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 장소 협조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저를 성공한 덕후라고 말하더군요. 우리 대중가요와 더불어 살면서 빚진 게 많은 사람이죠.” 대중문화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는 CD와 테이프, LP판을 비롯한 음반 자료와 함께 우리 대중가요 자료를 10만여 점 모았다. 이 중에는 하다못해 아이돌이 광고모델로 나선 과자봉지까지 있어 그의 수집벽을 가늠케 한다.


지루한 장마의 한가운데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최규성 대표를 만났다. 이곳에는 그가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의 개관기념전시에 소개할 중요 아이돌 가수들 자료, 역대 국내외 가요제 수상자 및 악사들과 관련된 대중가요 자료가 전시돼 있다. 그가 연구했던 대중음악 역사와 발자취가 이곳에 작게나마 추려져 있는 것. 아직 정식으로 개관하기 전이었지만 인터뷰 중간 중간 50~6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들이 전시장을 다녀갔다. 그만큼 옛 가요와 대중문화 역사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일 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그동안 딴따라 취급을 받으며 보존해야 할 가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970, 1980년대에는 많은 대중음악이 검열의 대상이 되며 금지된 문화로 전락했던 탓도 있죠. 이사할 때 국내의 대중가요 음반은 폐기되기 일쑤였고, 외국의 LP판들만 보존 가치가 있다고 여겨 왔으니까요.”


그런 탓에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LP는 수입된 LP보다 희귀한 것들이 돼 웃돈을 얹어 주고서도 못 사는 귀하신 몸이 됐다.


“그땐 대중가요를 들으면 핀잔을 듣는 시대였어요. 팝송이나 록을 들어야 음악 좀 듣는구나 했거든요. 다들 팝송 LP 모을 때 전 국내 대중가요를 위주로 모았죠. 제가 좋아했으니까요. 요즘에는 주변에서 선견지명이 있다고들 얘기해요. 국내 LP판 가격만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까요.”


그는 우리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LP만 2만여 장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소장가치가 있는 음반은 모두 가지고 있는 셈. 그 외에 CD와 테이프는 물론 피규어를 비롯한 아이돌 굿즈, 잡지, 의상, 가요제 트로피, 심지어 1990년대 출시됐던 가수 전화카드까지 그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만 10만여 점. 그의 작업실만 봐도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가 꿰어지는 듯했다.


“왜 그렇게 많은 자료를 모았느냐”란 질문에 그는 “그저 우리 대중문화가 좋아서”라고 답했다. 이렇게 대중가요에 관련한 모든 것을 수집하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아이돌 가수 동방신기 멤버 4명이 등장한 과자를 모두 모았는데 이사할 때 이삿짐 직원이 6개 중 2개를 뜯어 먹어 버렸던 것. 단순한 과자지만 그에게는 동방신기 4명의 완전체가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 속상한 기억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경양식 식당에 필요하다며 최 대표의 음반 3000여 장을 가져갔는데 식당을 폐업하면서 음반까지 함께 처분했던 것이다.


“정말 아버지 때문에 어후…. 돌아가시기 직전에 화해했어요.(웃음) 그때 충격이 너무 커서 그 이후 인생에서 이제 더 이상 뭔가를 안 모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성향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기자 시절에는 해외 출장을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음반이며 자료를 한 아름 이고 지고 왔죠. 북한에 취재를 갔을 때는 현지 대중음악 자료들까지 사서 왔으니까요. 저는 그만큼 기록을 좋아하고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 대표의 프로필에는 ‘강릉 KBS어린이합창단’이라는 다소 독특한 경력이 눈에 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대중문화평론가이자 한국대중음악상, MAMA심사위원인 화려한 그의 경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력이었다. 게다가 취학 전 경력이 자랑스럽게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자라던 시기만 해도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했던 문화 불모지 시기였어요. 그 어려운 시기에 저희 아버지께서 저를 합창단에 넣어 주시고, 전용 TV에 전용 전축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해 주셨죠. 극장을 드나들며 공연을 하고, 라디오 방송국에 가곤 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런 토양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이고 그렇기에 유년기의 합창단 경력이 제겐 중요한 것입니다.”


최 대표는 <한국의 인디뮤지션>(2009년), <대중가요 LP가이드 북>(2014년), <골든인디컬렉션>(2015년), <걸그룹의 조상들>(2018년) 등에 이어 최근에는 560쪽에 달하는 <빽판의 전성시대>까지 우리 대중음악에 대한 기록을 펴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가 길었음에도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연구가 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책을 쓰며, 또 음반을 수집하며 자연스럽게 우리 대중문화의 퍼즐이 맞출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난영가요제다. 목포 출신의 가수 이난영을 추모하기 위해 목포에서 열리는 이 가요제는 많은 사람들이 1968년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료를 종합하다 보니 1972년 4회 대회는 열리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됐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1968년이 아닌 1969년이 난영가요제의 시작 연도임을 실제 트로피와 상장을 통해 확인했다.


