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혁신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금융과 기술의 환상적인 만남, 핀테크 시대. 미래 금융은 무엇이며, 이 세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핀테크 기업을 만나는 시간. 첫 번째 주자는 국내 최초로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블록체인 업체 스트리미다.
2020년 비트코인 값이 또 한 번 크게 뛰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경제로 인플레이션이 전망되면서 ‘디지털 금’으로 여겨지는 가상자산의 대장주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미국에서는 가상자산 산업화를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가상자산의 산업화를 위한 제도화 논의가 부족한 편이다.
블록체인이 핀테크의 중심에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2017년 국내를 뒤흔든 비트코인 파동으로 “블록체인은 맞고, 비트코인은 틀리다”는 암묵적 사회적 동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는 3월이면 가상자산거래소 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 개정안이 공표돼 거래소들도 규제를 받기 시작한다. 이 법은 은행과 금융기관에만 부여하던 자금 세탁 방지, 테러자금 조달 방지의 의무를 가상자산거래소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 밖의 회색지대에 있던 가상자산 영역이 법에 명시되면서, 제도화되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사업자들은 보완이 필요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들은 “블록체인 경제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으로, 우리나라가 미래 금융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가상자산 영역의 제도화가 분명하고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와 암호화폐 예치 서비스 DASK를 운영하는 블록체인 업체 스트리미의 이준행 대표를 만나 국내 블록체인 산업의 현주소와 성장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스트리미는 국내 최초로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을 정도로 블록체인 산업체의 건강한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생존했나.
“2017년 고팍스 출범 후 암흑기를 걸었다. 2018, 2019년 정말 힘들었다. 사실상 가상자산과 가상자산거래소가 사회악으로 규정되면서 모든 자금줄이 막혔다. 법체계에서 이 산업의 정의를 거부하니 규제 공백상태로 악순환이 계속됐다. 규제가 없으니 수많은 업체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고, 소비자들은 피해를 받았고, 업계 이미지와 브랜드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스트리미는 국내 최초로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을 정도로, 메이저 거래소 중 스캔들 없는 유일한 거래소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거래소는 사회악이란 암묵적 레거시가 깔린 상태에서 유죄 추정이 작용됐다. 무리하게 고소고발이 들어왔고, 조사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이제와 생각하면 자랑스럽지만, 해킹과 보안 사고에서 자유로웠고 과태료조차 내지 않았을 정도로 일체의 사건사고 이력 없이 빡빡하게 관리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못했다. 투자 유치(펀드레이징)를 해야 할 때 갑자기 벤처기업 인증이 취소됐다(지난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는 가상자산중개업을 벤처기업 확인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에 따라 가상자산거래소의 벤처기업 인증을 취소했다).
벤처 인증이 취소되면서 국내외 모태펀드에서 펀딩을 받을 수도,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유연하게 줄 수도 없게 됐다. 조롱도 많이 받았다. ‘하버드대까지 나와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이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해 내 젊음을 투자했는데 신념이 흔들렸다. 생각해 보면 가상자산 시장이 아직 성장할 준비가 안 돼 있는데, 2016~2017년 과도한 관심으로 시장의 판이 급작스럽게 커지면서 본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시장이 성장을 강요받음으로써 생긴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고팍스는 자산운용사의 도움을 받아 데스밸리를 넘겼다. 천운이다.”
암흑기를 지나 2020년 가상자산 값이 뛰어 다시금 화제가 됐다.
“이유는 굉장히 명확하다. 2020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세계 경제는 막대한 재정지출에 따른 구조적 인플레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 환경에서 투자자들은 ‘금’과 같은 인플레 헤지(화폐가치 하락 위기에 대처) 수단을 찾게 된다. 그 대안 중 하나로 미국의 금융권이 비트코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은 ‘금 2.0’으로 불릴 만큼 금과 기술적 성질이 비슷하다. 아니 어쩌면 더 뛰어나다. 금과 같이 신용 리스크가 없으며, 잘 쪼개지고, 금보다 가볍다. 또한 미래 산업으로 예견되는 블록체인 기술의 대장주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경제에서의 금이자 블록체인 경제에서의 달러(기축통화)가 비트코인이다 보니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21년 더 확산될 것이란 예측이 많은데.
“미국에서 블록체인 산업의 제도화가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1년 크라켄거래소가 은행 면허를 취득했고,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가상자산 금융 인프라업에 진출했다. 대형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 내로라하는 상장사들이 비트코인을 대규모로 구매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디지털 자산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투자은행(IB) JP모건은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에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결제 기업인 페이팔이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하고, 모바일 결제 기업인 스퀘어 역시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금융을 주무르는 월스트리트도 비트코인을 갖고 장사를 하려고 한다. 쉽게 말해 가상자산이 금융자산화 되기 위한 제도화가 이뤄지면서 미국에서 자본이 들어오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 상품의 운용자산이 2020년 초 19억 달러에서 연말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 정도로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몇 가지 트렌드들이 가상자산의 가격을 더해 주는 요인으로 점쳐지고 있다.”
어떠한 요인들인가.
