸리 기반 IT 기업 &NVIDIA&에서 AI, 딥러닝 교육과 개발 프로그램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고, 현재는 &AI Pack 솔루션&으로 기업이 손쉽게 AI 기술을 도입하여 그들의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타트업 &Upstage&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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