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착한 투자로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가. 이제 ESG가 투자자산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시대가 왔다.


“앞으로 ESG 관련 상장지수편드(ETF) 인덱스에 포함되는지가 향후 기업 가치를 좌우할 것입니다.”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은 지난 11월 9일 세계경제연구원과 KB금융그룹이 서울에서 연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ESG 투자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그 나라의 투자 매력도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메가트렌드 ‘ESG’


ESG가 투자의 메가트렌드로 떠올랐다. 금융 컨설팅사인 오피머스에 따르면 글로벌 ESG의 자산 규모는 2020년 6월 기준으로 40조5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2014년 21조4000억 달러, 2018년 30조7000억 달러로 지속 성장 중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강했다. 올해 전체 주식형 펀드로 유입되는 돈은 줄었지만, ESG 펀드는 예외다. 펀드 평가사인 모닝스타는 지난 6월 상반기 말 기준으로 전 세계 ESG 관련 펀드 총 누적 자산이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ESG 투자는 전 세계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자본시장에서 친환경과 책임투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 초 세계 최대 규모의 운영사인 블랙록이 연례서한에서 연내 자사의 모든 액티브 매니저들이 투자 전반에 ESG 요소 및 리스크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 발언하며 ‘ESG 투자의 원년’이 찾아왔다. 이어 네덜란드 연기금은 살상무기 제조 기업과 국가에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했으며, 노르웨이 연기금은 인권침해 여부 또한 투자 적용 기준에 포함시키겠다고 공표했다.


미국 내 대표적인 기금 중 하나인 예일대 기금은 인력 구성의 다양성이 개선되는지 여부를 평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어디, 이뿐인가. 전 세계 기관투자가들의 책임투자 네트워크인 UN PRI(유엔 책임투자원칙)의 서명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서명기관만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네덜란드공무원연금, 캐나다연금 등 세계 최대 연금들과 HSBC, JP모건, BNP파리바, 골드만삭스 등 총 3000곳을 넘어섰다. 이들의 자산을 합치면 100조 달러가 넘는다.


걸음마 수준에 그쳤던 국내 ESG 투자도 국민연금을 ‘키맨’으로 성장의 물꼬를 트고 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국내 3대 공적 연기금의 ESG 관련 투자는 약 32조5000억 원 수준인데, 이 중 국민연금의 비중이 약 99%로 사실상 국내 ESG 투자의 키를 쥐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의 전체 운용 자산(737조 원) 중 ESG 관련 투자(32조 원) 비중은 4.4%로 낮은 수준이었지만, 국민연금은 2021년부터 ESG 투자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2021년부터 ESG 등급이 D등급인 종목은 벤치마크(BM) 대비 비중을 초과해 편입하지 않도록 현행보다 강화된 규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투자 안전성 확보, 수익률 의구심 완화


자본시장의 달라진 게임 법칙,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투자 안전성이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상반기 글로벌 ESG 펀드로의 자금 흐름은 역대 최대 규모인 1168억 달러 이상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펀드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출된 1분기에도 순유입을 기록했다. 2분기에는 자산 가격 반등과 함께 투자심리 개선으로 순유입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하며 사상 최고 수준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위기에 외려 투자자의 관심이 ESG 쪽으로 확대된 것이다. 오광영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ESG 펀드는 다른 펀드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란 인식이 강해 코로나19로 글로벌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피난처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며 “코로나19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큰 폭으로 증가하며 투자자들의 자금이 글로벌 ESG 펀드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수익률에 대한 의구심도 완화했다. ESG는 초기 ‘착한 투자’로 알려지며, 수익률보다 ‘사회적’, ‘윤리적’인 측면이 강화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ESG 투자는 안정성을 등에 업고, 수익률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일부분 떨쳐 버렸다.


ESG 종목들을 모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ESG 리더스 지수의 수익률은 -9.5%로 일반 지수인 MSCI 글로벌 지수 수익률(-11.2%)보다 높았다. 책임투자의 대표적 펀드 중 하나인 도미니 임팩트 에퀴티 펀드는 2020년 들어 담배·주류·도박 기업 등에 투자하는 바이스 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선진국, 이머징 모두 각각의 주식시장 지수를 (ESG 펀드가) 아웃퍼폼하고 있다”며 “ESG 성과와 관련된 논란은 향후에도 지속되겠지만 2012년 이후 ESG 점수가 높은 기업군이 낮은 기업군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 특히 최근 각광받고 있는 환경(E)은 2016년 이후 프리미엄이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ESG 등급이 높은 기업은 주가의 급락 가능성도 적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5월 펴낸 ‘코로나19에 따른 주가 급락과 기업지배구조의 주가 반영 효과’ 보고서를 보면, 코스피 지수는 1월 20일 2262를 기록한 후 횡보세를 보이다가 코로나19 위기가 한반도를 강타한 2월 14일(2243)부터 3월 19일(1457)까지 한 달간 약 35%까지 급락했다. 이 기간 668개의 상장 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은 –6.38%로 확인됐다. 하지만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 337개의 평균수익률은 –4.31%,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 331개의 평균수익률은 –8.48%로 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들에서 주가 방어 효과가 나타났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소유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 효과적인 배당정책 수립, 계열사 간 부당거래 해소 등 평소 주주권리 보호에 힘쓰는 기업들의 주가 방어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해석된다”며 “예상치 못한 주가 급락에 대비해 시장참여자들은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구조 수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미국 대선 이후로 시장의 관심이 친환경에 쏠린 것도 ESG 투자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표 공약과 발언들을 보면 기후변화 대응, 노동·고용 환경 개선, 다양성·인권 존중, 중산층 재건 등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의 ESG 요소들이 중시되고 있다.


김진영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대규모 친환경 인프라 투자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과 고용 창출, 최저임금 인상과 실업급여 확대를 통한 중산층 혜택 확대, 여성과 비백인, 이민자의 인권 확대 등 정책 방향성이 ESG 가치와 맞닿아 있다”며 “바이든 체제하에서 미국 내 ESG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대세 ‘E’, 수익률도 강세


대세로 떠오른 ESG 투자,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향후 ESG의 성장을 기대하는 투자자라면 ESG ETF에 관심을 가져 볼 것을 추천한다. ESG 등급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ETF 중 운용 규모가 가장 큰 ESG ETF는 ‘iShares ESG Aware MSCI USA ETF(ESGU)’다. 이 펀드의 운용 규모는 현재 약 118억 달러이며 연초 이후 11월 13일까지 해당 ETF로의 자금유입액은 86억 달러로, ESG ETF 중 유입액이 가장 많았다. 이 펀드가 담은 톱10 종목을 보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 대중의 관심이 높은 정보기술(IT) 종목들이 다수를 이룬다.


연간 수익률을 기준으로 줄 세우면, ‘청정에너지·환경친화적’ 성격의 ESG ETF가 톱10을 싹쓸이했다(11월 9일 종가 기준). 인베스코 솔라 ETF(TAN) 166.4%, Invesco WilderHill Clean Energy ETF(PBW) 142.7%, 퍼스트 트러스트 나스닥 클린 에지 그린 에너지 인덱스 펀드(QCLN) 142.0%, SPDR S&P Kensho Clean Power ETF(CNRG) 114.8%, KraneShares MSCI China Environment Index ETF(KGRN) 112.5% 등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