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국내 은행들이 너도 나도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기존의 사무 공간 제공, 경영 컨설팅 등 측면 지원을 넘어 유망 핀테크 업체에는 해외 진출 지원과 함께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하는 직접투자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자체적인 핀테크 서비스 개발의 한계를 극복하고 갈수록 격화하는 혁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내년에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으로 핀테크, 빅테크와의 혁신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돼 은행들의 핀테크 육성 행보가 빛을 발할지 주목된다.


핀테크(FinTech) 서비스가 우리 일상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 간편이체와 결제는 물론 대출 상담부터 심사, 연체 관리까지 돈이 흘러들고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핀테크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 혁신 없는 생존이 어려워진 은행들이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에 나선 배경이다.


카카오뱅크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카뱅은 ‘핀테크’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2017년 자본금 3000억 원으로 출범해 불과 3년여 만에 자본금 2조5000억 원대, 같은 기간 몸값도 5배가량 뛴 10조 원대로 불리며 급격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빅테크(bigtech) 기반의 거대 메신저 플랫폼과 핀테크라는 혁신 서비스가 맞물린 결과다.


얼마 전 해외 시장에서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핀테크 업체인 ‘앤트그룹’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기술을 앞세운 앤트그룹의 일반 공모에 역대 최대 규모인 3000조 원의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중국 금융당국의 상장 중단 조치로 IPO 추진 역시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졌지만 앤트그룹은 글로벌 IPO 역사에서 새로운 기록을 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금융 혁신의 발전 방향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각 나라별로 금융 인프라와 규제 여건으로 인해 핀테크 기술의 확산 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선진국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 향후 수년 내에 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고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기업에 흡수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현실이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금융 산업 전망 자료를 통해 “내년에는 플랫폼을 보유한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더욱 가속화되고 스몰 라이선스 도입, 인가 단위 세분화 등을 통해 핀테크뿐 아니라 소규모 특화 금융사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며 “특히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되면 그동안 추진해 온 오픈뱅킹이 마무리되면서 기존 금융사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ING·바클레이스, 핀테크 도입한 새 비즈니스 ‘눈길’
글로벌 시장에서는 상당수 금융사들이 이미 핀테크 기술 도입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네덜란드 ING은행의 ‘욜트(Yolt)’는 국내 금융사들이 최대 격전지로 꼽는 ‘마이데이터’ 사업의 선행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욜트의 초기 사업모델은 상대적으로 핀테크 규제가 덜한 영국 금융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국내의 경우 올 초 ‘데이터 3법’ 국회 본회의 최종 통과로 내년부터는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초개인화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ING은행의 욜트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오픈뱅킹 서비스는 물론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연금 통합관리, 보험 추천 및 변경, 공과금 납부 등과 같은 개인화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6월 기준 25만 명이었던 영국 내 이용자 수도 2년 만에 140만 명으로 늘었으며, 영국 금융당국에 따르면 관련 서비스에서 욜트의 활용 비중은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김도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욜트는 ING 고객은 물론 타행 고객에게도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는 욜트가 개별 애플리케이션으로 분리 운영되고 있기에 가능하다”며 “초개인화 서비스를 위해 외부 업체와의 제휴도 불사한다는 점, 그리고 외부 핀테크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는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라는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고 소개했다. 실제 욜트는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자동차 보험료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주행 거리별 보험료를 산정하는 인슈어테크 ‘바이마일즈(By Miles)’와 제휴를 추진하는 등 최근 2년간 12개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상대적으로 대면 서비스의 중요성이 큰 자산관리(WM) 시장에도 혁신의 바람이 파고들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은 지난 7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플랜앤인베스트(Plan&Invest)’를 선보여 그간 열세였던 WM 부문을 크게 만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클레이스 역시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의 경우 국내와 마찬가지로 핀테크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바클레이스는 경쟁 은행과의 차별화를 위해 유럽의 2대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스캘러블 캐피털(Scalable Capital)’과 제휴를 맺었다. 플랜앤인베스트의 강점은 시장 변동성을 토대로 산출한 1만여 개의 포트폴리오 조합에 가입자의 나이, 재무 여건, 위험 선호도 등을 매칭함으로써 초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비스 대상도 대중 부유층으로 확대하는 한편 전문 인력의 자문 서비스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같은 연구소 황나영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금융 수요의 증가와 ‘데이터 3법’ 통과 등으로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금융사들도 단순 포트폴리오 추천에서 벗어나 차별화되고 특색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외에도 WM 시장 글로벌 1위인 UBS는 대면 서비스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자산관리 솔루션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히 UBS는 금융사 최초의 인공인간(Artificial Human)을 도입해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UBS 역시 자체적인 기술 개발이나 인수·합병(M&A) 전략보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자산관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같은 핀테크 협업 사례가 늘면서 아시아권 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난 11월 초 씨티그룹 아시아태평양 재무거래 솔루션(Citi Treasury and Trade Solution)이 진행한 ‘핀테크 액셀러레이터’ 행사에는 무려 3500여 개의 핀테크 업체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행사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호주 등의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중심이 된 행사로, 주로 결제 및 송금, 오픈뱅킹의 미래, 데이터 임파워먼트 등 세분야의 솔루션이 제시됐다. 씨티그룹은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핀테크 업체들과의 다양한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기존 금융거래에서 발생해 온 문제점들을 해결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에는 350여 개의 핀테크 업체가 사업을 영위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13년(94개)과 비교해 4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1 신한 퓨처스랩 행사에 참여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가운데).
1 신한 퓨처스랩 행사에 참여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가운데).

