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든 교육 기관이 전면 온라인 수업에 돌입한 가운데 ‘수업의 질’에 대한 불만도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교육의 질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온라인 수업 환경으로 바뀌면서 그 불만의 정도가 폭발적으로 증폭됐다. 일각에서는 e교육 시스템이 되레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big story]e교육, 양극화 문제 풀 수 있을까
한 학기의 상당 부분을 원격으로 수업하고 치른 지난 6월 수능 모의평가 성적 결과, 국어, 영어, 수학(나) 모두 중위권이 줄고 상위권과 하위권이 늘어나 학력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이 뚜렷이 드러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민정 의원은 6월의 수능 모의평가를 3개년 치 분석한 결과, 90점 이상과 40점 이하 비율은 늘었고 중위권은 줄었다고 발표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어에서 90점 이상의 비율은 7.15%로 2019년(2.64%), 2018년(5.45%)보다 증가했고, 40점 미만은 26.23%로 2019년(24.73%), 2018년(24.36%)보다 늘었다. 영어에서 90점 이상은 8.73%로 2019년(7.76%), 2018년(4.19%)보다 늘었고, 40점 미만은 23.34%로 2019년(20.85%), 2018년(22.88%)보다 증가했다.

수학(나)에서 90점 이상은 7.40%로 2019년(3.88%), 2018년(1.93%)보다 많이 늘었고, 40점 미만도 50.55%로 2019년(49.73%), 2018년(42.69%)보다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시험 문제가 쉬워서 상위권이 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문제가 쉬웠다면 중위권도 증가하고 전반적으로 성적이 모두 올랐어야 했다. 그런데 중위권은 오히려 줄고 하위권이 늘었다. 단순히 시험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결과가 함의하는 바를 분석해 보자.

우선, 상위권 학생에게 학교 수업의 필요성이 희미해졌다. 6월 모의평가 전까지 학교는 등교를 온전히 못하고 나름의 온라인 수업을 했지만, 학원은 전면 등원 금지가 없었고 많은 학원들이 온라인으로도 수업을 그대로 동시에 제공해서 등원 여부와 무관하게 학습 결손이 전혀 없게 운영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시간이 여유로워진 중상위권 학생들은 예전보다 사교육에 더 의존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코로나19 이전 상황보다 더 내실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그동안 학교 수업이 (수능 점수를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돼 왔다는 일각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위권일수록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한다는 공식 통계 보고도 있는데, 이 결과는 특히 상위권 학생들에게 ‘학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수능을 보는 학생 수가 증가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 수능 체제가 유지되는 한 이런 현상은 심화될 수 있다.

둘째는 하위권 학생에게 학교는 지식 제공보다 ‘관리’가 주요 기능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전면 온라인 수업에서도 학교는 EBS 강좌나 인터넷 강의 등으로 지식 콘텐츠 전달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하위권이 증가한 이유는 지식 전달 콘텐츠 자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콘텐츠들을 학생들이 혼자 스스로 학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교육에서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것을 강조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기 스스로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정기적인 수업에 참여하고, 얼굴을 보고 독려하고, 동기 유발도 고무시켜 주고, 마감을 독촉하는 등 관리가 있어야 공부가 되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학교는 그동안 이런 관리 기능을 해 왔던 것이다. 학원에서도 이런 역할을 해 왔지만 상대적으로 학원비를 덜 지출하는 하위권에서는 그러한 학원의 관리를 덜 받았을 것이고 학교가 그나마 그러한 기능을 해 왔는데, 원격교육 상황이 되면서 그러한 관리 부분이 어려워지자 하위권이 증가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는 수학(가)형은 다른 과목들과 달리 예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국어, 영어, 수학(나)형은 뚜렷하게 중위권이 줄고 상·하위권이 늘어나는 분포를 보였지만 수학(가)형은 큰 차이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몇 가지 측면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선 수학(가)형은 이과 수학이라 수포자(수학포기자) 등 하위권은 어차피 수학(가)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수학(가)형은 매우 장기간 실력이 축적되는 영역이라 단기간의 변수로 점수가 쉽게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수학(가)형은 가장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영역이라 어차피 평소에 학교 수업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음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즉, 원격교육 상황에서 다른 과목들은 학교 수업이 빠지고 그 부분을 사교육이 채운 경향을 보이면서 점수 분포의 변화를 보였다면, 수학(가)형은 어차피 처음부터 학교 수업의 기능이 거의 없고 대부분 사교육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학교는 변수, 학원은 상수였던 코로나19 사태에 별 변화가 없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단, 이 결과는 원격 환경에서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걱정만 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원격교육 아닌 기존의 대면 교육 환경에서조차 학교의 기능과 존재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강민정 의원은 이 결과가 “온라인 개학과 비대면 원격교육이 미래 교육의 전면적인 대안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고 했는데, 필자가 보기에 이 결과는 원격교육은 고사하고 기존의 대면 교육조차 미래 교육을 전혀 준비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원격이 아닌 정상 등교 상황에서도 학교 교육은 사교육보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고 상위권의 공부를 오히려 방해만 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학교는 그럼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는 회의가 나올 수밖에 없고 굳이 학원 수업이 아닌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하는 의미가 설득되지 않는다.

