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에게 속아 울며 겨자 먹기로 처벌받아
억울한 업주 구제 위한 대책마련, 뚜렷한 성과 없어
타국의 사례가 개선방안 마련 실마리 될 수도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비교적 쉽게 위법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SNS에서 검색 한 두번으로 공문서 및 신분증 위조업체들의 홍보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분증 위조는 대게 20~30만 원 선에서 이뤄지며, 신분증 제작에 필요한 사진, 개인정보 등을 제공하기만 하면 ‘의뢰’가 마무리되는 쉬운 방식이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성년자의 문서 위조 범죄건수가 연평균 1,113회 발생했다.
이렇듯 버젓이 이뤄지는 위조 행위를 방지할 방법은 딱히 없다. 신분증을 포함한 공문서를 위조하는 경우 공문서 위조죄를 적용해 처벌받게 되지만, 텔레그램과 같이 익명 메신저를 이용할 경우 업자들을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인데, 업주가 처벌받는 이유
이렇게 타인들의 위법행위로 만들어진 ‘가짜 신분증’에 당한 업주가 왜 처벌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언뜻 불합리해 보이는 처벌이 업주에게 내려지는 이유는 식품위생법과 청소년보호법 때문이다.
식품위생법상 영업자는 국민의 보건위생 증진을 위해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그 중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다. 영업주가 해당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될 시에는 영업 허가를 취소 또는 6개월 미만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제공하는 행위는 또한 청소년 유해약물 등의 미성년자 판매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한 것으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반면, 구제받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주류 제공을 적발당한 업주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 동안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게 되는데,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될 시 행정처분 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청구내용이 인용되면 본 행정처분보다 약한 수위로 조정되거나 면제될 수 있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구제를 받아내더라도 행정소송에 필요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 및 그 과정에서의 정신적인 피로감 등 여러 부담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문제 개선으로 이어진 뚜렷한 성과 없어
이러한 문제가 자영업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가운데 국민권익위원회와 법제처는 올해 3월 ‘사업자 부담완화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4,434명 중 80.8%(3,583명)가 “나이 확인과 관련해 사업자의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사업자의 신분 확인 요구권 및 구매자 준수의무 명문화(17.4%)’, ‘모바일을 활용한 신분 확인 방법 다양화(16.4%)’, ‘형사처벌 수준 완화(16.2%)’ 순이었다.
부담 완화 방안으로는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업자에 대한 행정제재 처분 완화(47.9%)’ 의견이 가장 많았다.
정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인 ‘소상공인, 자영업자 경영부담 완화를 위한 개정안’을 올 3월 발표했다. 소상공인이 영업활동과 관련해 고의 또는 중과실 없이 법을 위반한 경우 영업활동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제재처분을 감경해주기 위한 취지다.
이 개정안으로 위조 신분증에 속게 된 업주에게 식품위생법에 근거해 내려지는 처벌에 대한 면책은 가능해지게 됐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가해지는 처벌은 본 개정안의 적용 대상 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자리 구제안인 셈이다. 특히나 청소년 보호법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만큼 다루기 민감한 부분이기에 개정안만으로 자영업자들이 수긍할 만큼의 극적인 효과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신분증을 확인했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는 법정까지 가더라도 억울한 상황의 업주들이 구제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9월 서울행정법원은 영업정지처분 취소소송을 낸 음식점 업주들에 대해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업주들은 식품접객영업자가 신분증 위·변조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행정처분을 면제한다’는 식품위생법 조항을 근거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로 재판부는 "미성년자 주류 판매는 사소한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고가 청소년들에게 기망 당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자영업자들이 절실하게 생각했던 면책 조항 개정안이 청소년 보호법 앞에서는 제 힘들 다하기 어렵다는 점과, 입증의 증거를 필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판례다.
경기도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차씨(62) 역시 비슷한 이유로 골치를 썩인 경험이 있다. 차씨는 과거 미성년자 주류제공으로 영업정지 1개월 처분을 받았다.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고 있다는 외부의 신고로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게 된 것이다.
차씨는 위조된 신분증을 믿고 들여보냈다는 점을 들어 영업정지 처분을 철회 시키려 했지만, 신분증을 검사했다는 근거가 없어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이후 차씨는 재발 방지를 위해 영업장 곳곳에 CCTV와 신분증 위조 감별기를 설치하기까지 이르렀다.
차씨는 금전적 손해를 떠나 경찰 조사를 받으러 다니며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던 점이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또 자신이 속임수에 당한 피해자임에도 재발방지책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현실에 한탄했다.
마땅한 대안 제시되지 않아
국회에서도 해당 문제에 관한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2020년 임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영업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류, 담배 등을 판매하는 장소에 신분증의 위ㆍ변조를 감별할 수 있는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신분증 확인 방식에 대해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제로 과거 한 술집에서는 신분증 감별기를 통해 방문자들의 사진, 주민등록번호, 지문 등 민감한 정보를 수집 및 보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보보안 전문가들은 업주가 지문을 수집하는 것은 신분증 검사를 위한 행동범위를 넘어선것 이라며 지적한다. 따라서 해당 법안이 입법 절차를 거쳐 시행될 경우 상당한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일본은 대부분의 주점, 편의점에서 나이 확인 시 매장에 비치된 스크린의 버튼을 구매자가 직접 누르도록 돼 있다. 해당 스크린에는 “20세 이상입니까?”라는 문구가 뜨며, 20세 이상임을 확인하는 버튼을 누르면 절차가 마무리된다.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기존의 법(청소년보호법)과 상충하고 있는 만큼, 위와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의 보완‧도입이 이루어진다면 업주에게만 입증의 책임이 가중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재현 대학생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