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제 76호 (2011년 09월)



[The Explorer] 니르바나를 향한 에로틱 시티, 인도 카주라호

기사입력 2011.09.06 오후 05:14

‘말과 성교하는 남자, 이를 엿보는 여자’. 생각만 해도 엽기적인 이런 장면을 신전(神殿)에, 그것도 1000년쯤 전에 버젓이 조각해 놓은 곳이 있다. 바로 인도다. 무슨 일이건 불가능이 없는 나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나라. 그래서 지독히 더럽고 각종 사기와 속임수가 판을 치는데도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는 나라, 그게 또한 인도다.

[The Explorer] 니르바나를 향한 에로틱 시티, 인도 카주라호
세상은 넓고 여행지는 많다. 그중에서도 인도는 사람마다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히 갈리는 곳이다. 어떤 이들은 인도에서 자아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인생을 찾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소똥과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2인승 택시, 급하면 7~8명까지도 탑승 가능)의 매연에 질려 서둘러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를 찾은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것은 이곳이 갖고 있는 천의 얼굴과 신비로움이다. 일찍이 비틀즈는 인도 여행을 통해 음악적 영감을 얻었고(아쉽게도 그들이 모셨던 구루는 사기꾼이란 소문이 돌았지만), 일본의 여행가 후지와라 신야는 일본 국민 사이에 인도 여행 열풍을 일으켰으며, 젊은 스티브 잡스는 이곳에서 창의성의 원천을 얻었다고 한다.

[The Explorer] 니르바나를 향한 에로틱 시티, 인도 카주라호
인도가 보여주는 천의 얼굴 중 상당수는 종교와 관련이 있다. 이들이 수천 년간 믿어온 힌두교는 어떤 단일한 교리나 조직을 가진 종교가 아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힌두쿠시 산맥 동쪽을 힌두스탄(‘스탄’은 나라를 뜻한다), 그곳 사람들이 믿는 종교를 힌두교라 불렀을 뿐이다.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 시바(파멸)를 흔히 ‘힌두교의 3대 신’이라 말하지만, 인도에는 이들 말고도 대략 3억3000만의 신들이 저마다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신의 수만큼이나 숭배 방법도 다양하지만, 대다수 인도인들의 바람은 신을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니르바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신전의 외벽에 아크로바틱한 체위를 묘사한 ‘에로틱 미투나’가 자못 경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또한 이런 까닭이다. 각종 성행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에로틱 미투나’ 조각을 새긴 사원으로 유명한 곳은 인도의 카주라호(Khajuraho).

유네스코 또한 그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을 정도다.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서 열차로 6시간을 달려 카주라호로 떠나는 버스가 있다는 ‘잔시’에 도착했다. 객차뿐 아니라 통로까지 가득 메운 인도 사람들 사이에 끼여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지만, 세계가 인정한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는데 이 정도 수고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차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카주라호로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이 지나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작품’들을 관람해야 하는데….

사원 중 일부는 연잎으로 가득한 호수와 접해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만들었는데, 이를 ‘가트’라 부른다.

사원 중 일부는 연잎으로 가득한 호수와 접해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만들었는데, 이를 ‘가트’라 부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런데 릭샤 기사가 “이미 버스 시간이 지났다. 내 릭샤를 타고 슬슬 이 동네 관광이나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을 건네면서 아주 천천히 릭샤를 모는 것이 아닌가.

‘내 설혹 버스를 놓쳐 이 동네 관광을 하는 한이 있어도 당신 릭샤는 안 탄다’ 하고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마음뿐 겉으로는 아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알았으니 일단 터미널로 가기나 하자”고 했다.
 
터미널 입구에 막 들어서는 순간, ‘카주라호’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이고 터미널을 빠져 나오는 버스와 딱 마주쳤다. 일단 릭샤로 버스를 막아 세우고 무조건 올라탔다. 자리가 없다면 다시 한 번 6시간쯤 서서 갈 각오를 다지며. 다행히 버스에는 딱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심심한 석공들이 숨겨놓은 그림 찾기

[The Explorer] 니르바나를 향한 에로틱 시티, 인도 카주라호
한밤중에 도착해 일단 하룻밤을 쉬고, 드디어 다음날. 흐렸지만 그나마 해가 좋은 시간을 골라 에로틱 미투나가 가득하다는 ‘서부 사원군’으로 향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십여 개의 사원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지었는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다만 9~12세기쯤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공원처럼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넓은 지역에 드문드문 사원들이 서 있었고, 사원마다 외벽과 내부에 아름다운 조각들이 가득했다.

