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미래 사회상을 전망할 때 항상 등장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관련 일본의 변천사는 우리의 그것과 유독 닮아있거나 앞서 나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직면한 일본의 승계 패러다임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INHERITANCE LIFE]

인구구조 변화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2024년 3월 필자는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은행과 달리 로펌에서 현재 수행하고 있는 패밀리오피스는 어떤 기능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또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다.
고령화로 후계자 부재가 심각한 일본 중소기업
고령화로 후계자 부재가 심각한 일본 중소기업
써드에이지와 함께 한 일본 시니어 탐방단에 참석한 15명의 구성원은 거의 모두 처음 인사를 나누었지만, 일본 시니어 시장을 체험하며 각 분야별 방향성을 모색한다는 공통분모는 3일 내내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됐다. 홈 사물인터넷(IoT), 욕실용품, 시니어 건축, 상속, 후견, 법률, 요양, 창업 컨설팅, 금융 및 자산관리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던 시간은 분명 의미 있는 길라잡이가 됐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컬렉티브 하우스

이번 일본 방문은 도쿄 빅사이트에서 진행된 케어텍스(CareTex) 박람회, 시니어 주거 및 요양 IoT 등 공통의 일정과 참여자별 관심사를 배려한 일종의 맞춤형 일정으로 구성됐다. 코하우징의 대명사 격인 칸칸모리와 임대주택 방문, 일본 최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라쿠텐, 기업 인수·합병(M&A)과 한일 양국에 걸쳐 발생하는 상속, 후견, 기업승계 전담 로펌까지 포함됐다.

‘따로 또 같이 살아간다’라는 키워드로 소개되는 주거 브랜드인 칸칸모리는 원래 학교 부지였던 땅 소유자가 장차 거주할 사람들과 함께 개발한 컬렉티브 하우스다. 가족관계보다는 자유롭고 타인보다는 가까운 삶을 지향하는 28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데, 80대부터 공동육아 지원이 필요한 젊은 부부, 어린 아이들까지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시니어 주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참가자들은 정해진 시간을 넘겨 가며 거주자 대표단에게 공동체 운영과 고충 및 해결 방법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가나자와현에 소재한 요양원에서 들은 홈 IoT에 관한 설명은 시스템에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요양원 침실과 방에 설치된 홈 IoT 시스템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입소 어르신의 호흡과 수면 및 낙상 점검 등 꼭 필요한 기능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큰 특징이었다. 무조건 많은 기능이 들어가기보다는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효과적인 시스템 구축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근래 일본도 어르신 케어를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일손이 부족하면서 동남아시아 인력들이 많이 유입됐고 담당자 개별적 능력보다는 IoT 케어 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고 표준화된 응급대응체계 구축이 필요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표준화된 IoT 케어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면 요양 시장의 긍정적 변화를 상상하게 됐다. 케어 시스템으로 입소 어르신들에 대해 좀 더 정확한 건강 체크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는 요양시설의 부족한 일손 문제와 시설 내 학대, 방임 등에 대한 갈등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라쿠텐 그룹, 고객과의 접근성 높여

시니어백화점, 장례 문화 견학 등과 달리 흥미로운 이벤트는 라쿠텐 본사 방문이었다. 일본 최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라쿠텐 그룹과 고령화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쿠텐 역시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에 대한 대응책을 연구하고 있었다.

라쿠텐은 이미 1억 명 회원을 돌파했으나 잠재 고객이 부족해지는 문제를 타개하고 회사의 지속성 전략으로 시니어, 장애인, 약시 또는 노안 인구, 외국인 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 가고 있다. 2021년 일본 총무성 통계국의 인구 추이에 따르면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가 2025년에 30%, 2060년에는 40%로 5000만 명에 육박하게 되지만, 오히려 누구나 라쿠텐에서 쇼핑할 수 있다는 목표를 수립한 것이다. 누구에게든 ‘접근성’을 개선함으로써 ‘곤란을 겪지 않고’,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만약 약시 등으로 직접 쇼핑몰을 보며 구매하기가 어렵다면 음성 안내를 통해 그 접근성을 높여 가는 솔루션은 비단 쇼핑 비즈니스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에서 기업의 원활한 승계 전략 설계를 위해 조세 및 기업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자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로펌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기업 자문, 특히 기업 M&A 투자 분야와 한국과 일본에 걸친 글로벌 상속 업무에 특화된 로펌을 방문하게 됐다. 탐방 기간에 방문한 로펌은 한국 전담 데스크를 운영 중으로 최근 M&A와 일본으로 투자하는 한국 기업을 위한 자문도 하고 있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됐다.

