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한국투자증권의 색다른 인공지능(AI) 실험이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AI 챗봇,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정도가 증권사의 AI 활용 범위로 인식돼 왔는데 한국투자증권은 리서치 부문에 AI를 접목시켰다. AIR(AI Research)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리서치 분야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고유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투자 기법의 진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투자 상품이 출시되면서 리서치 부문의 무게감은 과거에 비해 덜해졌지만, 애널리스트는 여전히 ‘증권사의 꽃’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올 초 한국투자증권이 ‘에어(AIR)’ 개발 계획을 수립하면서 내부 반발에 부딪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장 AIR가 출시되면 리서치 부문의 규모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애널리스트의 경우 기업 탐방이나 투자설명회처럼 직접 발로 뛰는 업무도 있지만,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이 기업에 대한 이슈 분석과 리포트 작성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AIR 개발을 총괄한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R 개발 초기에는 애널리스트와의 업무 중복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내부 리서치 역량 고도화에 AIR가 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많다”고 소개했다.
실제 AIR는 리서치 인력의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로서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다. AIR가 쏟아지는 뉴스 속에 양질의 정보를 추출해 내는 역할을 한다면, 애널리스트는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보다 심층적인 정보 분석과 데이터 분석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AIR는 매일 쏟아지는 3만여 건의 뉴스 콘텐츠 분석을 통해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만을 엄선해 데일리 리포트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기존 텍스트 분석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머신러닝 기법이 접목됐다는 점이다.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AIR 스스로 학습과 예측을 통해 분석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단어가 아닌 문장과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특화됐는데 5개의 특허 출원도 마친 상태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AIR의 정보 분석 능력이 한국투자증권 소속 애널리스트들로부터 파생됐다는 점이다.
윤 센터장은 “AIR의 분석 알고리즘은 무려 10만여 건에 달하는 기업 리포트를 학습시킨 결과물”이라며 “결국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들의 리서치 능력이 함축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AIR의 진가는 대형주보다는 스몰캡(중소형주 섹터) 부문에서 발휘되고 있다. 대형주의 경우 대다수 증권사들이 분석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지만, 스몰캡은 정보 부족과 리서치 인력의 한계로 인해 관련 리포트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앞서 한국투자증권 역시 지난해 말부터 스몰캡 부문의 리서치 업무를 사실상 중단한 바 있다. 같은 배경에서 AIR의 활용 범위는 미국 주식 등 해외 주식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는 10월 서비스를 목표로 관련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음은 윤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7월 1일 AIR 론칭 이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위 반응이 궁금하네요.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색다른 서비스가 나온 만큼 다양한 반응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 주체가 증권사라는 점에서 개발 기간과 비용에 대한 문의도 있었지만, 애널리스트와의 업무 중복 여부를 궁금해하는 반응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AIR 이용 고객도 하루 평균 1만 건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웹에서는 물론 모바일 서비스로도 제공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죠. 하루에만 수만 건의 뉴스가 쏟아지는데 이 가운데서 꼭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주는 데다, 해당 정보에 대한 가치평가도 확인할 수 있어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초 분석 자료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외주가 아닌 자체 개발을 선택한 배경이 있나요.
