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무기력한 ‘나’, 그마저도 ‘나’이니까 솔직해지자

[한경잡앤조이=백윤희 매니저] “나는 감성적인 시 읽기와 문장 수집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알면 오그라든다고 할 테니 숨겨야지.”

“나는 딱히 취미가 없지만 본업도 하고 취미도 즐기는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취미 많은 척 해야지.”

“나는 여행 다니는 걸 싫어하지만 소극적이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 여행을 좋아하는 척 해야지.”

“나는 가끔 줄임말 쓰며 깔깔대기를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쓰지 말아야지.”
△일반 쓰레기가 일쓰라니 가당치도 않죠(이미지=백윤희 씨).
△일반 쓰레기가 일쓰라니 가당치도 않죠(이미지=백윤희 씨).
위는 나와 내 주변인들이 회사에서 느낀 생각들이다. 나는 밖보다 집에 있는 게 좋고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지만 완전 초년생 때는 숨겼다.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볼 때, 인턴이 에너지가 없으면 안 된다는 윗분이 계시기도 했지만, 왠지 누구에게든 이틀 내내 침대에서 쉬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없어 보일 것 같았다. 마케터로 일할 때는 소위 말하는 ‘요즘 것’을 업무 때문에 알고는 있지만 딱히 소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 서타트업 마케터라면 주말마다 전시도 다니고! 남들 모르는 브랜드 핸드크림도 쓰고! 한정판 콜라보 운동화도 신고! 주말엔 북클럽도 해야 일 잘한다고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의도적 숨김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사실 이러든 저러든 아무 일도 아니다. 내가 밖에 나가든 말든, 요즘 유행이라는 제품을 쓰든 말든, 오그라들든 말든 남의 시선과 판단은 그 순간이고 회사는 정상인 범주에서 일만 잘하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맨 처음에 나온 감성적인 시 읽기와 문장 수집을 다시 보자.

“저는 시집을 좋아해요.” “우와 요즘에도 시집이 나오긴 해요? 저 윤동주 알아요 ㅋㅋ” “네. 저도 좋아해요. 그 시대만의 감성과 문장이 있거든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집에 초판본도 있어요. 부모님이 물려주셨거든요. 소중해요.” “와 생각보다 감성적인 분이었네~ 난 그런 거 좀 오그라들더라고.” “맞아요. 저는 그런 감성이 좋아요. 시처럼 함축적인 글을 쓰고 그걸 즐기는 건 오그라든다기 보단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거로 생각해요. 시를 읽는 사람은 철학자라잖아요! 저 좀 철학적인가!”
△언제든지 당당하게(이미지=백윤희 씨).
△언제든지 당당하게(이미지=백윤희 씨).
그들의 감상에 수그러들지 말자. 내 습성과 취향을 오히려 매력인 걸로 하자. 부캐(부副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회사 자아와 실제 자아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케이스 외에 솔직해지는 것을 어려워하는 직장인이 많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멋지다는 태도와 각자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즐기는 분위기가 늘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퍼스널 브랜딩, 회사 이름 떼고 나 소개하기처럼 나 다움을 발굴하고 키우자는 이야기도 늘었고. 나만의 스토리가 있다면 무엇이든 멋있어진다. 다만 만들어낸 스토리는 당연히 티가 나니 솔직해지려다 또 다른 가짜를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주의하자. 그래서 말해보자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돌멩이 같은 삶이 좋다. 뭐, 무기력한 사람 맞는 것 같아요.

백윤희 씨는 제품, 사람, 문화에 서사 만들어 붙이기를 좋아하는 직장인이다. [2호선 수필집]은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며 만나고 느낀 것들의 잔상이다. 그렇다고 2호선을 좋아하지는 않으며 극세사 이불에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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