일본 로펌에서는 최근 M&A와 관련된 업무가 크게 늘어 해당 로펌뿐 아니라 일본 메이저 로펌들의 업무량이 폭증했으며 후계자가 없어 기업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기업을 위해 매수자를 매칭해주는 전문 기업이 근래 도쿄 증시에 상장한 사례도 듣게 됐다.

고령화로 심각해진 후계자 부재 리스크

바로 M&A리서치인스티튜트의 사가미 사쿠 대표로 30대의 젊은 기업가인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후계자가 없어 폐업 위기에 놓인 고령의 경영자들에게 최적의 매수 기업을 찾아준다. 흥미로운 것은 본인의 할아버지 역시 운영하던 기업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같은 서비스를 생각했다고 한다.

이 기업은 고속 성장을 하며 2022년 증시에 상장했고, 2023년 하반기에는 우량 기업만 모아 놓는 도쿄 증시의 ‘프라임 시장’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은 일본의 기업승계에서 후계자 리스크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앞으로의 우리 미래를 생각하게 했다. M&A를 통한 사업승계를 장려하는 정부 정책 등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일본의 기업승계 관련 정책이나 지원은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일본의 기업승계에 관해 연구한 일본 변호사인 이여나에 따르면, 일본은 2009년부터 약 5년간 약 80만 개 기업이 폐업했는데, 연구 설문에서 향후 폐업 예정인 중소기업의 30%는 동종 업계의 평균보다 실적이 좋은 것으로 답했다. 2023년 11월 일본 중소기업청의 조사에 의하면 2025년까지 70세를 넘는 중소기업 경영자 245만 명 중 50%가 넘는 127만 명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상태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후계자 부재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 만약 127만 명의 경영진이 폐업을 할 경우 최대 650만 명의 일자리와 함께 약 22조 엔의 국내총생산(GDP)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트라 오사카무역관에서 게시한 자료에 의하면 중소기업청은 2023년 9월 22일 ‘중소기업 M&A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일본은 2015년 3월 처음으로 중소기업들의 M&A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발표한 이후 2020년 발표안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후계자가 없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절차 등 M&A 기본적인 사항을 안내하고, 다음으로는 지원기관의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 현지 로펌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도 증가하고 있고 소재·부품·장비, 소위 ‘소부장 기업’과의 M&A 자문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필 브랜드인 ‘하고로모’는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이젠 한국 기업이 됐다. 또한 <미래소년 코난>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85년에 세운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 민영 방송사 니혼테레비에 경영권이 이전됐다.

일본은 중소기업 승계를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던 상속세 부담을 2009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낮췄다. 특히 2018년 도입된 사업승계 특례 조치는 후계자가 기업을 승계받고 회사를 매각하거나 폐업하기 전까지 상속·증여세를 전액 유예·면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 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
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 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
무거운 상속세 부담 덜어주는 일본

2018년 특례조치 창설로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나 주식 매각 등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특례조치는 ‘중소기업 폐업 시대’에 당장 내야 할 세금 부담이 사라진 만큼 가업승계를 결정하는 후계자가 늘어나도록 기여했다.
일본의 기업승계 활성화에 관해 연구한 김대흥 씨에 의하면 일본은 2008년 ‘중소기업 경영승계의 원활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세제 개정, 유류분에 관한 특례 적용, 사업승계에 필요한 금융 지원 등 기업승계를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지원 방안을 수립했다. 이로써 경영자의 고령화와 심각한 인력난, 그리고 재해의 빈발 등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승계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확충을 시도했다.

2025년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후계자 부재로 인한 폐업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흑자를 내는 기업들마저 폐업이 된다면 국가 경제와 고용 창출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통합적인 정부 지원책과 함께 기업 스스로의 꾸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연도별 중소기업 실태조사에서 제조 중소기업 경영자 중 60세 이상의 비율이 2018년에 23.2%에서 2020년에는 30.7%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고령화에 따른 기업승계의 실패는 중소기업의 성장 제한과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투자의 위축 등 국민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빠른 진전은 중소기업을 비롯한 모든 기업에 다음 세대로 원활한 이전을 준비하라는 대명제를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제도 개선과 신탁제도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통합적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