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 성장 둔화…생존 전략은

[SPECIAL] 위기의 지방은행…지역 침체·디지털 공습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지방은행이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자금줄 역할을 충실해 해 왔지만, 디지털금융의 급격한 확산과 함께 지역의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지방은행의 존립마저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확산일로인 ‘디지털금융’은 전통은행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 대형 은행은 물론 총자산이 수천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은행조차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강조하며 업무·서비스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이 처음으로 등장한 지난 2017년만 하더라도 위기감이 크지 않았다. 기존 은행들은 카카오뱅크(카뱅)의 초반 돌풍을 ‘찻잔 속 태풍’ 정도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는 사이 카뱅은 고객 점유율을 급격히 늘리며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고, 현재는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 이용자의 절반가량을 카뱅 고객으로 흡수하며 전례 없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에 더해 카뱅은 다양한 형태의 혁신 서비스와 상품을 선보이며 금융권의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우호적 평가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금융의 확산은 그동안 지역경제의 자금줄 역할을 해 오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체력을 키워 왔던 지방은행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시중은행보다 타격 큰 지방은행
표면적으로 보면 카뱅 등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중은행이다. 국내 은행권의 경우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은행 중심의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는 만큼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과점 체제의 ‘균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이들 4대 은행의 뚜렷한 점유율 하향세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들 역시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내놓으며 점유율 수성에 나선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카뱅의 업무 영역이 송금과 신용대출 등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전히 금융소비자의 대다수는 시중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카뱅을 예금과 송금 서비스 활용을 위한 ‘서브 은행’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 4대 은행들은 최근 수년간 불어 닥친 부동산 시장 과열을 틈타 주택담보대출을 대폭 늘리며 자산을 크게 불려 왔다. 2020년 한 해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SPECIAL] 위기의 지방은행…지역 침체·디지털 공습
하지만 지방은행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한 회복세를 나타내고는 있지만, 시중은행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모습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 지방은행의 경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 비중이 크다는 점이 이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재정 상황이 나빠지면서 자산 건전성에 대한 우려만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지방은행 6곳(부산·대구·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은 총자산과 수익성뿐 아니라 자산 건전성 측면에서도 최근 수년간 시중은행에 역전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지방은행은 지역 밀착 경영에 의한 관계형 금융, 지역민의 충성도 등을 기반으로 2010년대 중반까지 시중은행보다 나은 성과를 보였다”며 “그러나 지방은행의 수익성은 2007년 이후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이후 반등했으나 시중은행과는 달리 상승세가 이어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건전성 지표에서도 지방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부터 줄곧 시중은행보다 낮았으나 2015년부터는 역전됐다”고 설명했다.
[SPECIAL] 위기의 지방은행…지역 침체·디지털 공습
지역경제 침체, 디지털금융의 공습
이 같은 지방은행의 경영 부진은 여러 복합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경제의 침체’를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방은행 소재 지역(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광주, 부산, 대구)의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지난 2008년 전국 평균에 역전된 뒤 점차 격차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는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 기반의 지방 소개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한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방은행의 경우 전체 원화 대출 가운데 기업대출 비중이 60~70%에 달해 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자산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최근 10년간 40%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지방은행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혔던 ‘고객 충성도’ 역시 예전만 못하다. 그동안 지방은행들은 지역민들의 충성도를 기반으로 예금금리가 낮은 핵심 예금을 대거 확보해 왔으나, 저금리 장기화 및 카뱅 등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로 촉발된 디지털금융 확산으로 과거와 같은 고객 충성도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와 함께 부산·대구은행 등 일부 경영진의 잇단 비위와 구속 소식은 지방은행에 대한 이미지 악화로 이어지며 지역 민심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SPECIAL] 위기의 지방은행…지역 침체·디지털 공습
“디지털금융 강화…수익 다변화 시급”
침체 일로의 지역경제만큼 지방은행들의 활로 모색 역시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역경제와 함께 성장해 온 지방은행의 쇠퇴를 손 놓고 지켜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지역경제 악화로 인한 지방은행의 위축은 지역 소재 기업들의 유동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경제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방은행의 경우 인구 고령화에 직면한 각 지역에 대한 서비스 접근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병윤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GRDP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이런 현상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최근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 등장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실물경제의 자금 배분 경쟁력을 갖춘 지방은행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SPECIAL] 위기의 지방은행…지역 침체·디지털 공습
이를 위해 이 연구위원은 신산업 중심의 거점 지역을 선정하는 등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방은행들 역시 대출수요가 줄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포트폴리오 조정과 함께 자산관리(WM) 서비스 등의 비이자수익 창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디지털금융과 관련해서는 시중은행에 비해 지방은행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형 시중은행의 경우 기존 업무 시스템을 디지털금융으로 전환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지방은행의 경우 새 지역 진출 시 비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장점이 있다”며 “아울러 동아시아 등 저개발국 진출 시 핀테크 역량과 경험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현지 영업 기반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 금고 유치 경쟁 시 협력사업비 규모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지방은행들을 위해 ‘지방공기업법’ 시행령 등에 지역밀착 금융기관 거래를 의무화하거나 우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전체 대출증감분의 60%(시중은행 45%) 수준으로 규정된 지방은행의 중소기업대출 비율 역시 시중은행과의 역차별 방지 및 실효성 측면에서 규제 개선의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