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임상봉 작가는 본업보다 바우하우스 가구 수집가로 더 이름이 나 있다.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갔던 1990년대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만난 것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고 소회했다. 빈티지 가구 추종자들에게는 보물섬과도 같은 서울 성동구 마장동 그의 아틀리에에서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만나봤다.

'사보' 임상봉 작가 “앉아 봐야 가구의 진가를 알 수 있죠”

“앉아 봐요. 앉아 봐야지 이 가구가 얼마나 좋은 것인 줄 알죠.”


‘사보’ 임상봉 작가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 콜롬보가 디자인한 엘다체어에 앉아 보길 권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앉은 엘다 체어는 부드러운 가죽과 적절한 쿠션감이 감싸 줬고 등을 감싸는 개별 쿠션은 등과 목을 편안하게 지지해 줬다.


“그게 바로 바우하우스 디자인이에요. 아름다운 디자인이면서도 실용적인 만듦새. 바우하우스 가구의 내구성은 말할 것도 없죠.”


그의 아틀리에는 바우하우스 디자인 수천 점이 사용되는 공간이다. 소파, 암체어, 테이블은 물론 그가 사용하는 법랑냄비, 컵 등 작은 소품 하나까지 모두 오리지널 빈티지 디자인이다.

'사보' 임상봉 작가 “앉아 봐야 가구의 진가를 알 수 있죠”


임 작가가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에 재학 당시 바우하우스의 옛날 이주촌인 바이센호프 지들롱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바우하우스가 창시되던 1919년, 우리나라는 만세운동을 할 시기였어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전 세계를 움직일 엄청난 디자인이 태동되고 있었던 거잖아요. 거기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달까요. 그 이후부터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제가 독일에 있던 1990년대만 해도 독일인들 역시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어요. 벼룩시장에 헐값으로 나온 가구들은 일본 사람들이 와서 전부 사 갔죠. 저도 그 틈에서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많이 수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선구자적으로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수집한 셈이죠.”


마장동의 공간 외에 그가 모은 빈티지 가구와 조명 등 소품은 2만여 점에 달한다. 한 공간에 모두 모을 수 없어 경기도 일산 8곳과 독일 2곳의 창고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


“여름휴가엔 창고에 가는 게 일이에요. 우리나라는 장마 때문에 가구 관리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하죠. 휴가 때 창고에 가면 창고 문을 다 열고 습기를 제거해 줍니다. 이번 여름에 비가 참 많이 왔죠. 아니나 다를까 창고도 비가 샌 곳이 있더라고요. 가서 일일이 닦아 주고 말려 줬죠.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못 갔지만 매년 4월에는 독일 창고에도 갑니다.”


빈티지 오리지널 가구를 직접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가구는 사용해야지 망가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는 가구를 창고에만 모셔두지 않는다. 마장동의 아틀리에로 가져와 1년에 한두 번 가구를 교체해 주는 것.


“창고에만 쌓아 두고 사용하지 않으면 가구는 금세 망가져요. 소파는 자꾸 앉아야 쿠션도 더 살고요. 조명은 켜 주고, 오디오도 계속 사용해야 해요. 그것이 제가 빈티지 가구를 관리하는 방법이에요. 사람 손을 타 가며 잘 사용해 주면 됩니다.”


그는 지금까지 수차례 그의 컬렉션을 전시했다. 그때마다 그는 사람들이 직접 앉아 보고, 만져 보게끔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갔을 때 만세를 불렀어요. 다 제가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유리관에 전시돼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바우하우스 디자인 전시를 해도 사람들이 직접 앉아 보게 해요. 그래야 가구의 진가를 알 수 있거든요.” 다음은 임 작가와 일문일답.


처음 모았던 컬렉션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제가 처음으로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푹 빠진 후 독일의 한 벼룩시장에 갔어요. 거기서 묵직한 의자를 단돈 1유로에 가져가라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구나 싶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큼 집어 왔죠. 집에서 가구 컨디션을 살피는데 의자 바닥에 이렇게 써 있었어요. ‘IKEA’. 하하하. 저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있었던 거죠.”


그림을 팔아서 가구를 샀다고도 하셨는데요.