“첫째로, 미국 주요 금융 관련 권력기관에 친(親)가상자산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 통화감독청(OCC)의 의장 역할을 하는 이가 코인베이스 최고법무책임자 출신인 브라이언 브룩스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 중 한 명은 크립토맘으로 불리는 헤스터 피어스이고, 히스 탈버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 역시 친가상자산 인사다. 여기에 SEC 신임의장으로 친가상자산 인사가 임명될 것으로 점쳐지며, 개리 겐슬러나 라엘 브레이나드와 같이 친가상자산 인사로 알려진 이들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용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까지는 어떻게든 버텨 왔던 국가들이 코로나19 타개를 위한 재정지출로 한계를 맞으며 금융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국가부도, 전시 상황 등 국가적 위기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경우 비트코인 가격은 예외 없이 치솟았다. 이미 잠비아 등 아프리카 6개국이 지난해 디폴트를 선언했으며, 올해 이 같은 사례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은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어떤 나라의 경우 법정화폐보다도 낫기 때문에 비트코인 확산에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파이라고 하는 종류의 분산금융 블록체인 상품들이 2020년 트레이더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직 미완의 상태임에도, 이 시장을 주도하는 트레이더들의 거래 활동 증가는 블록체인상 예치액과 트랜잭션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려 왔다. 트랜잭션은 곧 블록체인 세계에서 기업의 영업이익과 같은 지표다. 트랜잭션 빈도수가 많아지면 블록체인 범용성은 더욱 확장된다.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의 내재가치가 더 좋게 평가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아쉽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에서는 가상자산의 산업화 드라이브가 걸리고 있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면서, 혁신을 가져가는 게임의 룰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다른 핀테크 종목들과 다르게 가상자산, 블록체인 분야는 금융 산업으로 편입돼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경쟁을 위한 공정한 룰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사업자들은)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가상자산거래소 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특금법 개정안이 오는 3월이면 공표돼 거래소들도 규제를 받기 시작한다. 법 밖의 가상자산 영역이 법에 명시됐다는 점에서 제도화가 됐다고 볼 순 있지만, 아직은 보완이 필요하다. 규제법이고 해외처럼 가상자산을 산업에 편입시키기 위한 조치는 아니다. 이 규제조차 어떤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특정 업종에 대한 근거법(업권법)도 없는 상태이기에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정의가 없다.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 가상자산 사업자를 규제하는 그런 형태로 이해하면 된다.
특금법 시행령의 관건은 실명 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인데, 기준도 다소 모호하다. 이 기준은 은행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금세탁 행위 위험성을 식별하고 분석해 평가하는 것으로, 사실상 라이선스를 줄지 안 줄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다. 실명 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은 자금세탁 방지와 해킹 보안에 강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업체들에 유리하게 작동돼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법과 규제가 전무한 상태에서 행정부와 금융기관, 은행, 그리고 사회가 암묵적으로 만든 그 어떤 레거시에 의해 작동해 왔다.”
지난 2017년 사회적 파동이 너무 컸던 탓일까.
“분명 (가상자산사업자들이) 잘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나쁘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당시의 (국가적) 응급처지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다 나쁘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접근법이다.
이보다 더 먼저 선행돼야 하는 질문은 ‘이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인가’다. 글로벌 상황만 봐도 이제는 명확하다. 가상자산이 없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에서 상업화된 것은 없다. 가상자산이 있는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꾸는 블록체인이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산업이란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훗날 블록체인을 총망라한 경제공동체가 출범할 수도 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것은 금융 산업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한국에서 리딩 기업이 절대 나올 수가 없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설계가 그렇게 돼 있지 않다.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은 국경이 없다. 오픈 네트워크니까 빨리 치고 나가거나 많이 공헌한 이들이 리딩 기업이 된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을 매개로 아프리카, 남미 등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까지 포섭해 ‘금융계의 유튜브’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이를 시도 중이다. 세계의 속도에 비추면 한국은 현재 좀 늦은 단계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게 ‘패스트 팔로어(새로운 제품, 기술을 빠르게 쫓아 가는 전략)’ 아닌가. 조금 더 이 시장을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보고 진취적으로 나가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금융계의 유튜브 시도에 스트리미도 승산이 있는가.
“과거에는 스트리미의 장점으로 기술을 꼽았다. 하지만 이는 각론적이고 가변적이다. 우리의 장점이자 가장 큰 차이점은 ‘길게 본다’는 관점이다. 이를 위해 창사 이래 일관되게 신뢰할 수 있는 암호화폐 FMI와 사용성 개선에 전념해 왔다.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최초로 ISO/IEC27001 인증을 획득했으며, 국내 최초로 국가보안표준 ISMS 인증도 얻었다.
정부가 채택한 표준 암호화폐 거래소로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금융이란 게 매우 차갑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핵심은 다른 입장에 놓인 인간과 인간을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통해서 우리나라도 금융의 리딩 기업이 돼 전 세계 금융에서 소외된 이들도 경제활동에 편입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스트리미는 소비자도 좋고, 기업가도 좋고, 나라도 좋은 상부상조의 경제를 희망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만들어 나갈 의지가 있다. 그게 스트리미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이준행 대표는…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전 어소시에이트 디렉터,헤드랜드 캐피털 파트너스 OPS 팀,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한국핀테크산업협회의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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