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 사진 한국경제DB·고성배·위즈덤하우스 제공 | 참고 자료 ‘고전소설의 요괴 서사 연구] 한국 요괴의 몸값이 높아졌다. ‘도깨비’, ‘처녀귀신’ 등 전설의 고향 소재에 그쳤던 한국 요괴들이 서적, 애니메이션, 뮤지컬, 드라마,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분야로 콘텐츠를 무한 확장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콘텐츠 시대에 달라진 한국 요괴의 위상을 들여다봤다.


한국의 요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어릴 적 매스컴에서 봤던 몽달귀신과 처녀귀신, 무섭지만 친근한 도깨비, 영화의 단골 소재 구미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등장해 큰 화제가 된 인면조 등. 언뜻 떠올려 봐도 손가락 열 개를 다 접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200종이 훨씬 넘는 요괴가 있었다면? 그러한 요괴들이 최근 황금알을 낳는 문화 콘텐츠가 됐다면?


[special] 요괴, 서브컬처에서 콘텐츠 보석으로

(사진) 한국 요괴를 콘셉트로 제작한 보드게임 ‘괴궁’. / 고성배 더쿠 편집장 제공


국형 요괴 콘텐츠의 무한 가능성


하위문화(서브컬처)에 불과했던 한국 요괴의 위상이 확 달라졌다. 만화와 드라마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쓰였던 요괴 이야기가 서적, 애니메이션, 뮤지컬, 드라마,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분야로 콘텐츠를 확장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앞서 요괴 연구자로 알려진 이후남 박사는 지난 2017년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요괴를 분석한 논문 ‘고전소설의 요괴 서사 연구’에서 “한국은 요괴라는 원천소스를 학문의 영역이나 산업의 영역에서 모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콘텐츠 활용에 대한 아쉬움을 게재한 바 있다.


중국과 일본에는 요괴에 관한 서적과 문헌이 상당수 존재하고, 특히 일본의 경우 요괴를 활용한 문화 산업을 다방면에서 활성화시키는 반면 한국의 요괴 연구는 제자리걸음이란 지적이었다.


당시 일본은 ‘요괴워치’라는 닌텐도 게임을 필두로 애니메이션, 만화, 완구 등에서 요괴 콘텐츠를 활용했다. 특히 과거 유령도시를 방불케 할 만큼 인구가 적었던 시골마을을 요괴마을 콘셉트로 관광지화하는 등 산업화에 성공했다.


반면 한국에서 요괴는 하위문화에 그쳤다. 당시만 해도 민간신앙의 전통이 있는 도깨비를 대상으로 만화,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캐릭터로 상품화하는 정도에 그쳤고, 요괴가 등장하는 고전소설을 대상으로 한 매체 변용은 <홍길동전>과 <전우치전> 정도로 손에 꼽았다.


그렇다고 요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방영된 KBS2 TV 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한반도 지역에 걸쳐 전해지는 요괴설화 이야기를 정조준 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요괴에 대한 남녀노소 모두의 관심을 증명하는 사례다.


[special] 요괴, 서브컬처에서 콘텐츠 보석으로
(사진) 화화스튜디오의 한국형 요괴를 재해석한 '묘시월드' 족자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한국형 요괴 콘텐츠들이 속속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경기 성남시 단대동 논골마을은 국내 최초로 한국 전통 요괴를 지역 맞춤형 콘텐츠로 변모시키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요괴를 재해석해 ‘묘시월드’라는 판타지를 구축 중인 캐릭터 전문 기업 화화스튜디오와 부산마케팅연구소가 손을 잡고 요괴마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요괴마을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곽현일 부산마케팅연구소장은 “한국의 전통 요괴 캐릭터가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도시재생의 콘텐츠로 활용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형 요괴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는 뽀로로에 이은 초통령 대열에 올랐다. <신비아파트>를 바탕으로 한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신비아파트: 고스트헌터’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110만 명(7월 기준)으로, 슈퍼 지적재산권(IP)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게임뿐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에서도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special] 요괴, 서브컬처에서 콘텐츠 보석으로
(사진)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신비아파트 뮤지컬 시즌 3: 뱀파이어왕의 비밀>.


독립출판인 고성배 씨는 지난 2018년 한국 요괴를 정리해 수록한 <동이귀괴물집>을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 국내 최초의 요괴 도감인 이 책은 목표치의 7268%를 초과 달성한 1억4538만 원을 모으며 독립출판물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고 씨는 성원에 힘입어 요괴를 콘셉트로 한 보드게임 ‘괴궁’을 선보였는데, 이 또한 목표치의 396%를 초과 달성하며 성공리에 크라우드펀딩을 마감했다. 그는 “한국 고대 문헌에는 해외 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다양한 귀신, 괴물, 요괴들이 생각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며 “한국형 요괴들로 구성된 2차 제작물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후남 박사는 또한 한국형 요괴 콘텐츠의 산업화를 강조한다. 완구 등의 캐릭터 산업이나 교육용 콘텐츠 및 에듀케이션 애플리케이션 개발, 게임 산업 등 문화 콘텐츠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고전에 등장하는 요괴를 활용해 문화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며 “국내와 동아시아, 넓게는 세계에 홍보하는 일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환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 이윤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구시대의 미신을 넘어 문화 콘텐츠의 중요한 요소로서 한국요괴신화를 다시 들여다볼 때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