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글·사진 이헌 작가·패션 칼럼니스트·스타일리스트] 세계 3대 요리학교라 불리는 일본 오사카의 츠지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한 요리사 문동택. 그가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짜를 요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찾아온 이들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응대하는 것이다. 소박한 제철 재료와 풍성한 마음을 담아 힐링 푸드를 조리하는 문동택만의 장인정신을 만나본다.
TV를 틀면 쏟아지는 먹방과 맛집 탐방 프로그램, 그 밖에도 요리와 음식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승승장구하는 시대다. 유튜버라 불리는 개인방송 채널 운영자들 중에는 단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익을 얻는 이들도 있다.
일부는 많이 먹는 것이 미덕인양, 음식의 양으로 승부수를 띄우기도 한다. 한편 1일 1식을 주창하며 음식의 양과 품질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건강관리라는 명목하에 특정 음식이나 식재료를 폄하하거나 터부시하는 경향까지 보이는 이들을 보면, 같은 음식을 바라보는 극단적인 시선 차이가 가능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우린 이렇게 음식에 대한 양극의 태도가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먹음으로써 행복해지고, 맛봄으로써 마음 깊은 곳까지 위로되는 소위 힐링 푸드라는 것이 존재한다.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하든 먹는다는 행위는 식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넘어 영혼을 달래고 감싸 주는 소중한 무엇이며 그것을 준비하는 정성은 분명히 인간이 인간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박한 요리주점 ‘분노지’
국내에도 번역본이나 한국 버전이 방송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던 일본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와 <심야식당>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집 밖 세상에서 가족부양 혹은 자아성취를 위해 온 에너지를 다 털어 넣고 귀가하는 길, 지친 마음을 질질 끌며 예고도 없이 찾아가면 정성이 담긴 한 그릇으로 마음을 사르르 녹여 줄 식당을 마음에 그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혼란한 마음을 정돈시켜 주고 다시 힘내서 뭔가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나만의 심야식당,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듯 마음을 채워 주는 힐링 푸드를 내주는 마음의 고향을 동네 어귀 어딘가에서 꿈꿔 왔을 것이다.
필자에게 그렇게 꼭꼭 숨겨 둔 곳을 한 군데 말하라면 망설임 없이 ‘분노지(文ノ字)’를 손에 꼽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옆에 둔 한적한 동네 어귀,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분노지는 복덕방이나 떡볶이가게가 있을 것 같은 자리에 소박한 미닫이문을 걸어놓은 일본식 선술집이다.
“어르신들이 ‘야’, ‘너’ 하며 서로를 부르다가 나이가 지긋해지면 ‘김가(金家)야’, ‘이가(李家)야’ 하며 서로를 조금은 어른 대접해 주며 부르잖아요? 분노지(文ノ字)는 일본에서 서로를 높여 친근하게 부르는 방식으로 저를 부르는 방법입니다.” 문동택 셰프의 성 ‘문(文)’을 일본식으로 희화한 분노지라는 식당 이름은 자신의 요리를 취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반영한다.
거창한 격식이나 화려한 치장보다는 진솔하고 따뜻하게 서로를 대하는 방식으로 음식을 건네고 즐기는 소박한 장소다. 손님이 가득 차 있지 않는 한 언제나 따뜻하게 환영받을 수 있는 곳, 그냥 아무거나 한 접시 부탁해도 마음을 위로받게 될 그곳의 주인장이 이 작고 아담한 동네 식당을 문 열게 된 이야기는 다름 아닌 위로의 한 접시에 인생을 건 또 한 명의 대한장인의 모습이다.
츠지조리사전문학교와 서비스 철학
특별히 일본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던 그가 일본어 전공을 택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 진학자의 평범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점수에 맞는 적당한 학교와 전공이 그의 앞에 놓였을 뿐.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군 입대 전까지도 일본어의 기본인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다 외우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의 저명한 요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 술에 깊은 조예를 지닌 지금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꽤나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복무를 마치고 턱없이 부족했던 일본어 실력을 다지기 위해 2003년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그는 자연스럽게 일본의 식도락 문화에 스며들게 됐다. 그러다가 2004년 오사카산업대 국제경제학부에 입학하게 됐다. 그리고 공부를 마치기 위해 도쿄행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츠지조리사전문학교(辻調理師専門学校)라는 곳을 알게 됐다.
이 학교는 미국의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리는 명문 요리학교로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다. ‘혼모노오 메자스(本物を目指す)’ 즉 ‘요리의 세계는 진품 이외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구호로 유명한 이 학교는 일본 전역의 일류 음식점에서 실력을 쌓은 전임 교수들이 강사진으로 구성돼 다양한 요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한국에도 TV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한 셰프가 졸업한 학교로 알려졌다.
특히 입학보다 어렵다는 이 학교의 졸업 테스트가 이뤄지는 가상의 식당 카덴은 음식 솜씨뿐만 아니라 위생이나 서비스도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문동택은 입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학교의 커리큘럼과 시설에 반영된 요리에 대한 철학에 매료된다.
그 후 준비 중이던 도쿄의 학교를 포기하고 요리사의 길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된다. 혹독한 커리큘럼, 웬만한 대학의 4년치보다 비싼 등록금은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요리로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생각과 요리의 풍요로운 배움의 세계를 마음에 그린 그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시간조차 아까웠다고 한다.