수업 외의 다른 활동들이나 또래 집단 간 사회성 발달 등의 명분으로 학교의 존재 가치를 항변하려는 건 너무 빈약하다. 물론 당연히 학교생활에 수업 이외의 여러 요소가 있는 건 맞지만 수업이 그중에서 가장 핵심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가장 핵심인 수업에서 학교가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면 다른 부수적인 기능을 아무리 들이대도 학교라는 권위를 유지하기 민망해진다.

마지막으로 교육당국은 이러한 결과의 원인을 ‘원격교육’ 상황이기 때문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진짜 더 근본 원인인 현 학교 교육 패러다임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위권 실종 데이터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교육부가 고심 끝에 대책으로 발표한 것이 원격수업의 질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원격수업 중인 모든 학급에서 실시간으로 조회와 종례를 운영하도록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실시간으로 쌍방향 수업을 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도록 하는 등 쌍방향 원격수업 비율을 점차 늘려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조회와 종례’를 모두 실시간으로 운영하는 것이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EBS 콘텐츠나 동영상 자료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알아서 공부하라는 방식 때문에 이렇게 중위권이 실종되고 하위권이 늘어났는데,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실시간으로 쌍방향 수업을 하는 것으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 아닌가.

그마저도 교원단체에서는 수업 방법은 전문가인 교사가 판단할 영역이라며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늘리려는 교육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런 상황이니 e교육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e교육, 양극화 줄일 열쇠 쥐나
그럼 e교육은 태생적으로 양극화를 조장하는 본성을 가진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e교육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도 있고 오히려 현격하게 감소시킬 수도 있다. 현재 상당수의 일반 학교에서처럼 e교육이 실시간 쌍방향 거의 없이 일방적으로 콘텐츠 링크를 알려주고 알아서 시청하고 혼자 과제하는 방식으로 가는 한 양극화는 계속 심화될 것이다.
[big story]e교육, 양극화 문제 풀 수 있을까
사실 e교육은 얼마든지 질적으로 탁월하게 운영될 수 있다. 완전 온라인으로만 운영되는 미네르바 스쿨은 이미 하버드대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가 됐다. 국내에서도 국제학교, 자사고, 특목고 등 학부모가 적잖은 학비를 내고 선택해서 다니는 곳은 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부터 즉시 전면 쌍방향 수업을 해서 학습 공백을 막았다.

학부모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학원들도 전면 온라인 수업을 병행해 학습 결손이 없게 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우수하게 온라인 수업을 잘 운영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을 보면 정말 단 10분이라도 공부 시간이 줄지 않았다. 학교는 오히려 더 가열차게 공부하도록 유도한다. 자사고, 특목고, 국제학교 등 학부모가 돈을 내고 선택해야 하는 학교들은 이미 대부분 전 과목의 모든 수업 시간 전체를 실시간 쌍방향으로 하고 있는데, 왜 일반 학교는 그걸 못 하는 걸까.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수업시간을 지켜야만 학생의 출석과 교사의 수업 시수가 인정되는데, 왜 온라인 수업에서는 정해진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지 않고 과제로 대체해도 그걸 수업 시수로 인정하자는 걸까.

매일 수차례 실시간으로 무료 쌍방향 회의를 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왜 공교육에서 그런 수업이 안 되는 건지 납득이 안 된다. 줌, 구글 미트, 행아웃, 팀스 등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료 혹은 저가 프로그램도 이미 보편화돼 있다. 교사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어렵다고 반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반드시’ 해야 하니 이런 저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지원하는 것은 전체 무상교육보다 더 시급한 일이다.

이러닝 성패, 교육 패러다임 변화에 달려
왜 질 낮은 수업들이 방조되고 있을까. 질 낮은 온라인 수업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 각자 스스로 비판적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 그냥 정해진 지식을 숙지하기만 하면 되는 수업에서는 굳이 쌍방향 상호작용 수업이 꼭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전달된 강의 동영상을 보고 시험에 날 만한 내용을 숙지하면 되는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자기주도 학습을 못한다고 학생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콘텐츠에 몰입하지 못 하도록 흥미 유발이 안 되도록 설계된 수업 탓은 왜 안 하는가. 인공지능(AI)이 진료도 하고 뉴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는 시대다. 지식을 잘 전달하는 명강사도 AI로 곧 대체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그저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 관리나 해 주는 기능만으로 학교가 존재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처럼 돌아갈 수 없다. 대면 등교가 어려운 상황은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다. 코로나19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현재의 삶과 교육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런 시대에 동영상 자료를 전해 주고 혼자 공부하라는 형태로는 학습의 양극화는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러나 기존 지식의 전달은 이미 개발된 콘텐츠를 활용하고 교사는 이러한 지식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적, 창의적으로 사고하도록 질문하고 피드백을 주고 토론하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상호작용하는 수업 패러다임이라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고, 온라인이라도 수업시간이 줄어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참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양극화는 감소될 것이고, 개별적 상호작용을 위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더 증가할 것이다. 결국 e교육은 양극화의 주범이 아니라 어떤 교육 패러다임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도, 감소시킬 수도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혜정 소장은…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교육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교수학습개발 센터의 연구 조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 사범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잘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분야를 10년 넘게 가르쳤고,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약
7년간 교수들의 강의를 분석하고 컨설팅했다. 수년간 축적된 연구들을 기반으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출간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현재는 ‘교육과혁신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교육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