핀테크 육성에도 ‘신한 vs KB’ 양강 체제
이처럼 대형 은행들이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에 나서는 이유는 기존 전통은행의 경우 영업점 폐쇄 및 인력 감축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핀테크 개발에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점포 경영에 인건비에서도 자유로운 핀테크 업체와는 경쟁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17개 은행의 정보기술(IT) 예산 총합은 2092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15.4%에 불과했다. 은행당 평균 123억 원으로, IT 전문 인력도 은행당 28명(총 471명)에 그쳤다.

세계적인 금융 석학으로 알려진 브렛 킹은 “기존 은행들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핀테크 파트너와 관계를 맺고 혁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핀테크 업체 역시 은행과의 파트너 관계를 통해 얻게 될 확장성과 수입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국내 은행들 역시 자체적인 혁신 서비스 개발과 함께, 금융그룹 차원의 핀테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및 액셀러레이터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경영 멘토링은 물론 법무, 마케팅, 기술 지원 등 핀테크 지원 예산과 규모도 매년 증가 추세이며, 이 과정에서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에 직간접적으로 지분을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현재 핀테크 육성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리딩뱅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한금융과 KB금융그룹이다. 순이익과 총자산을 둘러싼 두 그룹의 경쟁이 핀테크 분야로까지 확전하는 모양새다.


양사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신한퓨처스랩(Shinhan Future’s Lap)과 KB이노베이션허브(KB Innovation Hub)의 출범 시기 역시 지난 2015년으로 운영 노하우 측면에서도 경쟁사 대비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신한퓨처스랩은 지난 6년간 총 195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해 왔는데, 해당 프로그램에 지원한 기업만 33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향후에는 한 해 두 차례의 모집 과정을 통해 육성 기업을 매해 80여 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신한퓨처스랩이 내세우는 최대 강점은 93.8%에 달하는 높은 생존율이다. 20여 곳 가운데 1~2개 기업만 통과할 수 있는 까다로운 선발 기준과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밑바탕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말 기준 국내 일반 기업의 3년 생존율은 41.5%, 5년 생존율은 28.5%에 불과했다.


실제 그동안 신한퓨처스랩은 50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직접투자 220억 원, 간접투자 88억 원 등 308억 원의 투자금을 집행했는데, 이를 위해 지난해 총 250억 원 규모의 전용 펀드(원신한퓨처스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현재 신한퓨처스랩이 육성 중인 주요 스타트업으로는 고음파 기술 보유 기업인 ‘단솔플러스’, 개인 간 거래(P2P) 기업인 ‘어니스트펀드’, 상권분석 정보 제공 기업인 ‘오픈업’, 딥러닝 AI 기술을 보유한 ‘스켈터랩스’ 등으로 은행, 카드, 보험 등 신한금융 계열사들과의 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신한금융그룹 차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 진출 지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퓨처스랩은 최근 3년간 베트남 12개 사, 인도네시아 8개 사의 해외 진출 지원에 나섰으며, 올해부터는 6개 기업의 미국 실리콘밸리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신한퓨처스랩이 4차 산업혁명 분야 전반으로 지원 기업을 확장했다면, KB이노베이션허브는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  KB이노베이션허브 개소식에 참석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가운데).
2 KB이노베이션허브 개소식에 참석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가운데).

지난 6년간 KB이노베이션허브의 지원 기업으로 선정된 ‘KB스타터스’는 총 111개 사로, KB금융 계열사를 통해 은행권 최대 규모인 500억 원가량의 투자금이 집행됐다. 이들 가운데 모바일 통합 인증 솔루션 기업인 ‘플라이하이’, AI 기반의 분석 플랫폼인 ‘애자일소다’, 금융 데이터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인 ‘해빗팩토리’, 소프트웨어 보안 솔루션 기업인 ‘에잇바이트’, 목소리 인증 간편결제 서비스 기업인 ‘파워보이스’ 등과는 다양한 방식의 협업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핀테크뿐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물론, 언택트,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KB이노베이션허브 역시 글로벌 엑셀러레이터인 ‘플러그앤플레이(PLUG And PLAY)’와의 제휴를 통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플러그앤플레이는 페이팔, 드롭박스 등 글로벌 스타트업을 육성해 온 글로벌 엑셀러레이터로,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30여 개국에 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KB이노베이션허브의 중장기 지향점은 ‘10-10클럽’이다. 10-10클럽은 KB금융 계열사로부터 10억 원 이상 투자와 10건 이상 제휴를 달성한 기업을 일컫는데, 현재까지 플라이하이와 애자일소다가 이 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신한금융과 KB금융 외에도 우리금융지주(디노랩), 하나금융지주(1Q애자일랩), 기업은행(IBK 1st랩)도 자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