“사료를 모으고 연구할수록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되죠. 제가 쓴 글이나 모은 자료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사료가 되니 더욱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최 대표와의 일문일답.

오랫동안 대중문화 자료를 모으고 계신데, 요즘 K팝의 선전에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우리 가수가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 현지인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입국하는 장면은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우리 문화를 폄하했던 예전과는 정말 달라진 위상이죠. 영미권에서는 국내 아이돌의 선전에 대해 갑자기 떠오른 문화라며 졸부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로 쌓아 온 토양 위에서 우리 K팝이 자연스럽게 성장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제가 그런 작업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최근 아이돌과 함께 트로트가 주류로 올라선 것 같습니다.


“갑자기 트로트 붐이 일게 된 것은 방송 프로그램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트로트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우리 대중음악은 장르를 불문하고 개성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음악들이 시도되고, 향유되는 층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은 이를 잘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트로트와 아이돌만 나오니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거죠. 건강한 문화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고, 이를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게 문화적으로 건강한 토대인데 방송 프로그램은 소위 뜨는 음악만을 다루니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 장르만 과잉 소비되고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 장르의 자생력을 얻기 힘든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인디음악 시장은 크게 위축된 모습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탓이 크다고 봅니다. 인디 음악인들이 활동하던 무대인 홍대나 상수동의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오른 탓에 많은 공연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그룹 혁오나 장미여관 등 인디신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 대중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니 마치 대중적으로 성공한 음악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디음악은 인디음악 특성대로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이 시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인 것은 방송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숨은 인디신에서는 예전보다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들이 시도되고 있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뉴트로 열풍 탓인지 가요 시장에서도 LP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LP 발매가 대세가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같습니다. 최근 동향으로는 LP를 내는 가수가 음악적으로 차별화된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이승환, 아이유, 방탄소년단(BTS), 백예린 등 가수들이 잇달아 LP를 출시하고 있고요. 특히 1990년대 가수인 듀스도 LP를 재발매하면서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습니다. 유통되는 구조가 전과 많이 달라진 점도 특이한 점입니다. 음반가게에 가서 음반을 소비하는 구조가 아닌 팬덤을 위주로 판매하거나 아예 추첨을 통해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정 발매도 많아서 시기를 놓쳐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가수 백예린의 경우가 좋은 LP 발매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2000장 정도 선발매를 했고 품절되자 추가로 제품을 판매했는데 1만 장이 넘게 팔려 나갔습니다. 물론 추가로 제작된 LP는 선발매 때와 조금은 다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선발매 때 구입한 소비자에게 일종의 프리미엄 같은 걸 주기 위해서죠. 요즘에는 이런 LP 발매가 단순히 음원을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굿즈(기념품) 개념으로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주목하고 있는 가수가 있다면.


“최근에는 역시 BTS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BTS는 외국인들의 공연 리액션까지 다 찾아볼 정도죠. BTS는 전혀 새로운 한류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돌이라고 해서 뻔한 음악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눈과 귀를 사로잡죠. 이들은 어쩌면 대중가수의 의미를 넘어섰다고 봅니다. 국가 브랜드라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10여 년 동안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을 했는데 아이돌 가수를 선정해도 스케줄상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BTS는 바쁜 와중에도 리더가 와서 직접 수상해 갔습니다. 상업적으로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을 중시한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또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듣는 이를 위로해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블랙핑크나 샤이니의 음악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덕에 한류가 그저 흘러가는 유행이 아닌 ‘K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정착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대중가요를 연구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혀 주신다면.


“지난 6월 <빽판의 전성시대>를 출간한 이후 최근에는 미8군 가수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미8군 가수는 우리 대중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변환점이 됐습니다. 트로트 일변도인 우리 대중문화에서 서양의 록, 포크 등 다양한 장르가 유입되는 결과를 가져왔거든요. 대중음악의 다양성에 기여한 셈입니다. 또 미군부대에서 노래했다는 것은 당시 가수에게는 완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50~1960년대 자료는 현재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1.트로트 가수 주현미가 중학생 때 발표한 데뷔 음반 '고향의 꿈', 1975년, 오아시스레코드

2.한국 최초 어린이 독집이자 하춘화 데뷔 앨범 '가요앨범집' 10인치, 1962년, 가나다레코드

3. 히키신(신중현) 데뷔 앨범 '키타 멜로듸 경음악선곡집', 1963~1964년 추정, 도미도레코드

4.듀스의 마지막 정규 LP인 3집, 1995년, 예당음향

5.국내 최초 제작 LP NO.1 1958년 재킷과 음반.


최규성 평론가는 …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이자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저서로는 <빽판의 전성시대>,,한국의 인디뮤지션>, <대중가요 LP가이드북>, <골든인디컬렉션>, <걸그룹의 조상들>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