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제 44호 (2009년 01월)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도 같다

기사입력 2009.01.15 오후 05:30

고려 최고의 시인 이규보(1168~1241) 선생은 “향기로운 차는 참다운 도(眞道)의 맛”이고 “한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이라고 했다.

손수 차를 끓이고 그 일에만 몰두하면, 즉 점다삼매(點茶三昧)에 들면 자신도 잊는 좌망(坐忘)의 경지, 무아의 경계에 이르게 된다. 선생은 오랜 차생활로 차가 도이고 선이라는 차도일미, 선다일여(茶道一味, 禪茶一如)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위대한 차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 고려의 몇몇 다인을 살펴본다.

한그릇 밥과 나물 한접시, 고프면 먹고 곤하면 잔다네.

물 한 병에 차 한 냄비, 목마르면 손수 끓이네.

대지팡이 한 개에 방석 하나,

일을 가도 선이요 앉아도 선이네.

산중의 이 즐거움 진실한 맛이니,

시비와 슬픔 기쁨도 모두 잊었네.

산중의 이 즐거움 참으로 값지니,

학을 탄 신선도 부자도 부럽지 않네.

원감국사(1226~1292)의 ‘산중의 즐거움(山中樂)’이다. 생의 모든 움직임이 선이 되고 평상심이 도가 됨을 깨달은 자의 즐거움이 이러하리라.

고려말 권근(1352~1409) 선생은 자신의 문집 ‘양춘선생문집’에 난파 이거인(蘭坡 李居仁) 선생의 풍류와 차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공은 어려서부터 즐기고 숭상하는 것이 세속사람들과 달라서 집을 다스리는 데는 있고 없는 것은 묻지 않았다. 간직하는 것은 글씨와 그림이고, 거문고와 바둑판이었다. 심는 것은 매화 난초 소나무 대나무요. 기르는 것은 사슴이나 학이었다. 한 가지라도 갖추지 못하면 불만스러워 반드시 구한 뒤에야 즐거워하였다.

손님이 오면 반드시 청소하고 향을 피워 놓고 술자리를 베풀고 차를 달였다. 시를 읊고 또 시를 주고받고 노래하다가 술이 거나해지면 여종을 시켜 거문고를 타고 노래도 하게 하여 한껏 즐긴 뒤에 그만두었다.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야은 길재(1353 ~1419) 선생은 두 나라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둔하며 단칸방인 산속의 집에서의 차생활을 적고 있다. 속세를 버린 10여 년, 혼자 끓이는 차가 벗이 되었나 보다. 시 ‘산가서(山家序)’다.

회오리바람 불지 않으니, 단칸방도 편안하다.

밝은 달빛 뜰에 가득하니, 혼자 천천히 거닐고,

처마에 빗물 졸졸 흐르면, 이따금 베개 높이고 꿈을 꾼다.

산에 눈이 펄펄 내리면, 차 끓여 혼자 마신다.

대문장가 이숭인(1347~1392) 선생은 조선 개국의 설계자인 정도전에게 차와 찻물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그 시 ‘차 한봉과 안화사의 샘물 한 병을 삼봉에게 선물하다(茶一封幷安和寺泉一甁呈三峯)’이다.

송악산 바위아래 작은 샘 흐르는데,

솔뿌리 엉킨 곳에서 솟는다네.

머리에 사모 쓰고 한 낮 지루하면,

찻물 끓는 솔바람 소리 즐겨 듣는다네.

조선 개국 후 선생은 정몽주 일당으로 몰려서 유배되고, 친구 삼봉(정도전)이 보낸 자객에 살해당하였다. 선생의 또 다른 차시 ‘차를 준 백렴사에 감사함’이다.

선생이 나에게 화전차를 나누어 주었네.

색과 맛이 향기와 어울려 하나하나 새로워.

하늘아래 떠도는 한을 깨끗이 씻어주니,

누가 알리오,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음을.

화전차(火前茶)는 금화, 즉 한식(보통 4월 5일께) 전에 따서 만든 고급 봄차다.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佳茗似佳人)’는 중국 송나라 때의 대문호 소동파(1036~1101)가 처음으로 노래한 유명한 구절이다. 시인과 차인들이 ‘천고의 절운(千古切韻)’이라고 부르는 명구가 됐다.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도 같다
김동곤

쌍계제다 대표

우전차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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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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