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부터 청담동 아이프 '케이티 김 사진전' MONEY 독자 초대
Centralpark_NY, 120×80cm, 2013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 삽시간에 스치는 찰나의 순간을 언제 포착할 것인가는 오로지 사진작가의 몫이며 감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의 감각을 지닌 사진가’라고 불리는 케이티 김의 작품들엔 특별한 끌림이 있다. 케이티 김을 '한국의 브레송'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진예술가를 꼽으라면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년)이 빠지질 않는다. 그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을 두고, "자(尺)를 지니지 않은 기하학자임과 동시에 사격의 명수"라고 평가한다. 평소에 정물사진을 찍을 때조차 발끝으로 살그머니 접근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브레송의 묘비에 "사진은 '영원을 밝혀 준 바로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다"라는 글귀를 적었을까.
케이티 김의 사진은 테크닉보다 스타일이 더 중요함을 증명해 준다. 매 순간순간 평범한 일상을 재발견한 사진들은 상식의 이면을 들춰내 더욱 명징한 상쾌함이 넘친다. 마치 섬광 같은 순간들을 소매치기 하듯, 뷰파인더로 고스란히 스캔해 낸다. 자주 등장하는 사진의 소재 중에 그의 거주지 겸 활동지인 뉴욕이 빠지지 않는다. 2013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촬영한 조깅하는 사진은 그의 대표적인 전형을 보여 준다. 화면 중앙에서 팝콘이 터지듯 화려하게 번진 흰 목련 꽃그늘 아래로 조깅하는 여인을 포착했다. 화면의 조화로운 구성, 색조의 조화로움, 적절한 긴장과 이완의 조율 등 훌륭한 조합이다.
같은 풍경사진에 만약 사람이 없었다면, 사람은 있되 걸어가고 있거나 뛰어가는 방향이 반대였다면, 뛰어가는 사람이 허리에 두른 윗옷이 빨간색이 아니었다면, 저 멀리 높이가 엇비슷한 두 쌍의 빌딩이 없었다면…. 경우의 수는 여럿이겠지만, 그 변수들을 감안하며 사진기에 원하는 장면을 담는 것은 개인차가 클 수밖에 없다. 그 차이가 실력이고, 작품의 완성도 차이일 것이다.
KTKIM, Trocadero_Paris, 120×80cm, 2013
이번엔 프랑스 파리로 가 보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파리를 안 가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면 으레 에펠탑에 가거나 기념촬영을 빼놓지 않는다. 케이티 김 역시 에펠탑을 촬영한 작품이 여러 점 있다. 2013년 작품 <트로카데로 파리(Trocadero Paris)>는 유명 관광명소인 트로카데로 광장의 모습을 담았다. 하늘색 특유의 청명함을 배경으로 제각각 포즈와 동세를 보여 주는 사람들을 역광으로 잡았다. 건물, 조각상, 에펠탑, 사람들이 순서대로 옆으로 펼쳐져 평면적이면서도 묘한 투톤 컬러의 깊이감이 압권이다. 특히 서로서로 겹치지 않은 피사체 실루엣 사이로 에펠탑을 등진 한 여인이 담배를 물고 살짝 고개를 숙인 모습은 화면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더한다.
KTKIM, Sunset Boulevard_LA, 28×21cm, 2020
케이티 김 풍경사진의 남다른 특징 중에 탁월한 색채 감각 역시 압권이다. 작품 <선셋 블러바드 LA(Sunset Boulevard LA)>가 대표적이다. 올해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 역시 트리밍하지 않은 화면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전봇대와 다섯 그루의 야자수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그 사이의 허공을 일필휘지 선묘로 분할한 여백의 미는 도저히 자동차 안에서 잡아낸 순식간의 풍광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올해 여름에 찍은 제주도 애월 앞바다의 파도와 자갈 풍경도 마찬가지다. 해질 무렵의 어둑해지는 조도에서 어떻게 수많은 몽돌 하나하나의 표정을 다 잡아낼 수 있었을까. 역시 짧은 순간의 소득이다.
"다섯 살 꼬마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과 퓨마처럼 재빠른 '동물적인 순발력', 평범한 현장사진으로 전락할 법한 사진들조차도 케이티 김의 날카로운 눈과 재빠른 손, 본능적인 감각을 거치는 순간 놀랍게도 화보에 근접한 놀라운 비주얼 퀄리티로 승천한다. 케이티 김 같은 사진가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보그 코리아의 이명희 편집장 말처럼, 케이티 김은 패션계에서 '믿고 맡기는 사진가'로 널리 알려진 '찐 프로'다. 특히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특별한 매력'에 흠뻑 취할 수밖에 없다. 피사체의 모든 움직임은 케이티 김만의 열린 공간에선 점,선,면이 돼 새로운 조형 세계를 완성한다. 단순히 손동작이 빠르다고 그런 장면을 얻을 수는 없다. 대상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순간적인 집중력, 그리고 명쾌한 판단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시절의 흑백 감성부터 최신식 디지털 컬러 시대의 감각까지 아우른 그의 사진은 '시대적 감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어떤 풍경이든 그의 카메라를 만나면 명품 배경으로 뒤바뀐다. 그만의 독특하고 창의적 감성과 개성 넘치는 연출력 덕분이다.
케이티 김과 브레송을 비교할 때 '남다른 감각의 소유자'라는 측면 말고도 닮은꼴이 더 있다. 최종 사진은 인위적인 트리밍이 가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뷰파인더에 잡힌 풍경의 모습이 그대로 완성작으로 인화되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케이티 김의 사진에서만은 '날것'의 생명력이 마지막까지 유지된다는 점이 불문율이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다." 브레송의 말이다. 케이티 김의 사진 역시 독창적인 마음의 눈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 천부적인 감각에 아날로그적 근면함과 성실성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김윤섭 소장은…
김윤섭 대표는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9 안양국제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2020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아이프(AIF) 아트매니지먼트 대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케이티 김의 사진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아이프 라운지에서 <어쩐지 크리스털 2020-추자도>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