취재 중 식당 한편에 꽂아 둔 조리학교 시절의 교재와 레시피 모음을 보며 아련해지는 그의 눈빛을 보았다. 그곳에서의 결코 쉽지 않던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그를 통해서 진정성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 사실 한없이 따뜻한 그이지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순간 상당히 엄격해진다.
어느 날 저녁, 지방에 사는 필자의 가까운 지인이 서울에 있는 동창 모임을 주선하면서 분노지를 통째로 빌리기로 했다. 이전에 분노지의 맛과 서비스에 만족했던 지인은 개인 모임을 통해 그 감동을 나누며 문 셰프의 영업적 측면도 도우려는 선한 동기로 시작된 계획이었다. 안타깝게도 총 인원이 수용 인원을 약간 넘었지만, 당연히 오랜 단골의 친분으로 그 정도는 눈감아 주겠거니 하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그는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손님들을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하는 서비스가 불가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 후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가 가까운 후배와 예약을 하고 일찌감치 분노지로 향하던 날이었다. 시간이 약간 늦어져 미리 양해를 구하고 도착하자 우락부락한 손님이 삿대질을 하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쩔쩔매는 그를 보면서 내가 예약한 4인 테이블을 공유하겠다고 눈치를 보냈지만 문동택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소란이 끝나고 내 자리로 온 그는 그 손님이 예약을 하지 않고 들이 닥쳐서는 3시간을 운전해 왔으니 빈자리에 앉겠다고 하더라며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그 테이블은 나를 위해 이미 예약된 곳. 미안한 마음 없이 즐기라는 말과 함께 특별한 음식으로 필자를 안심시켜 주었다. 따뜻한 식당에 스민 엄격함, 손님에겐 관대하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는 타인에게는 단호함. 분노지와 문 셰프를 사랑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다.
가족이 함께 완성한 요리사의 꿈
분노지가 만들어 내는 따뜻한 분위기는 식당을 대하는 그의 가족들의 태도에서도 느껴진다. 문동택의 부모님은 경기도 양평의 전원주택에서 기거하고 있는데, 그곳의 텃밭은 한국에선 잘 나지 않는 일본 음식을 위한 식자재가 유기농으로 생산된다.
분노지의 손 글씨 메뉴판은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배우며 전각, 서각에 상당한 조예를 갖게 된 그의 아버지 작품이며, 분노지의 고풍스러운 나무 간판은 그의 아버지가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와 함께 제작해 정성이 가득한 것이다.
문 셰프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프로필 이미지는 매장과 문동택을 묘사한 소담한 일러스트인데, 디자이너 출신인 그의 아내 작품이라고 한다. 분노지를 아끼며 셰프로 일하는 남편을 향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선생님들에게 날리는 부도수표는 자신의 아버지가 요리사이며 공짜로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는 호언장담이다. 문 셰프의 지인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그 어린 친구의 아버지를 향한 자부심은 온 가족들이 아이의 마음에 심어 둔 것일 테다. 분노지를 향한 식구들의 마음이 손님들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학교를 마치고 2007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호텔 조리부, 이자카야, 소바 전문점 등 다양한 일본 요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다. 그의 경영 철학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4분 30초의 짧은 순간의 노래가 여러 사람에게 감동으로 다가와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잖아요. 저는 정성이 담긴 한 접시의 요리에도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지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이런 진심을 한 접시 한 접시에 담아 보답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제 가족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람이고 그런 행복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요리라면 사람들도 좋아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요리를 만듭니다.”
한편 보람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좋은 음식, 좋은 장소, 좋은 노래, 모든 좋은 것들을 만나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잖아요. ‘함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요. 분노지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그렇게 맛있게 드시고 가시면 그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다녀간 분들이 부모님이나 자녀들과 다시 오시게 되면 그 마음이 전해지기에 제가 하는 일에 잔잔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평소의 생각과 그의 생활이 담겨 만들어 낸 진짜는 이렇게 필자를 감동시키고, 분노지를 찾은 이들에게 위로와 안정을 전해준다.
분노지, 아니 문 씨에게 바라는 것
분노지를 몇 년째 다니면서 간간이 문 셰프에게 목표에 대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방송으로 유명해지고 또 거대한 식당 체인을 운영하는 다른 동창들이 부럽지는 않은지. 하지만 그는 이곳이 나만의 심야식당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언제나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곳, 한 접시로 채워지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언제나처럼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식당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들은 그의 마지막 한 마디가 이 글을 정리하면서 내내 떠올랐다. 뻔하지만 진정성 넘치는 말을 이번 칼럼의 마지막 문장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그 한 마디는 문 셰프가 인생을 대하는, 그리고 분노지를 운영하는 그의 태도와 다름없다.
고관대작으로 명예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이들도, 직장상사와 가족 혹은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며 찌든 삶을 사는 이들도 따뜻한 위로가 담긴 한 접시가 꼭 필요하다. 그런 이들에게 언제든 분노지를 찾아와 위로받으라고 권할 수 있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의 문 씨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그가 칼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지켜질 진짜 마음이니까. 그의 가감 없는 솔직한 속내를 전하며 이 칼럼을 갈음한다.
“냉면가락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