사실 조각의 대부분은 힌두교의 신들을 새겨 놓은 것이었다. 그중 두세 곳의 사원 외벽에 남녀의 애정행각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조각들이 정말 가득했다.

힌두교의 경전 중 하나인 <카마수트라>가 말하는 것처럼 섹스를 통해 해탈(니르바나)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애정행각’을 다루지 않은 신상(神像)들도 거의 모두 에로틱한 자태를 취하고 있었다. 또한 노골적 성행위, 그것도 고난도(?)의 아크로바틱한 체위를 묘사하면서도 단순한 쾌락이 아닌, 뭔가 진지한 열망과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The Explorer] 니르바나를 향한 에로틱 시티, 인도 카주라호
그런데 한층 더 노골적이고 ‘엽기만발’한 작품들은 사원의 외벽이 아닌, 아래쪽의 기단 부분에 은밀히 숨겨져 있었다. 이곳에서 ‘말과 성교하는 남자, 이를 엿보는 여자’ 같은 조각도 보았다. 말뿐 아니라 각종 동물들과의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것까지도. 하지만 이 조각들은 외벽의 조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진지한 열망보다는 장난스러움이 넘쳐났다. 묘사의 섬세함도 외벽의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이런 조각들이 등장하는 위치가 너무 뜬금 없었다. 창칼을 들고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 이를 격려하는 악단이 한참 이어지다 갑자기 성행위 장면이 등장하는 식이다.

동부 사원군에 속한 자인교 사원들은 특별한 조각이 없는 대신 아라베스크 스타일의 문양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동부 사원군에 속한 자인교 사원들은 특별한 조각이 없는 대신 아라베스크 스타일의 문양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건, 아마도 석공들이 무척이나 심심했기 때문일 거야.’

도대체 이런 장면들을 새겨 넣은 이유가 뭘까 하고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모든 석공들이 신심(信心)에 넘쳐 일을 한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러면 작업이 지겨울 때도 있었겠지. 그때 장난기가 발동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엽기적인 장면들은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뜬금없이 나타나는 것이리라.

석공들의 심심함(?)이 빚어낸 작품들이 사원의 운명을 갈랐다. ‘엽기 조각’이 있는 서부 사원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비싼 몸값(입장료)을 받으며 수많은 사람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동부 사원군은 입장료도 없이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으니.

누가 보더라도 동부 사원군의 인물상들 또한 서부 사원군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말이다. 그러니 카주라호를 찾는 여행자라면, 에로틱 미투나의 서부 사원군뿐 아니라 ‘발바닥에 헤나를 그리는 여자’의 조각이 아름다운 동부 사원군도 꼭 둘러볼 일이다.

온통 흰색으로 칠한 자인교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

온통 흰색으로 칠한 자인교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

Khajuraho Tip

How to Get There

인구 1만 명 남짓의 작은 마을인 카주라호까지 직항 편은 없다. 델리(아시아나)나 뭄바이(대한항공)로 가서 인도의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델리와 뭄바이뿐 아니라 인도의 주요 도시인 아그라, 첸나이 등에서도 철도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인도의 수도 델리와 아그라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편리하다.

Where to Stay

작은 마을이지만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호텔이 많다. 중저가의 호텔이 대부분인데, 더 라리트 템플 뷰 카주라호(The Lalit Temple View Khajuraho)가 거의 유일한 고급 호텔이다. 다른 호텔에서 묵더라도 가능하면 템플이 보이는 전망을 가진 곳에서 머물 것. 자유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면 국내외 호텔 사이트를 통해 미리 예약하면 된다.

Another Site

델리-아그라-카주라호를 묶어서 다녀오는 여행이 일반적이다. 인도의 수도이자 볼거리들이 몰려있는 델리 3일, 타지마할과 레드포트만 보면 되는 아그라 1일, 에로틱 미투나가 유명한 카주라호 1일, 거기에 왕복 2일을 추가,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면 충분하다. 인도 전문 여행사 등에서 이런 일정으로 여행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글·사진 구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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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1-09-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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