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잠시 흔든 결핍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결핍을 통해 깨달은 것들 [어쩌다 워킹맘]](https://img.hankyung.com/photo/202504/AD.40210977.1.jpg)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지방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 두가지가 맞물려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됐다.
환경이 바뀌고 일에서 멀어지자,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많아지며 아이를 돌보는 사이사이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시기, 유럽 특히 내가 좋아하던 파리를 종종 여행하며 명품 쇼핑에 몰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장에 가지 않으면 뭔가 빠뜨린 것처럼 느껴졌고, 구매 리스트를 만들며 ‘수집’하듯 쇼핑을 이어갔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사치재에 집착했는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일을 시작하고,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막히며 명품 가격은 치솟았고 희소성마저 사라진 뒤에야 그때의 행동이 결핍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
일을 그만두었고, 삶의 터전이 바뀌었고, 아이를 매개로 만나는 낯선 지역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부가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신호를 물질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 시절의 나는 ‘일하는 엄마’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폄하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자잘한 것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일하니까 애한테 신경 못 쓰지” 같은 생각을 하며 내 선택을 정당화하려 했다.
육아에 전념한다는 명분 아래 일을 그만뒀는데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멀쩡히 잘 키운다는 것은 내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들이 잘 못하고 있어야 비록 일은 하지 않지만 내가 오롯이 아이를 키우는 것의 정당성이 성립된다는 뒤틀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열등감이나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럼에도 적어도 남을 깎아내리며 나를 올려치기 하거나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는 수준의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런 내모습은 내게도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정작 일을 할 때에는 에너지 소모가 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때론 버거웠고 힘들었기에 놓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서야 나는 ‘일’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고, 사회 속 자아가 사라졌을 때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때의 결핍과 스스로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뒤틀린 생각들은 이후에 내가 복직해서 일을 할 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PR과 커뮤니케이션의 일은 단순히 기획이나 전달을 넘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말과 표정, 반응 이면에 있는 감정을 읽고, 그 안에서 ‘이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진짜 중요한 건 뭘까’를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라지며 느낀 결핍에 대한 경험은 적게는 여러 명, 많게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하면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이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그래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게 정말 필요했던 건 가족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사회 속 자아로서 계속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가족과 한 인간으로도, 커리어 측면에서도 하루 하루 더 나은 나이기를 바라는 나와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남았을 뿐 더 이상 왜곡된 방식으로 나를 증명할 필요는 없어졌다.
결핍은 나를 잠시 흔들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 나는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그리고 더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터로 살아가고 있다.
박소현 님은 올해 8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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