“독일에 있을 때 세 번 그림 전시를 했어요.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뮌헨에서 전시를 하던 때였어요. 겨울이라 물을 뺀 빈 수영장에 수영하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지역신문에 날 정도로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그때 어떤 독일인이 와서 저를 집에 초대하면서 제 작품 석 점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꼭 사고 싶다고 했어요. 그의 집에 초대됐는데 집 안이 온통 빈티지 가구였던 거예요. 미스반데어로에, 에로 사리넨 등. 그래서 전 제 작품이 사고 싶으면 가구로 값을 지불해 달라고 했죠. 흔쾌히 승낙하셔서 제 작품 석 점과 가구를 바꿔 가지고 왔어요.”


가구를 배치할 때 조명을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인테리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조명이에요. 은은한 색깔이 가구의 빛깔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늠하죠. 그런데 제 가구를 사겠다고 하는 거부들의 집에 가 보면 온통 명품 가구로 치장했지만 조명은 형광등일 때가 있어요. 실소를 금치 못했죠. 그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치는 거거든요. 조명뿐 아니라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도 마찬가지죠.”


처음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접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한다면.


“우선 많이 공부해야 해요. 그래야지 진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거든요. 그리고 욕심내서 한꺼번에 모으기보다는 하나하나 모으는 것을 추천해요. 우선 의자부터 오리지널 가구를 모으는 거죠. 그렇게 하나둘 모으면 수십 년 후에는 저처럼 많은 컬렉션돼 있지 않겠어요. 집 안을 바우하우스 디자인으로 모두 채울 만큼요.”

'사보' 임상봉 작가 “앉아 봐야 가구의 진가를 알 수 있죠”

1.사보 임상봉 작가의 마장동 아틀리에.
2,3 실제 주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1950년대 WMF법랑 냄비들.
4 마장동 아틀리에 주방 찬장은 바우하우스 여성 건축가인 마가레테 슈테 리호츠키(Margarete Schütte Lihotzky)가 1927년에 디자인했던
오리지널 프랑크푸르터 부엌(Frankfurter Küche)을 컬렉션해 온 것이다.
5 임상봉 작가의 빈티지 소품.


최근에 눈여겨보고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글쎄 요즘엔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컬렉션을 하지는 않아요. 가격이 많이 오른 탓이 있고, 웬만한 것은 제가 다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아, 하나 있어요. 프랑스디자이너 로저 탈론(Roger Tallon)이 만든 계단이에요. 탈론은 전등, 의자, 시계 등을 디자인하는데 이 사람이 또 잘하는 게 계단 디자인이에요. 얼마나 독특한지 몰라요.”


계단을 가지고 싶다는 게 굉장히 특이하네요. 계단도 모을 수 있나요.


“탈론의 계단은 조립이 가능한 계단이에요. 하나씩 살 수가 있죠. 계단 모으는 게 특이하다고요? 저처럼 모을 거 다 모으면 그렇게 돼요. 지금부터 빈티지를 모으면 20년쯤 후에는 저처럼 계단을 모으고 있지 않을까요. (웃음)”


지금까지 바우하우스 가구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해 오셨는데, 앞으로도 전시 계획이 있으신가요.


“전시는 가구 수집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창구예요. 제품을 팔자고 전시하는 건 아니지만 판매도 되고, 디자인 저변을 넓힐 수 있거든요. 디자인을 사는 건 문화를 사는 거잖아요. 가게에서 초코파이 사듯 쉽게 사는 게 아니죠. 따라서 전시를 통해서 보여드리고, 함께 향유하게끔 하는 거죠. 제가 가구전시만 국내에서 여러 번 했는데 다 같은 주제로나 같은 가구로 한 적이 없어요. 모두 다른 콘셉트로, 다른 가구를 보여드렸죠. 이번에는 플라스틱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폭넓은 플라스틱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플라스틱은 가볍고 값싼 소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리지널 플라스틱 제품만이 가진 깊이와 강도는 지금의 플라스틱과 사뭇 다른 것이었거든요. 그런 것을 전시를 통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컬렉션 외에 더 장기적인 계획도 가지고 있나요.


“길게는 제 컬렉션으로 모마 같은 디자인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죽을 때 제 가구들을 다 이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지중지 모은 것들을 팔아 치울 수도 없잖아요. 저의 컬렉션을 잘 소장해 줄 시에 기증해서 박물관으로 잘 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글쎄요. 그런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그런 소회를 가지고 있을까요. (웃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