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겨울이 오면 은은한 향이 배어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예쁜 차 세트로 꾸며진 티 테이블도 함께 떠오른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스털링의 격조
(사진) 조선시대 해주 소반 위에서 아르누보 시대의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과 조선시대의 유기 그릇, 빅토리안 시대의 스털링 서버가 멋지게 조우하고 있다.

차와 관련된 테이블 세팅에서는 도자기 제품이 주로 사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은으로 된 제품이 더 격조 있는 테이블웨어로 인정 받았다. 은의 특성인 높은 열전도율은 찻잎을 순간적으로 확 퍼지게 함으로써 홍차의 맛을 다른 재질의 어떤 포트로 끓인 것보다 더 맛있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대로부터 왕족이나 귀족들은 비싼 찻잎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서 귀한 은으로 만든 포트에 우려내서 마셨다. 차와 관련된 아이템뿐만 아니라 은은 오랫동안 귀족의 생활을 빛내 주는 신분의 아이콘이었고,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기 시작한 19세기부터는 스푼, 나이프, 포크 등 수많은 커트러리가 식탁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스털링의 격조
(사진_위쪽부터 시계방향) 스털링 바스켓(아르누보). 흑단과 스털링이 조화된 고급스러운 촛대 한쌍(아르데코). 공 모양의 스털링 스트레이너(아르누보). 앞부분을 금도금한 티파니 칵테일 포크(아르누보).

집사는 은식기 관리인?

그런데 이렇듯 화려하기만 한 순은은 일상용품으로 손쉽게 쓰기에는 다소 불편한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즉, 그릇이나 커트러리로 쓰기에는 강도가 약하고 쉽게 색이 변하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구리를 넣은 합금의 형태인 스털링을 만들어 썼다. 마치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유기로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어 썼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은에 구리를 넣어 만든 스털링의 은 함유율은 은본위 제도라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당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지금의 금과 같이 은이 곧 경제의 근간이었던 유럽에서 은의 성분 표시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1300년경부터 영국에서 국가가 은의 함량을 보증해 주는 ‘홀마크’ 제도가 생기게 됐다. 소비자의 눈으로 어떤 금속을 얼마의 비율로 썼는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국가가 보증해 주자는 취지였다.

이렇게 국가에서도 엄격하게 품질보증과 유통에 직접 관여할 정도로 은은 귀한 것이었기에 귀족 가문의 은제품 관리 역시 엄격했다. 귀족 가문의 남녀 고용인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집사가 와인과 함께 은식기의 총괄 관리를 맡았다. 그는 은식기를 닦고 보관하는 일을 했으며 일일이 수량과 보존 상태를 점검했다. 은식기는 잠금장치가 있는 특별한 장에 보관됐고 귀족 부부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경우에는 은행 금고에 보관되기도 했다.

이러한 홀마크 제도는 유럽의 각 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시행되며 소비자들로 하여금 은의 비율에 대한 보증을 해 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모든 은제품은 은 100%가 아닌 은과 구리의 합금이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순은과 스털링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각 나라의 스털링 합금 비율은 어떻게 될까. 먼저 영국은 95%의 은에 5%의 구리를 섞어 스털링을 만들었으며, 이것을 표시하는 홀마크와 함께 제작연도와 제작자를 표시하는 마크를 제품에 나란히 표시했다.

프랑스도 비슷하게 97.5% 은에 2.5% 구리를 섞었으며 두 개의 홀마크로 합금 비율과 제품을 보증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은의 함량에 있어 영국의 기준을 따르고 다른 기호 없이 영어로 ‘sterling’이라 표시한다. 그 외에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등의 중유럽에서는 80% 은에 20% 구리를 합금했다. 이러한 비율로 만들어진 유럽 각국의 스털링은 아직까지 남아 아름다운 테이블 세팅을 연출하는 데 커다란 힘을 보태고 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스털링의 격조
(사진_위쪽부터 시계방향) 은분으로 정교하게 핸드페인팅 된 세브르 도자기 티포트와 티잔(19세기). 뿔 손잡이의 버터 스프레드(빅토리안). 음식 닿는 부분이 금도금으로 처리된 스털링 국자(아르누보).

‘상아 손잡이’ 화려한 식탁 문화 절정

산업혁명이 무르익었던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수성가한 중산층들이 오랜 기간 귀족들만의 특권으로 여겨지며 집에서 열렸던 파티를 따라 즐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상류사회 생활을 과시하기 위해 오랜 열망이었던 은으로 된 커트러리의 구입에 적극 나섰으며, 빅토리안 시대를 커트러리의 천국으로 이끌었다.

부드러운 과일의 과육을 먹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된 끝이 뾰족한 스푼과 음료를 젓는 기능과 빨대 기능이 함께 있는 스털링 빨대, 앙증맞은 크기의 머스터드 스푼, 얼음 집게, 샌드위치 서버 등 모두 스털링으로 만들어진 그 시대 풍요의 상징들이다.

손님 초대에 필수용품이었던 커트러리 세트는 점점 그 사치스러움을 더해 갔다. 심지어 한 세트에 1000피스가 넘는 스털링 커트러리 세트가 고급스러운 상아 손잡이로 장식돼 만들어졌고, 이것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테이블은 식탁 문화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렇듯 화려했던 식탁 문화가 19세기 산업부흥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접대하는 가정에서의 파티 문화가 있었다.
남편의 사업상 인맥관리는 모두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곳에서 성과를 맺었다. 안주인은 한 달 전부터 초대할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은 격조 있는 스털링 테이블웨어에 담겨져 빛을 발했다.

아내는 이렇듯 바깥세상에서 치열하게 가족을 위해 투쟁하는 남편을 도와 가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자수성가한 신흥 중산층 남편과 아내들은 ‘바깥사람’과 ‘안사람’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힘들었던 한 해를 마치고 이제 새해가 시작됐다. 저마다 새해의 꿈과 희망을 품고 있을 터인데, ‘코로나19여 물러가라.’ 새해의 어느 시점에 우리가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져 지인들과 마스크 없이 찻잔을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