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머니=글 정채희 기자 ㅣ 도움말 용인정신병원 ㅣ 사진 서범세 기자·펫포레스트 제공] 반려인구 천만 시대다. 넷 중 하나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얘기다. 어느새 가족이 된 나의 반려동물, 그러나 반려동물의 생애는 짧다. 외면하고 싶었던 이별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별을 연습해야 한다.

또 다른 가족 ‘펫’과의 이별연습

반려인구 천만 시대,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해

#1 인천에 거주 중인 42세 나영 씨는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느새 노견이 된 초롱이(16)가 식욕을 잃고 밥을 거부한 지 오늘로 닷새째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다가온 이별 앞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2 부연(가명) 씨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늘 현관 앞까지 마중 나와 꼬리를 흔들던 애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오늘로 닷새째, 적막만 흐르는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애플이가 먹던 사료, 체취가 밴 옷, 삑삑거리던 장난감…. 집 안 곳곳에 남은 애플이의 흔적들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다가온다. 이제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주변에서 유난이라고 생각할까 봐 슬픔을 표현하기도 겁이 난다. ‘나의 전부였던 네가 없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옥죄는 죄책감, 그리고 우울증

‘펫로스증후군(pet loss syndrome)’이 현대사회 심각한 우울증의 하나로 떠올랐다. 펫로스증후군이란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의 죽음 후에 극도의 상실감, 우울감, 죄책감 등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을 만큼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구분된다.

정신건강의학에 따르면 펫로스증후군은 감정적 반응과 행동적 반응, 신체적 반응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 보일 수 있는 감정적 반응은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거나 식욕 부진, 불면증과 같은 식이와 수면의 변화, 분노, 죄책감, 우울감 등이 있다. 신체적 반응으로는 가볍게는 목의 이물감부터 두통, 어지럼증, 가슴 두근거림 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행동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반려동물의 사망을 부정하며 반려동물이 살아 있을 때와 동일한 행동을 하려고 한다.

펫로스증후군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이때 “까짓 개가 죽었는데 뭘 그렇게 슬퍼하느냐, 새로운 동물을 키우면 된다”는 식의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펫로스증후군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곤 한다. 충분히 애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주변 환경이 펫로스증후군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족 ‘펫’과의 이별연습
(사진) ‘밝게 빛나라’란 뜻을 가진 루세떼스톤. 반려동물 유골분으로 제작되는 보석. / 펫포레스트 제공

전문가들은 펫로스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선 반려동물과 인간의 수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충실히 보낸다면 다가오는 이별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보호자를 옥죄는 죄책감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이별 후 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야 이별에 대한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렵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다. 최근에는 같은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있고, 펫로스증후군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전문가 집단도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펫로스증후군 증상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속된다면 정신과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언젠가 어김없이 찾아오고, 이별은 슬픔을 동반하며, 그 슬픔의 강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혹자는 죽음을 상상하고 이별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불편한 마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떠나보내는 데에도 기술은 필요하다. 펫로스를 인정하고 조금 덜 아프기 위해서 이별을 준비하는 오늘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