“AI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아웃소싱 방식으로 개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을 내부에서 찾기 어려운 탓이겠죠. 저희 센터에는 14년 차 퀀트 애널리스트를 포함해 개발자 수준의 역량 있는 직원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습니다. AIR의 경우 총 4명의 직원이 직접 참여해 반년 만에 개발을 완료했죠. 무엇보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됐지만, 자체 개발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 내부의 리소스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녹여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증권사들의 경우 리서치 보고서를 비롯해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가 누적되는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곳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죠. 하지만 AIR는 저희가 직접 만든 프로그램인 만큼 양과 질적 측면에서 타사와의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실 증권사 리서치 부문의 경우 ‘비용 부서’라는 인식 탓에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AIR 개발은 회사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애널리스트와의 업무 중복에 대한 우려는 해소됐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IR 론칭 이후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AIR 분석 능력은 사내 애널리스트들이 직접 훈련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각 뉴스별 긍정과 부정 판단은 10만여 건에 달하는 애널리스트의 태깅을 기반으로 학습한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AIR의 분석 능력이 고도화되면 애널리스트들이 뉴스 분석에 쏟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업금융(IB)이나 해외 주식 부문 등에서의 핵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셈이죠. 미시적으로 보면 AI가 일자리의 위협 요인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AI 활용에 뒤처진 기업들이 도태되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AIR가 리서치 업무의 보완재 역할을 한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통상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경우 업종별로 수십 개의 기업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리포트 작성이 가능한 기업은 10~15개 정도입니다. 나머지 기업들의 경우 세세한 이슈까지는 파악하기 힘든 실정인데, AIR가 이런 고민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의 기업 탐방 시 AIR를 활용하면 보다 손쉽게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와 관련 이슈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겠죠. 특정 이슈에 대한 관련 종목에 대한 리포트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개인투자자는 물론 증시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AIR 분석 대상의 상당 부분이 스몰캡에 치중된 것 같은데.
“지난 한 달여간 AIR를 통해 300개가량의 기업 리포트가 나왔는데, 실제로 스몰캡 종목이 가장 많습니다. AIR의 알고리즘이 중소형주 중심으로 설계된 영향이죠. 사실 삼성전자와 같은 대형주의 경우 증권사 리포트가 매일 쏟아지는 반면, 소형주의 경우 1년에 한 차례도 안 나오는 종목이 수두룩합니다. 한쪽에서는 정보 과잉이, 다른 한쪽에서는 정보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건데 AIR가 이런 정보 부족 현상을 해결해 주는 셈이죠.”
중소형주의 경우 허위 정보를 이용한 시세 조작 사례가 발생하는데 별도의 안전장치는 있나요.
“당장은 허위 정보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관련 뉴스뿐 아니라 해당 기업의 재무 현황 등의 밸류에이션 정보도 함께 제공되는 만큼 투자자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는 뉴스가 나오더라도 기업의 펀더멘털이 엉망이면 투자 판단을 보류하는 게 바람직하겠죠. 만약 시세 조종 패턴이 반복될 경우에는 이 역시 AIR의 자체 데이터로 쌓이게 돼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형태로 진화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투자의 기본은 기업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분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죠.”
AIR의 활용 범위에 대한 고민도 크실 것 같습니다.
“당장 준비 중인 서비스는 해외 주식 부문으로 오는 10월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스몰캡과 마찬가지로 해외 주식 역시 정보 습득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미국 현지에서 공급되는 뉴스를 직접 분석, 번역해 제공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의 뉴스는 많이 접했겠지만, 그 외의 종목에 대해서는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다만 해외 주식의 경우 스몰캡 중심인 국내와 달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이 주요 분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해외 주식 AIR는 해외 주식 소액 매매 애플리케이션인 ‘미니스탁(mini stock)’과의 연계 서비스로도 활용할 예정입니다.”
AIR 활용과 관련해 앞으로 추가 계획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 10월부터 미국 S&P500 기업들에 대한 리포트 발간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의 해외 주식 매매 앱인 ‘미니스탁’과의 연계 서비스도 출시될 예정이고요. 기존 개별 종목 중심의 리포트 역시 관련주들과 함께 제공되는 다면 분석 서비스도 도입될 예정입니다. 이외 에도 배당 수익률 상위 100대 기업, 혹은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등과 같은 기획 리포트도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AIR가 자체 개발 프로그램인 만큼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가능한 거죠. 중장기적으로는 AIR의 자문 기능 도입과 함께 한국투자증권의 해외 법인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계획입니다.”
윤희도 센터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고려대 K-MBA를 거쳤으며 지난 1999년에 동원경제연구소 입사 이후 22년째 한국투자증권(옛 동원증권)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4년 당시 31세로 언론에서 선정하는 최연소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에 선정됐고, 2016년까지 유틸리티 및 운송 부문에서 수십여 차례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17년부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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